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나무 아래서]〈16〉첫눈, 잡초가 나무가 되는 ‘마법’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2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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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신이현 작가
신이현 작가
“이 나무 좀 봐. 크리스마스트리가 되었네. 이제부터 이 나무 이름은 노엘이다. 노엘.”

레돔이 마당의 어느 나무를 가리키며 말했다. 밤새 내린 첫눈을 폭 뒤집어쓴 작은 나무가 예뻤다. 지금까지 그 나무를 잘 지켜온 보호자로서의 뿌듯함이 느껴졌지만 이 나무를 둘러싸고 봄부터 우리는 참으로 많이 다투었다. 처음에 나는 그것이 잡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뽑아서 거름통에 던져 버렸다.

“저, 저, 저기에 있던 풀이 어디에 갔지?”

그가 얼굴을 뻘겋게 하고 말까지 더듬으면서 물었다.

“아, 그 잡초. 내가 뽑아 버렸지. 잡초는 어릴 때 뽑아내야 해.”

“뭐, 그것을 뽑아 버렸다고?”

그는 하늘이라도 무너진 듯이 놀라며 거름통에 던져 버린 시든 풀을 찾아내 다시 그 자리에 심었다. 싹이 날 때부터 보고 있던 나무였다면서 왜 자기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뽑았냐며 격렬하게 분개했다.

“이건 잡초가 아니야!”

그는 모욕이라도 당한 듯 다시 잡초를 심고 물을 주고 사랑이 깃든 손길로 흙을 토닥거렸다. 아직은 무슨 풀인지 알 수 없지만 언젠가 예쁜 꽃이 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 벌들이 꿀을 딸 것이며 또 언젠가는 먹을 수 있는 열매가 열릴 것이라고 했다. 문제는 마당의 너무 많은 풀들의 미래가 궁금해서 뽑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당신 프랑스 사람 맞아? 프랑스식 정원으로 좀 꾸며 봐.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처럼.”

그는 프랑스식 정원은 자기가 제일 싫어하는 정원이라고 했다.

“마당에 난 풀은 왜 다 뽑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다른 작물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는 그냥 두는 것이 좋아. 이 풀이 여기에 난다는 것은 땅이 그것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야. 처음엔 한해살이풀이 나다가 다음엔 여러해살이풀, 그 다음엔 나무, 이렇게 해서 모든 풀들은 다음 풀을 위해 땅을 건강한 땅으로 만들고 사라지고 또 태어나는 거야.”

그는 대체로 조용한 남자지만 땅이나 나무에 대해서는 자기주장이 너무 강해서 내가 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나는 마당의 잡초를 볼 때마다 뽑고 정리하고 싶었다.

“이거 뽑아도 돼?”

그는 혹시라도 내가 뽑아 버릴까, 옮겨 버릴까 안절부절 내 주변을 서성거린다. 풀을 사이에 두고 격렬한 다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제 난 모른다. 이 정도면 전설의 고향 귀신이 오겠다. 저기 뱀들이 나와서 기어 다니네. 피리라도 갖다줄까.”

거름통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풀은 무럭무럭 자랐다. 다른 풀들이 꽃들을 피우는 여름에도 묵묵히 자라기만 했다. 위로 크고 옆으로 쭉쭉 뻗어갔다. 우리는 그것을 들여다보며 ‘풀이 아니라 나무가 아닐까. 멋진 꽃을 피우려는 모양이다. 이렇게 큰 나무에 꽃이 피면 벌들이 딸 꿀이 얼마나 많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가을이 되어도 꽃도 열매도 없이 하염없이 자라기만 했다. 그러다 문득 거짓말처럼 꽃이 피었다. 아주 작아서 보이지도 않을 정도였고 색깔도 거무스름해서 꽃이라 하기도 민망했다. 꿀도 없는지 벌마저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허우대만 멀쩡한 이상한 나무였다.

“나 참 못생겼죠? 나를 이렇게 건강하게 키워주신 분은 당신이 처음이에요. 우린 자라기도 전에 사라지기 때문에 이렇게 커 보긴 제가 처음일 거예요. 당신, 참 좋은 분이에요.”

순전히 내 생각이었지만 못생긴 나무가 레돔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첫눈이 긴 구박의 설움을 달래듯 예쁜 이름을 주었지만 앞으로 노엘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는 모른다. 별 쓸모없는 잡초 스토리는 내년이 되어 봐야 알 것 같다.
 
신이현 작가

※프랑스인 남편 도미니크 에어케 씨와 충북 충주에서 사과와 포도 농사를 짓고 살고 있습니다.
#정원#잡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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