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기자의 ‘사談진談’]먹스타그램 모르면 당신은 ‘아재’입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2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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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모임에 참석한 한 시민이 스마트폰 카메라로 음식을 촬영하고 있다. 잘 찍은 사진을 SNS에 올려 공유하는 먹스타그램은 스마트폰 카메라가 만들어낸 또 하나의 문화이다.
연말 모임에 참석한 한 시민이 스마트폰 카메라로 음식을 촬영하고 있다. 잘 찍은 사진을 SNS에 올려 공유하는 먹스타그램은 스마트폰 카메라가 만들어낸 또 하나의 문화이다.
장승윤 기자
장승윤 기자
식사 예절은 개인의 문화 소양을 가늠하는 중요한 잣대다. 격식을 강조하는 가풍이나 모임에선 특히 그렇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좋은 식당과 우아한 음식을 보면 우리는 “동작 그만! 찍지도 않았는데 먹으려고?”라고 말한다. 카메라보다 포크를 먼저 들었던 친구는 “미안, 어서 찍어”라며 머쓱해한다.

‘먹스타그램’(‘먹다’와 ‘인스타그램’의 합성어)에 해시태그가 많이 달리는 맛집을 가보면 흔히 보는 풍경이다. 면이 불거나 고기가 식는 것을 걱정하는 사람은 요리사뿐이다. 카메라 각도와 음식 위치를 바꿔가며 마음에 드는 사진이 나올 때까지 촬영하느라 식감을 최대한 느낄 수 있는 골든타임을 써버린다.

잘 찍은 음식 사진으로 받게 될 ‘좋아요’ 숫자를 생각하면 식욕은 사이버 포만감으로 대체된다. 찍은 다음에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는 과정이 남아있다. 온 국민이 몰두하는 ‘찍고 올리고 비로소 맛보는’ 문화는 스마트폰과 SNS의 합작품이다.

‘먹스타그램’에 올라오는 사진을 분석해 보면 ‘접사 촬영’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메인 음식을 클로즈업하면 주변부는 아웃포커싱돼 음식은 더욱 돋보이고 맛깔스럽게 나온다. 접사 촬영은 원래 디지털일안반사식(DSLR) 카메라에 접사 렌즈를 장착해야 가능했던 고난도의 촬영 방법이었지만 지금은 대중화됐다.

사실 이 기능은 얇은 스마트폰 안에 렌즈를 조합하여 넣다 보니 초점거리가 짧아질 수밖에 없었기에 탄생한 부산물이다. 접사 렌즈의 제작 원리는 짧은 경통에 많은 렌즈를 넣음으로써 가능하다. 스마트폰 기술자들은 이제 접사 사진의 인기를 확인한 후 접사 렌즈 기능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스마트폰 카메라 기술이 엉뚱한 방향에서 꽃을 피운 또 하나의 사례가 ‘셀카’이다. 2000년대 중후반 3세대(3G) 시대가 되면서 통신회사들은 영상통화 기능을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하기 위해 전방 카메라를 크게 부각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비싼 통신료 때문에 영상통화 사용률은 저조했고 동영상보다는 사진이 인기를 끌었다. 후방 카메라 이외에 추가된 전방 카메라는 ‘셀카’ 전성시대를 열었고 이제 세계인들은 하루 종일 자기 사진을 찍으며 논다.

뒤늦게 이를 간파한 휴대전화 제조사들은 전방 카메라 화소수를 높이고 아웃포커싱이 될 수 있게 기술력을 집중시켰다. 셀카가 잘 나오느냐 아니냐는 휴대전화 구입의 중요한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셀카를 다양하게 찍기 위해 셀카봉이 출현했고, 쉽고 빠르게 사진을 가공해주는 애플리케이션(앱)도 쏟아지고 있다.

사진촬영의 역사는 전면 카메라 이전 시대와 이후 시대로 나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제 여행지에서 옆에 있는 사람에게 부탁을 하거나 순서대로 사진사가 되는 사진 품앗이를 할 필요가 없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화장을 마무리하는 여성에게 전면 카메라는 거울이 됐다. 선거 때 투표장에서의 인증샷은 투표 독려 캠페인으로 승화됐다. 투표율이 높으면 어느 정당이 유리하다는 식의 정치마저 영향을 끼친다. 심지어 ‘손가락을 V로 하면 2번 후보를 지지한다는 것이니 선거법에 걸린다. 안 걸린다’ 논쟁까지 생겼다. 스마트폰 제작자들이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이다.

사족 같은 이야기 하나 더. 스마트폰은 ‘세로 세상’을 지향한다. 스마트폰의 세로 형식은 나비효과처럼 사진기자인 필자의 삶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 눈에 보이는 세상은 가로이고 기존 카메라는 가로 사진을 찍기 쉽게 설계됐다.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가로 본능은 TV의 형식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찌 됐건 스마트폰은 세로가 긴 직사각형으로 만들어졌고 사진을 볼 때도 세로 사진은 회전할 필요 없이 볼 수 있다. 가로 본능이 지배하던 PC나 노트북 시대와 달리 스마트폰 시대가 되면서 세로가 풀프레임으로 바뀌게 됐다. 세상이 90도 바뀐 것이고 독자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사진기자들도 가로 사진에 적합한 사진기로 세로 사진 찍기에 열중이다.

기술이 문화를 바꾼다. 그런데 세상은 처음 의도와 달리 흘러갈 때가 많다. 내년부터 나올 휘어지는 디스플레이를 장착한 휴대전화, 영화 한 편을 1초 만에 보낼 수 있다는 5G 시대는 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즐거움일 수도, 괴로움일 수도.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먹스타그램#sns#스마트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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