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동인의 業]〈13〉리더는 질문 잘하는 사람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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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동인 강원대 초빙교수·직업학 박사
육동인 강원대 초빙교수·직업학 박사
어느 나라건 그 나라의 사회적 성격이나 문화적 특징을 규정하는 용어가 있다. 우리나라의 ‘빨리빨리’, 중국의 ‘만만디’가 상징적이다. 프랑스의 ‘톨레랑스’(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행동 방식에 대한 존중), 네덜란드의 ‘오베를러흐’(이해당사자 모두의 의견을 책상 위에 놓고 합의할 때까지 회의하는 것) 같은 표현도 유사하다.

이런 관점에서 유대인을 표현하는 용어는 ‘후츠파’다. “뻔뻔한, 용기 있는, 오만한”이라는 의미를 갖는 이 단어는 “다소 건방지게 보일지 몰라도 상대가 누구인지에 관계없이 끊임없이 당당하게 토론하는 문화”를 뜻한다. 21세기 이스라엘 경제성장의 비결을 연구한 ‘창업국가’라는 책에서는 전 세계를 주름잡는 유대인 창의력의 원천을 바로 ‘후츠파’에서 찾는다.

유대학자들은 대화와 토론을 하는 동안 평소 생각할 수 없었던 무수한 아이디어가 떠오르기 때문에 저절로 상상력과 창의력이 길러진다고 가르친다. 대표적인 유대계 기업인 구글을 키운 에릭 슈밋 전 회장은 “회사의 성장동력은 신기술이 아니라 직원들의 대화와 토론”이라고 말할 정도다. 우리에게 익숙한 ‘브레인스토밍’도 결국 대화와 토론을 통해 아이디어를 모은다는 차원에서 같은 맥락이다.

대화와 토론, 다시 말해 건강한 소통문화는 조직의 경쟁력을 향상시킨다. 하지만 거꾸로 몰락의 요인이 되기도 한다. ‘1만 시간의 법칙’으로 유명한 책 ‘아웃라이어(Outlier)’에서 저자 맬컴 글래드웰은 1997년 대한항공 괌 추락사고의 원인을 “기장의 잘못된 판단과 지시에 부기장이 감히 반대 의견을 내지 못해 발생한 비극”이라고 진단했다. 우리 사회의 수직적 위계(位階)로 인한 불통문화에 대한 뼈아픈 지적이었다. 20년이 지난 요즘도 대한항공 오너 일가와 관련된 이런저런 사건이 뉴스에 오르내리고, 안희정 전 지사의 성폭행 재판에 ‘위계’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것을 보면, 건강한 소통문화의 정착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 것 같다.

유대인 교육을 보통 ‘하브루타 교육’이라 부른다. 하브루타는 친구란 뜻의 히브리어 ‘하베르’에서 나온 단어다. 교육이란 친구와 함께 대화하고 토론하는 것이란 의미다. 토론을 하려면 생각한 것을 말로 표현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두뇌를 끊임없이 자극해 사고력이 확장된다고 한다. ‘말로 설명하지 못하는 것은 결국 모르는 것’이란 유대인 격언은 그런 의미다.

대화와 토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질문이다. 질문이 있어야 대화가 시작되며, 어떤 질문을 하느냐에 따라 대화의 내용이 달라진다. 질문은 대화의 시작과 끝인 셈이다. 그래서 유대인은 질문을 잘하는 사람을 ‘리더’로 생각하고, 부모들은 자녀를 질문 잘하는 아이로 키우려 한다. 유대인 어머니는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에게 “무엇을 배웠느냐”가 아니라 “선생님께 어떤 질문을 했느냐”라고 물어볼 정도다.

매년 신년 다짐 중 하나는 ‘소통’이다. 그러나 이게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게 아니다. 건강이 좋아지려면 꾸준하게 신체적 정신적 단련을 해야 하듯 소통도 그렇다. 가정이나 조직에서 대화와 토론, 특히 질문하는 사람에 대한 격려는 그 시작이다.
 
육동인 강원대 초빙교수·직업학 박사
#소통문화#대화와 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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