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경아의 정원의 속삭임]나비를 부르는 정원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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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가 서식할 만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목조로 집을 만들어 그 안에 나비가 좋아하는 호박, 수박, 참외 조각 등을 넣어주는 등 나비의 집도 발전하고 있다. 오경아 씨 제공
나비가 서식할 만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목조로 집을 만들어 그 안에 나비가 좋아하는 호박, 수박, 참외 조각 등을 넣어주는 등 나비의 집도 발전하고 있다. 오경아 씨 제공
오경아 오경아디자인연구소 대표
오경아 오경아디자인연구소 대표
남쪽으로 가는 길은 뭔가 풍성함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아 마음이 늘 설렌다. 9월의 첫 주, 지인을 만나려 남도의 끝자락 남해로 발걸음을 옮겼다. 종종 찾아가던 길이지만 9월의 남도 여행은 처음이 아니었을까? 남해라고 해도 화려한 여름 꽃이 지나간 정원은 다소 쓸쓸해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화려함은 사라졌어도 잔잔한 아름다움이 여전하다. 쑥부쟁이, 벌개미취, 구절초로 대표되는 들국화가 피었고, 가우라의 작지만 흰 꽃이 한들거리고, 강아지풀 꼬리 같은 분홍색 꽃을 피우는 부들레야, 어느 시인의 표현처럼 푸근한 누나를 연상시키는 과꽃이 정원에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다. 짜릿하고 아찔한 즐거움이 더 있다. 갑자기 어디서 날아왔는지 울긋불긋한 나비들이 꽃밭에 가득하다.

나비가 이렇게 정원에 갑작스러울 정도로 많이 출현하는 까닭은 9월이기 때문이다. 모두 그렇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나비는 여름의 끝자락인 8월 말에서 9월 초에 본격적인 짝짓기를 한다. 오랫동안 애벌레와 번데기로 시간을 보내다 드디어 아름다운 나비가 되었는데 이때를 놓치면 태어난 사명이 없어지는 셈이다. 그러니 나비들로서는 치열한 삶의 현장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우리 눈에 각양각색의 모양과 색채의 나비가 정원을 장식해주니 심심한 9월의 정원에 더할 나위 없는 볼거리, 흥밋거리가 된다.

슬픈 일이지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이미 이상 증상이 생긴 지 오래됐다. 그중 하나가 벌과 나비 등의 일부 곤충이 현격하게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벌과 나비의 사라짐은 생명체 하나가 이 지구에서 사라질 수도 있다는 막연한 추측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식물의 수분을 도와주는 대표적인 생명체인 벌과 나비가 이 속도로 사라져 혹여 멸종이라도 된다면 지금 우리가 먹고 있는 식량의 반 이상을 잃게 된다. 이뿐만 아니라 지구 자체의 식물도 급격하게 사라져 극단적으로는 초록 행성 지구를 더이상 기대할 수 없다. 결국 우리의 지구도 화성처럼 변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는 셈이다. 이런 위기감은 최근 정원에도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그간 우리가 만들어왔던 정원이 우리만을 위한 것이었다면 이제는 자연을 위한 배려도 필요하다는 자각에서다. 이런 차원에서 최근 만들어지고 있는 정원이 이른바 ‘생태정원(wildlife garden)’이기도 하다.

생태정원은 곤충이나 야생동물이 머물 수 있는 정원을 말한다. 때문에 너무 정갈하고 깨끗한 정원보다는 나무 그루터기를 쌓아 두어 곤충이 숨어 지낼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해 주는가 하면 풀이 자라는 연못을 만들어 야생동물들에게 물을 제공하는 등의 자연스러운 조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또 벌이나 나비처럼 특정 곤충을 부르는 생태정원도 있다. 특히 볼거리가 풍부한 나비 정원은 유럽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데 이 정원을 만들려면 몇 가지 요건이 필요하다. 우선 나비가 잠을 잘 수 있는 집과 같은 공간이 있어야 한다. 자연 상태에서는 촘촘한 잎으로 구성돼 있는 생울타리(주목나무, 측백나무, 아이비)가 가장 좋다. 나비는 낮에는 정원에서 활동을 하지만 밤이 되면 이런 식물 틈으로 들어가 휴식하고, 이곳에서 알도 낳는다. 또 하나의 중요한 요건은 알에서 깨어난 애벌레가 먹을 수 있는 식물의 구성이다. 나비 애벌레가 좋아하는 식물은 호랑가시나무, 버드나무, 부드러운 열매가 열리는 식물이다. 이런 식물들이 정원에 함께 있어야 애벌레의 성장이 확보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비가 된 후 먹을거리가 되는 즙이 풍부한 식물(부들레야, 인동초, 매발톱)이다. 이런 조건이 확보됐을 때 나비는 알에서 애벌레, 번데기, 그리고 다시 나비로 정원에서 우리와 함께 일생을 보내게 된다.

다행인 것은 나비가 시골에서만 살아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도심 속의 작은 베란다에서 꽃을 피운 식물을 보고도 나비는 날아든다. 우리 삶이 자연으로부터 상당히 멀어졌다지만 이 도시 환경 속으로도 여전히 찾아와주는 나비와 벌이 있다는 건 아직은 여전히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나비는 예쁘지만 벌레는 징그럽고, 식물은 좋지만 곤충은 싫다는 식의 우리 판단이 자연으로 가까이 다가갈 기회를 잃게 한다는 것도 잊지 말자. 이 지구의 모든 생명체의 삶과 죽음이 우리 잣대로 결정될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이 지구에 사는 생명체는 모두 조화와 균형 속에 살아가고 우리 역시도 그 하나의 존재일 뿐이라는 것을 정원이 늘 말해준다.

오경아 오경아디자인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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