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해 국제부장의 글로벌 이슈&]딸바보는 가끔 주변 예상을 빗나가게 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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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 사진사 피트 수자가 2011년에 찍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 가족사진. 대통령 집무실인 오벌오피스에서 미셸 오바마, 큰딸 말리아, 오바마 대통령, 막내 사샤(왼쪽부터)가 활짝 웃고 있다.사진 출처 백악관 홈페이지
백악관 사진사 피트 수자가 2011년에 찍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 가족사진. 대통령 집무실인 오벌오피스에서 미셸 오바마, 큰딸 말리아, 오바마 대통령, 막내 사샤(왼쪽부터)가 활짝 웃고 있다.사진 출처 백악관 홈페이지
최영해 국제부장
최영해 국제부장
“하버드에게.

축하합니다. 나, 말리아 오바마는 2016년 가을부터 다닐 학교로 하버드대를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사실을 알리게 돼 기쁘게 생각합니다. 좋은 시설을 갖춘 수많은 대학이 치열하게 경쟁을 벌였는데 최종적으로 하버드대가 선정된 것에 대한 하버드의 성취를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 나는 어떤 장학금도, 그리고 어떤 형태의 재정적인 도움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나는 백만장자이고 미국 대통령의 딸이기 때문입니다. …

―대통령의 딸 말리아 오바마”

미국의 한 유머사이트(aboveaverage.com)에서 조애나 브래들리라는 기자가 지난해 10월 5일 올린 말리아의 하버드대 입학통지서 내용이다. 하버드대가 합격생들에게 보내는 합격통지서 양식을 그대로 본떠 말리아 입장에서 대학에 보낸 가상의 편지다. 주객이 전도된, 촌철살인(寸鐵殺人)의 고급 유머에 웃음이 절로 나온다. 아이비리그(미국 동부의 명문대학)들이 서로 말리아에게 입학해 달라고 구애하는 상황에서 브래들리는 우스꽝스러운 개그 편지 기사를 선보여 배꼽을 잡게 했다. 그런데 그의 예측은 7개월 후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엄마 미셸 오바마가 “딸이 간판 보고 대학을 선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이틴 잡지에서 공공연하게 인터뷰까지 했건만 말리아는 막판에 하버드대 간판을 선택했다. 오바마는 내색하지 않아도 엄마 말을 듣지 않은 말리아를 예뻐할 것 같다. 누가 뭐래도 최고 명문(prestigious) 대학이 하버드라는 데 토를 달 사람은 많지 않다. 말리아의 SAT 점수와 GPA(학점)는 공개되지 않지만 엄마 아빠가 모두 하버드대 로스쿨을 나온 덕을 꽤 본 것 같다. 여기에 현직 대통령 딸이라는 천문학적 프리미엄도 붙어 있으니 합격은 일찌감치 따 놓은 당상이었다.

말리아가 6월 졸업하는 학교는 워싱턴의 유명 사립학교 시드웰 프렌즈 고등학교(Sidwell Friends Upper School)다. 백악관에서 네 블록 떨어진 곳에 있는 이 학교에 동생 사샤도 9학년(미국 고교 4년 중 1학년)에 다닌다. ‘워싱턴 사립학교의 하버드’로 불리는 이곳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쟁쟁한 정치인 자녀들이 많이 다니기로 유명하다. 조 바이든 부통령의 손자와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의 아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딸, 앨 고어 부통령의 아들이 이 학교 출신이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의 딸 첼시도 이 학교 졸업생이다. 1928년엔 지치부노미야 야스히토(秩父宮雍仁) 친왕의 비(妃) 세쓰코(勢津子) 여사가 졸업했다. 로널드 레이건의 부인 낸시 레이건은 부설 초등학교에 다녔다. 졸업생 중엔 유엔 주재 소련대사도 있다. 지구 온난화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 ‘불편한 진실’(2006년)을 감독한 데이비스 구겐하임도 이 학교 졸업생이다.

입학 사정은 성적 위주인데 퀘이커 교도들에겐 가산점을 준다. 이들은 ‘안으로부터의 빛’을 믿고 인디언과의 우호, 노예제도 반대, 전쟁 반대, 십일조 반대를 내세운다. 1960년 이후 ‘씨M의 소리’ 함석헌 선생은 퀘이커교 한국대표로 활동했다. 1883년 개교해 1956년까지는 백인들만 다녔지만 이후엔 흑백 차별이 철폐돼 지금은 47%가 비백인 소수 인종이다. 한 해 등록금이 3만9360달러, 책값 500∼700달러, 통학버스 1325달러를 합치면 연간 5000만 원이 든다. 오바마 대통령이 내년 1월 대통령에서 물러난 뒤 자신의 집이 있는 시카고로 가지 않고 월세를 구해 2년 반 동안 워싱턴에 머무르기로 한 것도 시드웰 프렌즈에 막내딸 사샤를 계속 다니게 하기 위해서다. 워싱턴포스트는 “힐러리 클린턴이 백악관에 들어가면 클린턴의 511m²(약 155평) 저택을 빌릴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지만 추측 보도일 뿐이었다. 오바마는 “사샤가 고교 재학 중에 전학하는 것은 너무 힘들다. 우리 가족이 어디에 살지는 사샤에게 결정권이 있다”고 주변에 얘기할 정도로 막내딸을 끔찍이 여긴다. 하와이에서 태어난 오바마는 여섯 살 때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로 이주해 4년을 보냈다. 딸에게는 그런 불편을 주지 않겠다는 아버지 심정을 이해할 만도 하다.

퇴임한 대통령이 수도 워싱턴에 거주하는 것은 제28대 우드로 윌슨 대통령 이후 약 100년 만이다. 미 언론은 오바마 퇴임 후 거처로 뉴욕이나 시카고, 로스앤젤레스, 하와이 등을 꼽았지만 모두 빗나갔다. 시카고대에 마련된 오바마재단에서 전직 대통령으로서 연구 활동을 할 것으로 생각했던 사람들이 많았지만 내년부터 오바마가 앤드루 공군기지 골프장과 메릴랜드의 명문 골프장인 콩그레셔널 컨트리클럽(전직 대통령에겐 공짜 회원권을 준다)을 거니는 모습이 낯설지 않을 것 같다. 워싱턴 인근 햄버거 가게에서 오바마 부부와 마주칠 수도 있다. 전학 걱정 없이 고교 생활을 하게 된 사샤는 하버드대 입학이 언니 말리아보다 더 쉬울지도 모른다.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라는 중국 옛말이 딸바보 오바마에게 딱 어울린다.
 
최영해 국제부장 yhchoi65@donga.com
#버락 오바마#하버드#말리아 오바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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