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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인디아나존스들]조각 한쪽 한쪽 맞추자…‘신라의 미켈란젤로’ 걸작이 생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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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인디아나존스들]조각 한쪽 한쪽 맞추자…‘신라의 미켈란젤로’ 걸작이 생생

김상운 기자 입력 2017-02-23 03:00수정 2017-03-08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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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경주 사천왕사터 발굴
20일 경북 경주시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 최장미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 윤형원 국립부여박물관장, 윤근일 전 경기문화재연구원장(왼쪽부터)이 사천왕사 녹유신장벽전을 배경으로 발굴 당시를 회고하고 있다. 경주=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경주 낭산(狼山)은 예부터 신들이 노닌다는 신유림(神遊林)이 있던 상서로운 곳이다. 20일 문무왕 화장터로 알려진 능지탑을 거쳐 선덕왕릉에 다다르자, 낭산 아래로 울창한 소나무 숲이 펼쳐졌다. 숲길을 10분쯤 내려갔을까. 철길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에 폐사지 한 곳이 보였다. 통일신라시대 으뜸가는 호국사찰이던 사천왕사(四天王寺) 터다.

2006∼2012년 7년에 걸쳐 발굴이 이뤄진 사천왕사에는 금당과 목탑이 있었음을 알려주는 주춧돌과 귀부(龜趺·거북 모양의 비석 받침돌), 당간지주(幢竿支柱)만 덩그러니 남아 있을 뿐이다.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1300여 년 전 이곳에서 동아시아 최강국 당나라와의 전쟁을 목전에 둔 문무왕이 온 백성의 염원을 담아 부처의 도움을 갈구했다.

○ 신라의 미켈란젤로가 남긴 걸작

사천왕사터에서 출토된 녹유신장벽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갑옷을 입고 칼을 쥔 채 악귀를 엉덩이로 깔고 앉은 신장의 위세가 당당하다. 커다란 코에 부리부리한 눈은 언뜻 봐도 위협적이다. 얼굴만 봐도 악귀들이 감히 불법(佛法)을 넘보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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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왕사에서 출토된 녹유신장벽전(綠釉神將벽塼·녹색 유약을 칠한 신장 조각 벽돌)은 승려 양지가 남긴 수작으로 손꼽힌다. 영묘사 장육삼존상과 천왕상을 제작하기도 한 양지는 ‘신라의 미켈란젤로’로 통한다. 녹유신장벽전은 조각가 이름과 제작 시기(679년)가 모두 확인되는 신라 불교조각이라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가 높다.

2009년 5월 국립경주박물관 사천왕사 특별전에서 공개한 녹유신장벽전 복원품은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일제강점기에 수습된 벽전 조각과 발굴 현장에서 출토된 조각이 90여 년 만에 결합돼 온전한 모습을 드러낸 일대 사건이었다.

이는 2006년부터 발굴을 맡은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의 윤근일 당시 소장(70·전 경기문화재연구원장)과 윤형원 학예연구실장(51·현 국립부여박물관장), 최장미 학예연구사(38·현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 차순철 전문위원(49·현 서라벌문화재연구원 조사연구단장)의 노력 덕에 가능했다.

○ 목탑 ‘면석 장식’ 역할 밝혀져

목탑 기단부 상상 복원도. 면석으로 쓰인 녹유신장벽전이 보인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당초(唐草·덩굴) 무늬가 살짝 보인다!”

2006년 10월 12일 사천왕사 서쪽 목탑 터 발굴 현장. 계단 돌이 쓰러져 생긴 틈 사이로 차순철이 조각상을 발견했다. 목탑의 기단 면석을 장식한 당초 무늬 벽전과 녹유신장벽전 조각이었다. 파괴된 계단 돌이 벽전 쪽으로 쓰러진 건 발굴팀엔 행운이었다. 흙더미 속에서 계단돌이 감싸준 덕에 녹유신장벽전이 토압에 휩쓸리지 않고 제 위치를 지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고고학에서 유구 조성 당시 유물의 본래 위치를 파악하는 건 매우 중요하다. 유물의 성격을 규정짓는 핵심 단서가 될 수 있어서다.

한 발굴조사원이 목탑터에서 녹유신장벽전을 노출시키고 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사천왕사 발굴도 예외는 아니었다. 발굴 전 녹유신장벽전은 탑 안에 봉안돼 있었을 거라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2006년 발굴에서 목탑 기단의 계단 옆에 녹유신장벽전이 서 있던 사실이 확인됨에 따라 이것은 탑 면석(面石)이었음이 밝혀지게 됐다. 조사 결과 목탑 기단부 네 면에 걸쳐 24개의 신장벽전이 화려하게 장식돼 있었다.

○ 신장상…사천왕 vs 팔부중 논쟁

경주 낭산과 사천왕사지 발굴현장 전경.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녹유신장벽전에 조각된 험상궂은 신장들의 정체는 뭘까. 사실 이 부분은 고고미술사학계의 오랜 논쟁거리 중 하나다. 학계 일각에서는 사천왕사의 명칭과 관련지어 신장상은 사천왕(四天王·수미산 중턱 사왕천에서 불법을 지키는 수호신)을 묘사한 걸로 봤다. 그러나 ‘사천왕사 탑 밑에 팔부신장이 새겨져 있다’는 삼국유사 기록을 근거로 팔부중(八部衆·육욕천 등에 머물며 불법을 수호하는 여덟 신)으로 보는 주장도 제기됐다.

사천왕사지 가람배치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이와 관련해 2008년 7월 3일 사천왕사 동쪽 목탑 터 발굴 성과가 주목된다. 이곳 기단부 계단 옆으로 세 종류의 녹유신장벽전이 나란히 발견됐기 때문이다. 서쪽 목탑에서 나온 녹유신장벽전도 이 세 가지(A, B, C) 유형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더구나 이들의 출토 위치도 조성 당시 그대로여서 신장벽전의 배치 순서도 파악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당시 목탑 기단은 ‘A-B-C-계단-A-B-C’ 순으로 구성됐던 것이다.

이에 따라 녹유신장벽전 3개가 한 세트임을 감안할 때 신장상의 정체는 사천왕이나 팔부중이 아닌 제3의 존재였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불교조각 연구자인 임영애 경주대 교수는 “탑의 가장 아래인 기단에는 신격(神格)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신왕상(神王像)이 조각됐을 걸로 본다”며 “그보다 위인 사천왕상은 목탑 안에 봉안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인디아나존스들 
 

<26> 부여 왕흥사 목탑 터 발굴
 
<25> 공주 석장리 유적 발굴한 박희현 서울시립대 명예교수
 
<24> 익산 왕궁리 유적 발굴한 최맹식 국립문화재연구소장, 이주헌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장, 전용호 학예연구사
 
경주=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경주 사천왕사터#신라의 미켈란젤로#녹유신장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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