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구 기자의 對話]“수능으로 사교육을 조절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2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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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인 前 수능출제위원장

안태인 전 대학수학능력시험 출제위원장은 11월 29일 인터뷰에서 수능을 두 가지로 나누는 방법을 제안했다. 고교 교육을 제대로 이수했는지를 평가하는 것과 대학수학능력이 되는지를 알아보는 시험 두 가지다. 그는 “이렇게 나누면 대학수학능력 평가는 응용능력을 평가하는 쪽이기 때문에 어렵게 낸다고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안태인 전 대학수학능력시험 출제위원장은 11월 29일 인터뷰에서 수능을 두 가지로 나누는 방법을 제안했다. 고교 교육을 제대로 이수했는지를 평가하는 것과 대학수학능력이 되는지를 알아보는 시험 두 가지다. 그는 “이렇게 나누면 대학수학능력 평가는 응용능력을 평가하는 쪽이기 때문에 어렵게 낸다고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 5일 201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표가 발부된다. 물수능, 불수능으로 불린 해가 평온했을 때보다 더 많았던 우리 수능. 오죽하면 2002학년도 수능에서는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쉽게 출제하겠다는 정부의 약속을 믿었다가 충격을 받은 학부모와 학생들을 생각할 때 매우 유감스럽다”고 사과까지 했을까. 2007, 2009, 2011학년도 출제위원장을 지낸 안태인 서울대 명예교수(71·생명과학부)는 “수능 하나로 대학수학능력도 측정하고, 고교 교육과정 이수도 평가하고, 또 사교육까지 줄이려는 등 너무 많은 목표를 두다 보니 점점 더 쉽지 않은 일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출제위원과 출제부위원장, 그리고 세 번의 출제위원장을 역임했다. 》
 
―워낙 부담이 커 남들은 한 번도 안 하려 한다는데 위원장을 세 번이나 했다.
이진구 기자
이진구 기자

“사범대 출신이라 교수가 되기 전에 중고교에서 교사를 잠시 했다. 유학 후 서울대 생물교육과 교수로 부임했는데 사범대에 있다 보니 교원임용시험 출제도 하고, 교과서도 썼다. 그러다 보니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수능 문제 한 번 출제해 달라고 요청이 들어와 참여했는데 다행히 문제가 출제 모델로 사용될 정도로 잘됐다고 하더라. 그러더니 그 다음 해에는 출제부위원장으로 와 달라고 했고, 별 무리 없이 했다고 판단했는지 몇 년 후 2007학년도 수능 출제위원장을 맡아달라고 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문제에 오류가 나면 평가원장이 사임할 정도로 출제는 어려운 일이다. 그해 무사고 운전을 하니까 평가원에서 더 해도 좋다고 본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세 번이나 하게 됐고…. 문제 오류로 혼이 난 위원장도 있지만 그래도 출제위원장은 보람 있는 자리다.”

―출제위원장이던 2009, 2011학년도 수능이 역대 최고의 불수능이라던데….

“기사를 보면 그런 것 같은데 정확한 것은 평가원 자료를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 2011학년도는 어려웠다고 하더라.”

2013년 10월 초 한 수험생 카페에 ‘안태인 교수님이 사라졌다는 소문이…’라는 글이 올라왔다. 2009, 2011학년도 수능을 ‘헬’로 만든 분인데 학교에서 안 보이는 이유가 출제위원장으로 합숙에 들어갔기 때문 아니냐는 내용이었다. 그 아래에는 ‘만약 사실이라면 전 과목 핵폭탄 각오해야…’ ‘이번 수능 포기해야 하나’라는 댓글이 수십 개가 달렸다. 다행히(?) 이 해에는 출제위원장을 맡지 않았다.

―거의 해마다 홍역을 치르는데 난이도 조절은 어떻게 하나.

“합숙에 들어가면 먼저 평가원에서 매년 수능 문제를 아주 정밀하게 분석한 자료를 보여준다. 연도별 수능의 전체적인 난이도, 개별 문제마다 얼마만큼 어려워했는지, 모의 수능에서 어떤 문제를 가장 많이 틀렸는지, 수리가 평이했으니 한두 문제 정도는 어렵게 내는 게 좋겠다든지, 그런 가이드라인을 다 제시해준다. ‘출제요람’이라고 일정은 물론이고 출제 방법까지 모든 게 매뉴얼로 돼 있다. 질문은 어떤 식으로 제시하고, 어떤 방식으로 답을 고르게 하면 난도가 높아지고 낮아지는지 등이 예시돼 있다. 그걸 보고 올해 출제는 어느 영역의 난도를 높이고 낮출지, 문제 수준을 어느 정도로 할지 등을 정한다.”

2009학년도 수능 출제 경향을 발표하고 있는 안태인 전 수능 출제위원장.
2009학년도 수능 출제 경향을 발표하고 있는 안태인 전 수능 출제위원장.
―그런데 왜 난이도 조절에 실패하는 일이 벌어지나.

“난이도 조절은 정말 어렵다. 교육과정이 개편돼 책이 바뀌면 더 어렵고…. 이런 심리도 작용한다. 어떤 과목의 전년도 수능 문제가 쉬우면 아이들이 아무래도 덜 공부한다. 쉬우니까. 어려우면 더 파고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고…. 사람 심리가 그렇다. 이런 분위기가 은연중에 출제위원들에게도 반영된다. 난도를 좀 올려서 우리 과목을 더 공부하게 만들고 싶은 마음이….”

―그렇더라도 검토과정에서 걸러질 수 있는 것 아닌가.

“출제위원이 문제를 낼 때 자신이 예측한 난도를 함께 적어낸다. 이걸 보지 않은 상태에서 검토위원들도 문제를 풀고 난도를 매긴다. 양자가 차이가 나면 회의를 하는데 각자가 낸 문제를 모두 올려놓고 출제 의도부터 어떤 지식을 묻기 위해 냈는지, 어떻게 응용하는 걸 알아보기 위한 건지, 처음부터 끝까지 다 같이 이의 제기를 한다. 속된 말로 ‘씹는’거지. 잘 내는 사람도 있지만 경험이 적은 사람은 아주 쩔쩔맨다. 문제를 냈는데 끌어내려지고, 다시 올렸는데 끌어내려지고 하면…. 출제자 입장에서는 기분 나쁜 정도가 아니다. 더군다나 다 같은 동료 교수이고 같은 분야인데…. 후배가 선배가 낸 문제를 지적하다 보면 다툼도 일고, 또 그 반대로 선배가 낸 문제라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기하지 못하는 일도 있다. 불화가 심해지면 이런 과정이 잘 작동하지 않게 된다. 그래서 출제위원장 역할 중 가장 중요한 일이 화합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거다.”

―‘EBS 교재 70% 연계’란 말을 수험생과 출제자가 다르게 생각하는 탓도 있다던데….

“상당히 많은 수험생들이 EBS 기출 문제에서 70%가 나오는 것으로 생각한다. 정확한 뜻은 수능 문제의 소재를 EBS 교재에서 따온다는 것이다, 문제를 그대로 낸다는 게 아니라. 그러다 보니 조금만 응용해도 어렵게 출제됐다고 느낀다.” (수능에 EBS 교재를 연계한 이유가 사교육 경감을 위해서인데 그렇다고 사교육이 준 것 같지는 않다.) “통계는 모르지만 아마 어떤 방식으로 해도 사교육은 줄이기 힘들 것 같다. EBS 교재를 연계시키자 EBS 교재를 철저히 분석해 가르치는 학원이 나왔고 지금은 다 그렇게 하고 있으니까.”

―수능을 쉽게 내는 이유가 어려우면 사교육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하지만 2001학년도 수능은 만점을 받고도 서울대에 떨어질 정도로 물수능이었는데 그렇다고 사교육이 준 것 같지도 않다.

“어려우면 더 공부해야 한다고 학원 가고, 쉬우면 하나라도 실수하지 않으려고 학원 가고…. 거참…. 우리 애도 2001학년도 수능을 봤는데 실수를 해서 높은 점수를 받지 못했다. 우리 학부모들이 워낙 교육열이 높다 보니 아예 제도적으로 사교육을 막지 않는 한 방법이 없는 것 같다. 학원은 허용한 상태에서 수능 문제로 사교육을 컨트롤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수능에 너무 많은 교육 목표를 넣다 보니 이도 저도 아닌 게 된 것 아닌가.

“대학수학능력시험이란 말처럼 원래 취지는 대학에서 공부할 만한 능력을 갖고 있는지를 측정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에 고교 교육과정을 제대로 이수했는지도 평가하고, 대입 전형자료로도 쓴다. 입시 자료로 쓰려면 등수를 매겨야 하니 변별력이 있어야 하고, 당연히 어려운 문제도 있어야 하는데 그러면 또 교육과정을 벗어난 문제라는 지적을 받는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앞으로는 두 가지 시험으로 나누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두 가지라니?) “고교 교육을 제대로 이수했는지를 평가하는 것과 대학에서 공부하기 위한 분석력 이해력 독해력 등을 갖췄는지를 보는 시험 두 가지다. 전자는 정상적으로 이수했다면 만점자가 얼마든지 나와도 상관없다. 사실 그게 더 바람직하다. 모든 학생이 제대로 배웠다는 방증이니까. 후자는 실제 수학능력을 평가하는 것으로 응용 쪽이니까 교과서 밖에서 어렵게 내도 괜찮을 것 같다. 지금은 둘 다 섞여 있으니까….”

―단기간 합숙 출제 시스템 때문에 출제 시간이 부족해 문제가 생긴다고 하는데….

“내 경험으로는 시간이 많다고 더 좋은 문제가 나오지는 않는 것 같다. 사람 머리에 한계가 있어서…. 오래 공부한다고 합격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오류는 다소 줄일 수 있을 것 같지만.” (문제은행식으로 출제하면 안 되나.) “평가원에서 검토한 것으로 아는데, 문제은행식으로 내면 보안을 장담할 수가 없다. 그 많은 문제를 내려면 그만큼 많은 출제자가 필요하다. 수능은 1년에 한 번인데 그 많은 사람들을 문제가 사용될 때까지 합숙시킬 수도 없고…. 또 자기 자녀나 친인척 자녀가 시험을 보면 그해에 사용될지는 알 수 없겠지만 ‘이런 문제를 냈다’고 알려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동안 숱하게 입시제도가 바뀌었는데 솔직히 과거 본고사, 학력고사 시절에 비해 지금이 더 나은 학생들을, 더 정확하게 뽑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음…, 허허허…. 그건 자신 없는데…. 지금 제도에도 문제는 있다. 또 학생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기 위해 수시모집을 늘렸지만 최근 ‘숙명여고 쌍둥이 사건’처럼 문제가 발생하면 제도 자체에 대한 불신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걸 극복해서 발전시켜야지 오점만 보고 과거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 그건 학생을 종합적으로 보지 않고 단순 암기력 하나만 보고 뽑자는 거니까….”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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