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취재노트]‘아랍의 봄’ 6년… 외국자본 발길 돌리는 이집트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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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주 카이로 특파원
조동주 카이로 특파원
 며칠 전 이집트 카이로의 동네 마트에 장을 보러 갔다가 영수증을 보고 깜짝 놀랐다. 한 박스에 27이집트파운드(약 1700원)였던 1.5L짜리 12개들이 수입 생수 가격이 며칠 새 39이집트파운드(약 2400원)로 44%나 훌쩍 뛰었기 때문이다.

 극심한 외화난에 시달리던 이집트가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3년간 120억 달러(약 14조400억 원)의 구제금융을 받기로 한 지 두 달이 지났지만 경제 사정은 계속 악화되고 있다. IMF 체제 돌입 이후 달러당 8.8이집트파운드 고정환율제가 폐지되자 환율은 곧바로 달러당 19이집트파운드까지 치솟았다.

 순식간에 화폐 가치가 절반으로 뚝 떨어지면서 수입에 의존하던 생필품 가격이 폭등했다. 최근 한국의 계란 파동 때처럼 일부 업체가 가격이 더 오르리라 예상하고 물건을 내놓지 않으면서 설탕과 의약품 대란까지 벌어졌다. 기자가 단골로 가는 마트에서 설탕을 찾자 종업원이 “단골에게만 주는 것”이라며 선심 쓰듯 설탕 한 봉지를 쥐여줬다.

 이집트 국민은 6년 전까지만 해도 인류 4대 문명 발상지라는 과거의 찬란한 영광을 재현할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2011년 1월 25일 “30년 독재자 호스니 무바라크를 몰아내자”며 아랍의 봄 시민혁명을 시작할 때만 해도 민주화만 이뤄내면 희망찬 새 시대가 올 줄 알았다.

 하지만 혁명 6주년을 맞은 지금 피라미드는 메말라가고 스핑크스는 배를 곯고 있다. 통치자의 무능에다 6년 동안 두 차례나 정부가 전복된 불안정성이 겹치면서 외국인과 자본이 이집트를 떠난 탓이 컸다.

 군 출신인 압둘팟타흐 시시 대통령은 2014년 5월 대통령 선거에서 97%라는 ‘파라오급’ 지지율로 당선됐지만 최근 지지율이 40∼50% 수준으로 떨어졌다. 아랍의 봄 발발 6주년 기념일인 25일 민주화 성지 타흐리르 광장 주변엔 경찰이 집중 배치됐다. 반정부 시위를 방지하기 위한 목적이다. 최근 만난 친정부 매체 기자는 집에 가보처럼 모셔둔 시시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을 씁쓸하게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미국으로 이민 가고 싶다.” 그만큼 민심은 서서히 등을 돌리는 분위기다.

조동주 카이로 특파원 djc@donga.com
#외국자본#중동#이집트#외화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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