[조선의 걸크러시]〈13〉나는 음탕한 여자가 아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2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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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애는 칼을 비껴 잡고 앞으로 나아갔다. 눈썹은 모두 치켜세워져 있었다. “어제의 모함은 평소보다 심했다. 이제 내가 너에게 마음대로 할 것이니, 너는 이 칼을 받아라.” 할미는 은애가 가냘프고 약해 어떤 일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대꾸했다. “찌를 테면 찔러 봐라.” 은애가 몸을 기울여 목 왼쪽을 찔렀는데, 할미는 오히려 살아서 급히 칼을 쥔 은애의 손을 잡았다. 은애가 재빨리 뿌리치고는 목 오른쪽을 찔렀다.’

―실학자 이덕무의 한문소설 ‘은애전(銀愛傳)’에서

정조 14년(1790년) 전라도 강진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이다. 은애는 할미의 어깨와 겨드랑이, 팔다리, 갈비, 젖가슴 등 모두 열여덟 군데를 찔러 죽였다. 그런데 대부분 상처가 왼쪽이었다. 은애가 넘어진 할미를 올라타서 오른손으로 곧게 내려 찌르다 보니 생긴 결과다. 아주 잔인하고 끔찍하다. 그런데 은애는 왜 이런 짓을 저질렀을까? 은애는 평범한 양가 딸이었다. 같은 마을에는 안 노파라는 사람이 있었다. 은애가 죽인 할미가 바로 안 노파다. 안 노파는 기생 출신이었는데, 온몸에 옴이 퍼져 있었다. 종종 쌀을 꾸러 다녔는데 간혹 은애 어머니가 주지 않으면 화를 내며 은애를 해칠 마음을 먹었다. 이덕무는 살인의 원인이 안 노파의 못된 성품과도 관련이 있다고 암시했다.

안 노파는 자기 시누이의 손자인 최정련에게 “은애를 아내로 맞으면 어떻겠느냐?”고 넌지시 물었다. 최정련은 “은애는 아름다우니 어찌 정말 행복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답했다. 안 노파는 일이 성사되면 옴을 치료할 수 있는 약값을 달라고 했고 은애가 최정련을 좋아하고 남몰래 간통한다는 거짓 소문을 냈다. 이 소문은 온 마을에 퍼져 은애는 시집을 갈 수 없게 됐다. 안 노파가 은애를 정절을 지키지 않는 여자로 만들었다. 조선 시대에서 이런 낙인은 사형 선고와 다름없다. 이덕무는 안 노파가 은애를 사회적으로 매장했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안 노파가 추가해서 거짓말을 퍼뜨리지 않았다면 살인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은애는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오후 7∼9시에 치맛자락을 당겨 모으고 소매를 걷어붙인 후 부엌칼을 들고 안 노파의 침실에 들어가 한을 풀듯 안 노파를 죽였다. 강진현감 박재순은 안 노파의 시신을 살피고 은애에게 자백을 받았다. 은애의 옥사는 임금인 정조에게 보고가 됐다. 좌의정 채제공은 “사정이야 이해가 되지만 살인죄는 용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정조는 은애를 용서하고 풀어줬다. 정숙한 여인이 음란하다고 모함을 당한 것은 원통한 일이다. 은애는 사람들이 내막을 제대로 알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칼을 쥐고 마을 사람들에게 자신이 아니라 안 노파가 문제라는 것을 분명히 했다.

정조는 “은애 같은 여인을 살려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풍속과 교화를 펼 수 있겠느냐?”며 용서의 이유를 설명했다. 은애는 살인자에서 정절을 지키는 아름다운 여인으로 재평가됐다. 정절에 대해 매우 엄격했던 조선 여성의 일면을 보여준다. 하지만 풍속과 교화라는 틀에서 이처럼 잔인하고도 초법적인 살인이 미화되는 게 과연 정당한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임치균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은애전#조선 여성#정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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