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살리고 벌목꾼 잡고… AI, 못하는 게 뭐니?[논설위원 현장 칼럼]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7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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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구글포럼으로 본 AI의 미래

김광현 논설위원
김광현 논설위원
인공지능(AI)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많다. 최근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앞으로는 첫째도 AI, 둘째도 AI, 셋째도 AI”라고 했다. 손 회장은 벤처 투자자다. 미래 산업에서 AI의 중요성을 이야기한 것이다.

AI는 경제·산업을 넘어 인류를 위해,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AI는 인프라다. AI의 등장은 전화의 발명, 자동차의 발명, 컴퓨터의 발명에 비견될 정도다. 혹은 그 이상이 될 수도 있다. 앞으로 발전 속도는 가늠하기 어렵다. 무엇을 할 수 있느냐보다 무엇을 할 수 없느냐는 질문이 더 어울린다.

9, 10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AI 관련 구글 아시아포럼에 참석했다.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 AI가 어떻게 활용되는지를 놓고 뜨거운 토론과 사례 발표가 이어졌다.

밀림속 자연의 온갖 소리 분석해

브라질 아마존 열대우림의 템베족(族) 거주 지역. ‘레인포리스트 커넥션’의 창립자이자 대표인 토퍼 화이트의 노트북에 특이한 음파감지 신호가 잡혔다. 전기톱의 음향 그래프였다. 화이트는 즉시 템베 부족장에게 무전을 쳤다. 그리고 음파 발생 진원지로 출동했다. 아니나 다를까 불법 벌목업자들이 트럭을 세워두고 한창 나무들을 잘라내고 있었다. 열대우림 훼손의 50∼90%가 불법 벌채 때문이다. 동영상을 보여준 화이트 대표는 “지구 온난화의 주범이 CO₂ 발생인데 1km²의 열대우림 보존 효과는 자동차 1000대를 만들지 않는 효과와 같다”고 말한다.

넓고 넓은 열대우림 한가운데서 어떻게 벌목꾼들의 전기톱 소리를 잡아낼 수 있었을까. 화이트 대표는 중고 휴대전화 5대를 편평한 판에 연결한 다음 태양광 전지를 부착해 높은 나무 끝 부분에 숨겨두었다. 휴대전화는 자신의 노트북에 깔린 인공지능(AI) 프로그램 ‘텐서플로’와 24시간 연결돼 있다. 열대우림에서는 원숭이, 매미, 앵무새, 나뭇잎의 버석거림 같은 온갖 소리들이 끊임없이 쏟아진다. 영리한 텐서플로는 멀리서 사람이 못 듣는 벌목 현장의 전기톱, 트럭 소리를 콕 집어낸다.

DMZ 생태계 보존에 활용하면 어떨까

음향 분석 AI가 열대우림에만 적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수중 생물은 보기는 어려워도 소리를 포착하기는 상대적으로 쉽다. AI는 여러 지역 멸종 위기 동물의 소리를 분류해 낸다. 태평양에서 녹음된 10만 시간 분량의 오디오 데이터를 학습한 AI는 혹등고래, 범고래 소리를 각각 인지한다. 이런 방법으로 수집된 고래들의 서식지, 산란 위치, 이동 경로 데이터는 멸종 방지에 활용된다. 수중 생물 개체의 90%가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는 보고가 있다. 열대우림 훼손과 마찬가지로 남획과 불법 어로가 주범이다. 이를 막는 데 AI의 역할이 점차 커질 것이다.

폭 4km, 길이 248km 한국의 비무장지대(DMZ). 서울에서 불과 자동차로 1시간 거리다. 1953년 정전협정 이후 66년간 인간의 발길이 미치지 못하는 지역이다. 한국 정부 조사 결과 포유류 조류 식물 등 7개 분야 4873종의 생물이 서식하고 있다. 한반도 생물종의 약 20%다. 멸종 위기종의 41%가 DMZ 일대에 서식한다. 수십 년간에 걸친 현지 주변 답사, 망원경을 통한 실측 조사 결과다. 앞으로 열대우림에서 활용된 AI의 음향 분석 기법이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동물의 서식 분포와 이동을 훨씬 적은 인력과 비용으로 보다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다. 음향 분석 AI 텐서플로의 활용 방안은 무궁무진해 보인다.

인간의사 능가하는 ‘AI 명의’

긴급전화와 구급차가 생명을 살리는 데 절대 요긴한 장치라면 앞으로 여기에 AI를 추가할 수 있을 것 같다. 컨설팅 회사 액센추어는 일본 사가현과 함께 구급차 프로젝트를 실행했다.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응급환자의 상태에 적합한 병원을 찾아가는 프로그램이다. 구급대원과 환자가 나누는 대화, 병원의 데이터 등을 통해 AI가 환자를 수용할 수 있는 병원을 찾아내는 것. 병원을 찾느라 허비하는 시간을 40% 줄였고 이송 시간을 평균 1.3분 단축했다. “사람의 목숨을 살릴 수 있는 확률이 7% 올라갔다는 것은 상품 판매량을 7% 올리는 것과는 의미가 다릅니다. 100명 중 7명을 살렸다는 겁니다.” 프로젝트 지휘자 구도 다쿠야 씨의 설명이다(일본경제신문, AI 2045 인공지능 미래보고서).

‘구글이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2013년 9월 30일자 타임지(誌)의 표지 제목이다. 이때 이미 IBM의 인공지능 왓슨은 60만 건의 진단서와 200만 쪽의 전문서적, 150만 명의 환자 기록을 학습했다. 폐암 진단에서 왓슨은 90% 정확도, 인간은 50%의 정확도를 보였다. 의사 출신이면서 구글 AI 프로덕트 매니저로 일하는 릴리 펑은 “세계적으로 사망률 1위는 폐암인데 폐암의 80%가 조기 진단이 안 된다”며 “AI의 방사선 사진 판독은 정확도가 높고 시간이 적게 걸려 의사의 부담을 덜어주고 환자의 생존율을 높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 세계 4억1500만 명 정도가 당뇨병성 망막증 환자 위험군이다. 이 가운데 50%가 실명한다. 그런데 인도에서만 안과 의사가 12만 명 정도 부족한 실정이다. 현재 당뇨병성 망막증 환자를 판단하는 실력이 AI와 의사가 비슷한 수준이다. AI가 진단만큼은 지금이라도 의사를 대체해도 손색이 없다는 말이다. AI는 데이터가 쌓일수록 실력이 늘고 있다. 진단 분야에서 의사를 능가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진단이 쉽고 빠르면 치료의 가능성이 높아진다. AI가 많은 사람에게 빛을 찾아주는 셈이다. 기술적 차원과는 별도로 원격 진료 같은 제도적 장벽이 해결돼야 함은 물론이다.

청각장애인의 입과 귀가 되다

뇌중풍(뇌졸중), 파킨슨병, 다발성 경화증 등 여러 신경질환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의사를 말로 표현하지 못한다. 말을 한다고 하는데 상대방이 알아듣지를 못하는 구음장애다. 디미트리 카넵스키는 러시아에 살던 어린 시절 청각장애를 얻었고, 그 이후에 영어를 배웠다. 카넵스키의 말은 두세 살 어린애가 버벅거리는 것처럼 들린다. 일반 사람은 도저히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그러나 AI는 카넵스키의 발음과 억양을 학습을 통해 알고 있다. 카넵스키는 자신의 말소리를 AI 알고리즘이 깔린 스마트폰을 통해 자막으로 보여줄 수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현재 4억6600만 명이 청각 또는 난청장애를 겪고 있다. 2055년에는 9억 명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한다. 보청기로 해결이 안 되는 사람들이다. 이미 무료로 배포돼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실시간 자막 프로그램이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상대방의 말을 AI가 실시간으로 번역해 스마트폰에서 자막으로 보여준다. 청력이 없어도 시력이 있다면 얼마든지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70개 이상의 언어와 방언을 지원하고 있다. 영어권보다는 정확도가 다소 떨어지기는 하지만 한국어도 가능하다.

방대한 문화유산 AI가 보존-관리

일본 초서 구즈시지는 현대 일반인들은 도저히 읽을 수가 없다. 중국 초서보다 더 간략한 데다 휘갈긴 문자다. 이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은 전체 인구의 0.01%가 채 안 된다. 수백만 권의 책과 10억 개가 넘는 구즈시지 역사문서가 사장될 위기다. 도쿄정보학연구소의 타린 클라누왓 연구원은 “구즈시지를 현대 일본어로 변환하는 머신러닝을 구축한 결과 한 페이지를 변환하는 데 약 2초, 책 한 권을 변환하는 데 1시간이 걸리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2300개의 문자를 해독할 수 있고 정확도는 85%라고 한다. 구글 번역기의 고문서 확장판인 셈이다.

우리나라 역시 주시경 선생이 한글을 본격적으로 보급하기 전에는 거의 모든 기록물이 한자로 돼 있다. 한자 번역 프로그램이 일반화되면 이를 스캔해서 한글로 번역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일본의 구즈시지보다 짧을 것이다. 조상들의 문화유산을 현대화하는 데 AI가 단단히 한몫할 게 틀림없다. AI가 인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것은 인간의 상상력의 크기와 비례한다. AI가 발전할수록 인문학적 상상력이 중요한 이유다.

도쿄=김광현 논설위원 kkh@donga.com
#인공지능#ai#도쿄 구글포럼#난청장애#문화유산 보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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