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석의 공감 사회]랑랑, 조코비치, 저커버그의 꿈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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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석 논설위원
고미석 논설위원
올 9월 세계은행 김용 총재는 바쁜 틈을 쪼개 US오픈 테니스에 출전한 세르비아 출신 노바크 조코비치 선수를 응원하러 경기장을 찾았다. 알고 보니 세계에서 테니스를 가장 잘 치는 선수와 세계 최대 개발기구 수장의 접점은 스포츠가 아니라 어린이였다. 앞서 두 사람은 뉴욕에서 세르비아를 비롯한 전 세계 빈곤국가의 유아교육을 돕기 위한 특별행사를 개최했다. 조코비치와 세계은행이 손잡고 소외된 지역의 5세 이하 아이들이 안정된 환경에서 교육받는 유아발달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이다. 일찌감치 자선에 눈뜬 조코비치가 스무 살에 자신의 이름을 딴 재단을 설립, 운영해 협력의 토대를 닦았다.

그제 서울에서 5년 만에 내한 독주회를 가진 중국의 피아니스트 랑랑은 국제무대에서 대중적 인기를 누리는 클래식 음악의 슈퍼스타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 연주와 이듬해 노벨 평화상 수상식 축하연주 등 눈부신 경력을 쌓은 그는 기회 있을 때마다 음악 외에 또 다른 열정에 대해 열변을 토한다. 어려운 어린이들의 음악 공부를 돕고 피아노 꿈나무를 키우는 일이다. 그는 자신이 받은 혜택을 세상에 다시 돌려주기 위해 2008년 26세 때 랑랑국제음악재단을 만들었다.

지난주에는 페이스북 최고경영자인 마크 저커버그가 천문학적 규모의 기부 약속으로 지구촌을 놀라게 했다. 첫딸에게 보내는 공개편지에서 “모든 부모처럼 우리는 네가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에서 자라기를 바란다”며 450억 달러로 추정되는 페이스북 지분 99%를 기부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는 31세 나이에 거의 전 재산을 내놓겠다고 결심한 이유를 “너무 중요한 문제여서 기다릴 수 없다”며 “젊을 때 시작해 우리 생애 동안 많은 성과를 보고 싶다”고 밝혔다.

천부적 재능과 피나는 노력으로 최고의 자리에 오른 조코비치와 랑랑, 저커버그는 각기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지만 공통분모를 찾을 수 있다. 노후 혹은 사후가 아니라 지금 당장, 내 나라 울타리를 넘어 세계를 대상으로, 단발성이 아니라 장기 목표를 세우고 일생 동안 자선과 기부 활동을 하겠다는 결심을 행동에 옮겼다는 점이다. 기부 문화의 새로운 변화를 보면서 새삼 인류의 연대를 돌아보게 된다. 때 이른 성공에 취하지 않고 휴머니즘에 응답하기 위해 소매 걷어붙인 ‘젊은 그들’이 있기에 광기와 야만의 테러로 얼룩진 지구별은 아직 살 만한 곳인 것 같다.

젊어지는 기부와 자선 활동을 보면서 스스로에 대해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우리 세대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매우 많다”는 저커버그의 편지를 되새겨본다. 나 같은 보통 사람들이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동참하는 방법을 궁리하다 얼마 전 지인이 보낸 메일에서 실마리를 찾았다.

“지역 정당 종교 등 각 분야에서 대립과 갈등을 보면서 순수한 비무장지대(DMZ)를 생각합니다. 누구도 무장하지 않고 만날 수 있는 비무장이며 전략이나 계략 없이 공동의 선을 위하여 뭉치는 공간이 있었으면 합니다.”

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의 사회갈등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의 24개국 중 다섯 번째로 높다. 이로 인한 경제적 비용은 연간 최대 246조 원으로 추정된다. 지금 한국 사회가 고민할 것은 분단의 철책선만큼이나 견고해진 이념 빈부 등 갈등이 만든 내면의 철책선이 아닐까 싶다. 거창한 기부가 아니라도 나와 다른 상대를 편 가르고 적개심을 품지 않는 것, 곧 내면의 비무장지대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내일은 달라질 수 있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랑랑#조코비치#저커버그#기부#자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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