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해의 인사이트]안희정, ‘노무현 바람’ 다시 일으킬까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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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해 논설위원
최영해 논설위원
“아무것도 해준 것 없이 고생만 시켰습니다. 안희정 씨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생을 다했죠. 나는 엄청난 빚을 진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얼굴을 책으로 감싼 채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한나라당에 정권을 내준 2008년 1월 노무현과 함께한 20년의 기록인 안희정의 ‘담금질’ 출판기념회 축하 동영상을 청와대에서 찍던 중 벌어진 일이다. 2002년 대선 불법 정치자금 수수로 안희정이 옥살이한 것이 자신 때문이라는 고백으로 들렸다.

‘동지’ 안희정에 빚진 노무현

2002년 노무현은 대통령 당선 뒤 안희정을 청와대 부속실장으로 쓰려 했지만 검찰의 타깃이 된 그를 청와대로 데려갈 수 없었다. 안희정은 대신 민주당 국가전략연구소 부소장을 맡다가 노무현 정부 출범 1년이 채 되기도 전인 2003년 12월 대검 중수부에 구속된다. 불법 대선자금 47억7000만 원을 받고 자신의 아파트 중도금으로 1억6000만 원을 쓴 사실이 드러났다. 대법원까지 간 끝에 안희정은 1년 동안 옥살이했다.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에 청춘을 다 바친 안희정은 ‘모든 걸 혼자 떠안고 가야겠다’고 되뇌었지만 섭섭한 감정을 감출 수 없었다. 1년 복역 끝에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서면서 “내 발등을 내가 찍었다”고 토로했다. 안희정이 출소하던 날 국회의원 이광재는 의정일기에 “희정이와 영원히 함께할 것”이라고 적으며 ‘독박’ 쓴 안희정에게 미안한 감정을 드러냈다. 2006년 광복절특사에서 사면을 받았지만 노무현 정부에서 안희정은 어떤 공직도 맡지 못했다.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후보 ‘금강캠프’에서 안희정은 행정지원팀장을, 이광재는 기획팀장을 맡았다. 둘은 긴밀하게 협력하면서도 캠프 주도권을 놓고선 치열하게 경쟁하는 사이였다. 이광재가 전략가였다면 안희정은 살림꾼이었다. 노무현은 캠프 살림이 어찌 돌아가는지도 몰랐다.

노 대통령 당선 후 안희정이 권력 중심에서 점점 멀어지는 동안 이광재는 승승장구했다.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맡으면서 ‘왕(王)수석’ 문재인 민정수석에 버금가는 권력을 휘두른다. 안희정 없는 청와대에서 이광재가 독주한다는 얘기가 파다했다. “청와대에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리는 사람이 있다”는 천정배 의원의 직설에 이광재는 8개월 만에 청와대를 떠난다. 안희정이 백수일 때 이광재는 고향 강원도에서 국회의원에 두 번 당선됐다.

2010년 7월 안희정이 충남지사에, 이광재가 강원지사에 당선되기까지 안희정이 가시밭길을 걸었다면 이광재는 꽃밭을 누볐다. 하지만 지금 안희정은 문재인과 대권을 놓고 겨루지만 이광재는 불법 정치자금 수수로 지사직을 잃고 피선거권도 10년 동안 상실했다. 정치무대에서 멀어진 이광재는 민간 싱크탱크인 여시재(與時齋)에서 정책개발로 안희정을 도우며 마음의 빚을 갚고 있다.

盧, 文-安누구 손 들어줬을까

같은 친노(친노무현)이지만 연정(聯政)에서부터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재벌 개혁, 일자리 정책 등 핵심 공약에서 문재인과 안희정의 차이는 같은 당 후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다. 2005년 여소야대 정국에서 출구가 꽉 막힌 노 대통령의 심경을 대변하듯 안희정은 대연정 불씨까지 지폈다. 그가 2002년 ‘노풍(盧風)’을 재현할 수 있을까. 민주당 경선 기간이 짧아 쉽지 않아 보이지만 30%에 정체돼 있는 문재인 지지율을 보면 넘지 못할 벽도 아닌 듯하다. 노무현이 지금 살아있다면 ‘친구 문재인’의 손을 들어줄지, ‘동지 안희정’을 변호할지 궁금하다.
 
최영해 논설위원 yhchoi65@donga.com
#노무현#담금질#안희정#문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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