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원의 옛글에 비추다]나라 망치는 술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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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위험한 것은 사람의 몸을 빠뜨릴 수 있기 때문이고 술이 위험한 것은 사람의 마음을 빠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險乎水者 以能溺人之身也 險乎酒者 以能溺人之心也
(험호수자 이능익인지신야 험호주자 이능익인지심야)

― 신익전, ‘동강유집(東江遺集)’》
 

동양에서 이상 사회로 여기는 때는 아주 옛날인 요순시대이고, 요순시대와 맞먹는 시대가 순(舜)임금 다음으로 천하를 다스렸다는 우(禹)임금 시대다. 우임금의 가장 큰 업적으로는 9년간 지속된 홍수를 다스려 사람들이 제대로 살 수 있게 하였다는 것이다. 물길을 트고 땅을 메우는 등 13년간 밖에서 지내면서 3번 집 앞을 지나갔지만 집에는 들르지도 않고 치수에 매진하여 홍수를 다스렸다. 이러한 공을 인정받아 순임금으로부터 나라를 이어 받기까지 하였다.

그런데 중국 송나라의 학자 양만리(楊萬里)는 “물에 사람이 빠지는 것은 그 한 사람이지만, 술이 사람을 빠뜨리는 것은 자신을 빠뜨리고서 천하 국가에까지 이른다”라고 말하며, 우임금의 업적 중 맛있는 술을 싫어한 공이 홍수를 다스린 것보다 크다고 하였다. 그리고 조선 중기 문신인 신익전도 양만리의 주장을 부연하며 위와 같이 말하였다.

술과 관련된 우임금의 일화는 ‘전국책(全國策)’에 실려 있다. 의적(義狄)이라는 사람이 처음 술을 만들어 우임금에게 바쳤는데, 우임금이 마셔보고는 그 좋은 술맛에 감탄하였지만 “후세에 반드시 술 때문에 나라를 망치는 자가 있게 될 것이다(後世必有以酒亡其國者)”라고 경계하며 의적을 멀리하였다고 한다.

물에 사람이 빠지는 것은 보기 쉽기 때문에 조심하기 어렵지 않지만 술이 사람을 빠뜨리는 것은 보기 어렵기 때문에 절제하기도 어려워서, 그 맛에 취하면 성품이 바뀌어 말을 함부로 하고 예의를 잃게 되며 아무 정신이 없어도 그만둘 수 없게 된다고 하였다. 자신뿐 아니라 가문과 나라의 패망까지도 이르게 할 수 있는 술을 경계하게 하였으니, 이러한 점이 홍수를 다스린 것보다 더 큰 공이 되는 이유라고 하였다.

신익전(申翊全·1605∼1660)의 본관은 평산(平山)이고, 호는 동강(東江)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예조참판, 병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병자호란 이후 명나라를 숭상했다는 이유로 청나라로 잡혀갔다가 풀려나기도 하였다.

이정원 한국고전번역원 책임연구원
#신익전#동강유집#술#전국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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