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국의 우당탕탕]〈8〉아빠는 어디에서 쉬는가?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9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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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지난 주말 친구들과 가족모임을 가졌다. 아이들끼리 모여서 놀다가 서로 자기 아빠가 화장실에 오래 있는다고 자랑했다. 이유를 물었더니 두 친구 모두 같은 대답을 했다.

“집에서 쉴 곳이 화장실밖에 없어.”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싶어, 우리는 ‘아빠는 어디에서 쉬어야 하나’를 주제로 토론을 시작했다. 결혼하고 아이 키우다 보니 집에서 아빠가 쉴 수 있는 공간이 점점 줄어들었다. 보통 집에 방이 두 개 또는 세 개라고 하면 안방은 아내와 아이가 주로 쓰고, 방 하나는 옷방으로 쓰고, 나머지 방 하나가 더 있으면 아이방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거실은 아이들 장난감에 벽에는 ‘가나다’ 포스터나 ‘ABC’ 포스터가 붙어 있고 집 안 어디에도 아빠가 맘 편히 쉴 수 있는 곳은 없다.

“그럼 주로 어디서 쉬어?”

“화장실에서 10분 정도 스마트폰 보면서 쉬는 게 다야. 원래는 볼일 볼 때 오래 안 걸렸는데 그나마 화장실에 있으면 마음도 편하고 스마트폰으로 이것저것 보다 보니까 10분이 훌쩍 넘더라고.”

“나는 자동차! 차에 뭐 가지러 가는 척하면서 차 안에 혼자 있으면 마음도 편하고 낮잠도 잘 수 있고 혹시라도 아내한테 전화가 오면 바로 올라갈 수 있고, 차 안에 있는 게 제일 좋아.”

우리 어릴 때는 거실은 가족의 공간이자 아빠의 공간이라는 의미가 컸기 때문에 거실에서 놀다가도 아빠가 오면 내 방으로 도망치듯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안방도 엄마 아빠의 공간이라서 괜히 잘못 들어가서 어지르면 혼나기 일쑤였다. 그런데 요즘은 아이들이 집에서 차지하는 공간이 너무 많다. 아빠의 공간은 하나도 없고, 여길 가나 저길 가나 애들 장난감에, 놀이 매트에, 벽에는 아이들 백일 사진, 돌 사진, 유치원 졸업사진! 이 집 주인이 누군지 헷갈릴 정도로 아이 사진이 많다. 꼭 집주인이 아빠라거나 엄마라는 얘기는 아니다. 요즘 주 52시간 근무로 일찍 퇴근하는 아빠가 많고, 세상은 ‘저녁이 있는 삶’을 강조하고 있지만 오히려 집에 가면 쉴 시간이 없고, 쉴 곳도 없어서 마음이 불편하다는 아빠가 많다. 오죽하면 “회사에서 퇴근하면 집으로 출근!”이라는 신조어가 생겼을 정도다. 나는 문득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럼 퇴근하기 전에 동네 공원이나 아파트 놀이터에서 좀 쉬다가 들어가는 건 어때?”

“거긴 중고등학생이 많아서….”

“아, 걔들도 쉴 데가 마땅찮나 보구나.”

우리는 파할 때까지 ‘아빠는 어디에서 쉬어야 하나’에 대한 토론을 이어갔지만 결론은 나지 않았다. 나는 답답한 마음에 집에 와서 아내에게 말을 이어갔다.

“여보! 자기가 생각해도 너무 심각하지 않아? 밖에서 일하느라 힘들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는데, 집에 오면 그 어떤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온전히 쉴 수 있는 아빠들의 공간! 필요하지 않을까?”

그러자 아내가 대답했다.

“그럼 엄마는?”
 
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가족모임#아빠#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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