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정원의 봉주르 에콜]〈12〉프랑스에서 숙명여고 사건?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2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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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원 하비에르국제학교 한국어·프랑스어 교사
임정원 하비에르국제학교 한국어·프랑스어 교사
최근 숙명여고 교사의 시험지 유출 사건과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자녀의 ‘A+ 학점’ 평가에 대한 뉴스를 접했다. 불현듯 아들이 프랑스에서 의과대학 1학년을 다닐 때 일이 생각났다. 당시 그 대학에는 유명한 생리학과 교수가 있었는데, 자신의 조카가 의과대학에 입학하자 1학년 수업을 아예 하지 못하게 됐다. 잘 가르치기로 소문난 해당 교수의 수업을 듣지 못하게 되자 아들은 몹시 아쉬워했다. 의과대학 1년 차 학생들의 시험 경쟁이 치열해서 자녀가 아니라 조카라도 시험문제 출제는 물론이고 1학년의 모든 수업에서 해당 교수는 배제됐다. 고등학교도 마찬가지다. 아들이 고교를 다닐 때 프랑스어 교사는 딸의 학급과 학년에서 수업을 할 수 없었다. 내가 루앙의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동료 영어 교사도 아들이 입학하자 1학년은 맡지 못했다. 1학년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어 했던 그 동료는 “아들이 빨리 2학년으로 올라갔으면 좋겠다”고 말하곤 했다.

프랑스 학교에서도 교사가 자녀와 같은 학교에 다니는 사례가 가끔 있다. 공립학교에는 법적으로 교사 자녀라고 해서 입학을 금지할 수 없다. 하지만 해당 교사는 자신이 근무하는 학교에 자녀가 입학하면 이런 사실을 학교에 알려야 한다. 실제 교사 자녀가 같은 학교에 다니면 동료 교사들과 학생들은 이런 사실을 다 알게 된다. 해당 교사는 자녀의 반과 학년에서 수업할 수 없으며 시험에도 관여할 수 없다. 각 반의 수업을 맡은 교사가 전적으로 시험문제 출제와 채점을 맡는다.

프랑스 중고교생은 중학교 학력인증 국가시험인 ‘브르베’와 논술형 대입자격시험 ‘바칼로레아’의 모의고사를 제외하면 우리처럼 같은 날 똑같은 문제로 시험을 치르지 않는다. 각 과목 수업시간에 시험을 보기 때문에 반마다 시험 날짜가 다르다. 교사들은 반마다 시험문제 유형을 바꿔서 출제한다. 또 한 학년에 같은 과목을 가르치는 교사가 2명 이상일 때는 시험문제 출제와 채점을 보통 각자 따로 한다.

수학을 포함해서 모든 시험문제가 100% 논술형 주관식이라 정답이 정해져 있지 않다. 같은 답안이라도 채점하는 교사에 따라 평가에서 편차가 발생한다. 실제로 똑같은 수학 답안을 가지고 여러 교사에게 채점을 의뢰해 통계를 내봤더니 교사에 따라 최대 4점 차이가 발생했다는 연구 결과가 있을 정도다. 교사와 학생에게는 잘 알려져 있는 내용이다. 20점 만점이기 때문에 이 점수 차는 상당한 것이다.

이렇게 프랑스 학교의 시험문제 출제와 채점 방식은 매우 주관적이다. 전적으로 해당 교사에게 달려 있다. 그런데 오히려 시험문제 유출이나 채점 비리로 시끄러워지는 일이 거의 없다. 내신이 절대평가이고 엘리트 고등교육기관인 그랑제콜에 입학하려는 소수의 상위권 학생을 빼면 대학입시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내신 성적이 입시에 결정적이지 않으니 학생과 학부모도 덜 민감하다. 그런데도 교사와 교사의 자녀가 한 학교에 있을 때는 우리보다 엄격하게 공개적으로 사전에 조치한다.
 
임정원 하비에르국제학교 한국어·프랑스어 교사
#숙명여고#프랑스#그랑제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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