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형의 생각하는 미술관]<58>엇갈린 사랑의 진술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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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세티, ‘베아타 베아트릭스’.
로세티, ‘베아타 베아트릭스’.
19세기 중반 경제적 호황기 영국 사회는 보수적이었습니다. 금욕적 사고가 당대 윤리관으로 확고히 자리 잡고 있었지요. 도덕과 절제는 존중되었고, 감각과 본능은 금기시되었지요.

단테이 게이브리얼 로세티(1828∼1882)는 당대의 가치와 충돌한 예술가였습니다. 이탈리아 출신으로 영국에서 활동했던 화가는 여성을 관능적으로 재현한 그림을 다수 남겼습니다. 화가는 시대가 존중했던 순수한 여성뿐 아니라 경계했던 타락한 여성도 그렸어요. 그럼에도 촉각적 붓질과 감각적 색채가 어우러져 그림 속 여성들은 대부분 몽환적입니다.

화가는 여성 상반신을 신비롭게 재현해 예술 전형을 만들어냈습니다. ‘베아타 베아트릭스’도 로세티 양식에 충실한 그림 중 하나입니다. 은은한 안개를 배경으로 눈을 감고 있는 그림의 주인공은 엘리자베스 시덜(1829∼1862)입니다. 모자 상점 점원으로 일하다 당대 미술가들의 걸작 탄생에 힘을 보탠 모델이었지요. 화가의 아내로 더 유명하지만 사실은 15편의 시와 100점이 넘는 소묘 및 그림을 남긴 예술가였어요.

화가는 시덜을 매번 성스럽고, 순결하게 정신을 구원해 줄 존재로 화폭에 재현해 냈습니다. 하지만 현실 세계에서 화가는 좋은 동반자가 아니었어요. 여러 차례 약혼과 파혼 후 시작된 결혼 생활은 불행했습니다. 아내는 남편의 외도로 고통받다 아편 과다 복용으로 서른세 해 짧은 생을 마감했지요.

아내의 죽음에 죄책감을 느꼈던 것일까요. 사랑의 실패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일까요. 화가는 사별한 아내를 그림에서 영원한 뮤즈, 베아트리체로 부활시켰습니다. 이탈리아 시인 알리기에리 단테를 존경했던 화가다운 설정이군요. 베키오 다리로 두 사람의 첫 만남을 아련하게 형상화했고, 여인 손에 떨어지는 아편을 상징하는 양귀비꽃으로 이별을 에둘러 표현했지요. 뒤늦게 화가가 붓으로 다시 쓴 러브 스토리는 시작부터 끝까지 꿈결 같습니다.

미완의 사랑은 남편의 그림뿐 아니라 아내의 시에도 영감을 제공했습니다. 하지만 한 편의 꿈같은 그림과 달리 아내 시는 악몽에 가깝습니다. 그림 속 사랑스러운 여성, 완벽한 사랑의 표현은 버림받은 여성, 불가능한 사랑의 시어로 대체되었지요. ‘훗날 이 겨울은 우리 기억 속에 어떻게 남게 될까.’ 10년 가까이 연인으로, 2년 남짓 부부였던 두 사람의 사랑에 관한 엇갈린 예술적 진술 사이에서 미래의 우리가 궁금해졌습니다.

공주형 한신대 교수·미술평론가
#로세티#베아타 베아트릭스#단테이 게이브리얼 로세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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