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비례 중개료 이해 못해 창업… 세상에 없던 길 낼 것”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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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 기자가 만난 사람]‘부동산 벤처’ 창업한 공승배 전 법무법인 ‘현’ 대표 변호사

《 최근 부동산 공인중개업계에 ‘화성 침공’과 같은 일이 발생했다. 서울 강남의 잘나가는 중견 로펌 대표 출신의 40대 변호사가 전국 9만여 명의 개업 공인중개사에게 도전장을 낸 것이다. 2006년 대법원이 “변호사 자격증만으로 부동산 공인중개업을 할 수 없다”고 판결한 지 10년 만에 변호사의 중개업 진출 논란도 재연됐다. 이를 두고 “‘돈키호테 변호사’의 골목상권 침범” “변호사 2만 명 시대의 밥그릇 전쟁”이라는 비판부터 “영세한 부동산 중개서비스 선진화 계기” “칸막이 규제를 깨는 파괴적 혁신”이라는 다양한 해석이 쏟아지고 있다. 올해 1월 온·오프라인의 장점을 결합한 ‘O2O(Online to Offline)’ 부동산 중개서비스 벤처를 창업한 공승배 변호사(45)를 서울 서초구 서초동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

공승배 변호사는 열 달간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한 사무실 공유회사 건물에 둥지를 틀고 창업을 준비했다. 이달 초 그곳 회의실에서 만난 그는 부스스한 헤어스타일에 캐주얼을 입은 영락없는 벤처 창업가 모습이었다. 그는 사업이 본격화된 이달 16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으로 사무실을 옮겼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공승배 변호사는 열 달간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한 사무실 공유회사 건물에 둥지를 틀고 창업을 준비했다. 이달 초 그곳 회의실에서 만난 그는 부스스한 헤어스타일에 캐주얼을 입은 영락없는 벤처 창업가 모습이었다. 그는 사업이 본격화된 이달 16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으로 사무실을 옮겼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공 변호사의 사무실은 그가 재벌 3세 미국 변호사 등 20여 명의 억대 연봉 변호사를 거느린 중견 로펌 ‘현’을 세운 대표변호사였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단출했다. 사무실 공유회사에서 좌석당 30만∼50만 원을 주고 사무공간을 빌려 쓰고 있었다. 다른 회사 직원들과 등을 맞댄 책상에서 그를 포함한 변호사 4명, 정보기술(IT) 개발자 6명, 스태프 2명 등 12명이 일하고 있었다.

그가 내민 명함은 트러스트라이프스타일 대표와 트러스트법무법인 대표 등 2개였다. 트러스트라이프스타일은 온라인에서 아파트 매물을 무료로 소개하고, 오프라인의 트러스트법무법인 소속 변호사들이 매물 현장 확인, 권리 분석, 거래 계약서 작성 등의 법률 서비스를 유료로 제공하는 온·오프라인 융합 모델로 창업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1월 신문에서 ‘전세보증보험 인기’라는 기사를 봤어요. 전세난이 심각하다는 걸 읽고 ‘이거다’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이사 다니면서 ‘내가 해도 이보다 잘하겠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분통 터지는 일이 많았거든요. 부동산 중개보수가 집값에 비례하는 것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넉 달 뒤 그는 손수 세운 로펌을 그만두고 창업 준비에 나섰다. 그는 “법적 책임은 변호사가 가장 잘 아니 부동산 중개 비즈니스를 플랫폼화해 가격을 낮추면 성공할 것 같았다”라며 “더 늦기 전에 ‘세상에 임팩트를 주는 일’에 도전하고 싶은 열정이 생겼다”고 말했다.

“잘나가는 로펌을 그만둔다고 하니 주변에선 ‘중년의 오춘기냐’라고 하더군요. 아내는 ‘지금도 잘살고 있는데 왜 이러느냐. 로펌 대표가 복덕방 사장을 하겠다는 거냐’라며 펄쩍 뛰었어요. ‘이 일을 잘 키우면 세상에 정말 좋은 일을 할 수 있다’고 한 달을 설득해 아내의 승낙을 받았습니다.”
변호사, 중개업 진출 논란 2라운드

창업 과정은 만만치 않았다. 홀로 사업을 구체화하고 팀을 꾸리다 보니 시행착오가 거듭됐다. 시스템을 개발하고 인건비를 주느라 변호사로 일하며 모아 두었던 10억 원에 가까운 창업자금도 들어갔다. 그는 “마음에 맞는 직원들을 영입하기 위한 ‘팀 빌딩’이 가장 어려웠다”고 말했다.

“잠자리는 360도를 볼 수 있고 곤충 중에서 가장 빨리 날 수 있다고 해요. 세상의 모든 매물을 가장 정확하고 빠르게 찾아주겠다는 뜻에서 회사 로고(CI)를 잠자리를 본떠 만들었습니다.”

트러스트는 변호사와 스태프가 2인 1조가 돼 아파트 매물을 현장 확인하고 3차원(3D) 카메라로 찍어 온라인에서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5성급 해외 호텔의 온라인 객실안내 서비스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바쁜 소비자들이 현장에 오지 않고도 집 상태를 확인할 수 있게 해주기 위해서다. 매물마다 변호사가 권리 관계를 분석한 보고서도 첨부될 예정이다.

가격도 파격적이다. 온라인 매물 알선은 무료이며 변호사들이 제공하는 법률 서비스에 대해서만 45만 원(매매가 2억5000만 원 미만)과 99만 원(2억5000만 원 이상)을 정액으로 받는다. 10억 원짜리 집을 사고팔 때 공인중개사에게 내야 할 중개보수는 400만 원(0.4% 기준)이지만, 트러스트에서는 99만 원으로 거래를 끝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변호사들은 시간당으로 돈을 받는 것에 익숙하다”며 “10억 원짜리든 100억 원짜리든 들이는 품은 비슷하기 때문에 보수는 플랫(정액)하게 가자고 했다”라고 말했다.
“골목상권 침해 아니다”

변호사와 IT를 내세운 트러스트의 가격 파괴 모델은 영세한 공인중개업계에 큰 파장을 몰고 왔다. 한국의 부동산 중개업은 평균 종사자가 1.6명으로 영국(7.7명) 일본(4.3명)보다 영세하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는 이달 초 “변호사가 부동산 중개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불법”이라며 트러스트 측에 사업 포기를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고, 그는 ‘선의의 경쟁을 하자’는 답변서를 보냈다. 공인중개사법은 자격증이 없는 사람이 중개 업무를 돈을 받고 하는 걸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무료로 매물을 알선하고 변호사의 법률 서비스에 대해서만 돈을 받는 트러스트의 서비스는 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게 공 변호사의 주장이다.

“이사할 때마다 내는 중개보수가 너무 비싸요. 살 때 내고, 팔 때도 내야 하죠. 정답은 소비자에게 있습니다. 서민의 비용 부담을 덜고 불편을 없애는데 골목상권 침해라고 하니 수긍할 수 없어요.”

그가 창업 과정에서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거나 공인중개사들과 협력하는 노력을 하지 않아 공인중개사 업계를 의도적으로 자극하는 ‘노이즈 마케팅을 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이에 대해 미국 전자상거래 회사인 아마존의 전자책인 킨들을 예로 들었다. 킨들이 성공한 건 콘텐츠 유통업자인 출판사가 아니라 콘텐츠 제공자인 저자들과 직접 손을 잡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부동산 시장의 콘텐츠 제공자는 집주인”이라며 “킨들처럼 세상에 없는 새로운 길을 내고,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등산로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요금 더 낮추거나 중개사와 협력할 수도”

“집 시세가 5억 원인데 선순위 근저당이 3억 원, 전세 보증금이 1억5000만 원이라고 하면 안전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등기되지 않은 선순위 권리가 숨어 있을 수 있죠. 상속세, 증여세 같은 세금이나 집주인이 개인사업자일 경우 체불 임금 등이 세입자보다 우선순위에 있습니다.”

그는 “이런 권리분석이야말로 변호사들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라며 “변호사의 서비스는 확실히 다르다는 걸 알리고 싶어 오프라인 사업은 무조건 변호사로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공인중개사들과 언제든지 대화할 수 있다”며 협상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그는 “소비자 생각이 제 생각과 다르다면 그때는 맞춰갈 것”이라며 “소비자가 원하면 젊고 유능한 공인중개사들을 영입할 생각도 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의 회사에는 공인중개사 1명이 일하고 있다. 트러스트 이름으로 중개법인도 등록해뒀다. 그는 “주택사업은 변호사 중심으로 하되 토지 등의 신사업은 공인중개사들과 협력해 중개보수와 변호사 수임료를 따로 받는 식의 사업 이원화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인중개사들과의 갈등 외에도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변호사의 전문성과 IT를 결합한 그의 사업모델이 시장에서 받아들여질지도 미지수다. 트러스트 홈페이지에는 서울 아파트 매물 200여 건이 올라와 있지만 아직 거래가 이뤄진 곳은 없다. 그는 “고객 신뢰를 잃지 않으려고 가격 조정에 적극 개입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협의 중인 매물이 있어 곧 계약이 성사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5년 후 변호사 100∼200명을 채용해 서울 아파트 거래시장의 10%를 차지하는 게 목표”라며 “서울의 25개 구마다 분사무소를 두는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면 요금을 더 낮출 생각도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한국판 미쓰이부동산 만들 것”

“이젠 업역의 벽이 허물어지는 ‘컨버전스 시대’잖아요. 정부가 한국의 미쓰이부동산(부동산 개발, 임대, 자산관리, 중개 컨설팅 등을 모두 제공하는 일본의 종합 부동산회사)을 만들겠다고 하는데, 여기에 필요한 인력이 변호사입니다.”

‘변호사의 밥그릇 싸움’이라는 비판에 대해서는 “‘변호사가 잘할 수 있는 일은 변호사가 하는 게 맞다’라는 벤처정신으로 이 길을 선택한 것이지, 변호사 업계가 어려워 이쪽으로 넘어온 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변호사 2만 명의 시대에 변호사라는 타이틀만으로 승부를 하는 시대는 지났다는 건 인정했다.

그는 “변호사도 배운 지식을 활용해 법정 밖으로 나아가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며 “시즌 2, 3, 4의 후속 사업 아이디어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장기 목표는 보험업 진출이다. 기업 인수합병(M&A)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매도자의 진술과 보장 위반 책임을 보상하는 진술보장보험 등을 접한 후 보험회사 창업의 꿈을 갖게 됐다.

그는 역할모델로 저명한 법조인 대신 일본 소프트뱅크 창업자인 손정의와 아마존의 창업자인 제프 베저스를 꼽았다. 10년, 20년 뒤에도 변하지 않을 가치로 사업에 도전하는 베저스와 결단력이 뛰어난 손정의를 존경한다는 것이다.

“내가 모르는 일, 번거로운 일, 귀찮은 일, 억울해서 싸워야 할 일은 10년, 20년이 지나도 계속 생길 겁니다. 이런 일이야말로 변호사들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사업입니다.”
▼공승배 대표는▼

1971년 부산에서 태어나 1995년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이듬해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2002년 법무관 재직 시 국내 변호사 중 처음으로 미국 재무분석사(CFA) 자격증을 땄다. 영어 실력과 서른이 넘은 나이의 벽을 넘지 못하고 글로벌 투자은행(IB)이나 사모펀드 진출을 포기한 것이 “가장 후회스러운 일”이라고 말한다. 법무법인 광장, 화우를 거쳐 2007년 법무법인 ‘현’을 세워 기업 인수합병(M&A) 전문 변호사로 이름을 알렸다.

박용 기자 parky@donga.com
#부동산#중개료#현#공승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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