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원의 옛글에 비추다]마음 편히 잘 봐!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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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장에 앉은 뒤에는 정신을 집중하고 생각을 가다듬고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기운을 맑게 해야 하니 그런 뒤에야 문장이 빛나고 내용에 조리가 있게 될 것이다

旣坐試席 凝神締思 和平其心 淸明其氣 然後詞采煥然 義理條達
(기좌시석 응신체사 화평기심 청명기기 연후사채환연 의리조달)

― 이전 ‘월간집(月澗集)’》
 

조선 중기의 학자 이전(李J)이 과거시험을 위해 서울로 떠난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는 다음의 말로 시작된다. ‘며칠 사이의 근황은 어떠하냐? 머물 곳은 얻었으며, 방은 조용하고 머물기는 편안하냐? 근심되고 또 근심되는구나. 이곳은 평안하다.’ 그저 조용하고 편안하게 잘 지내는지가 우선의 걱정이다. 그리고 자식들이 고향의 부모를 걱정할까 봐 자신은 잘 지내고 있다는 말도 빠뜨리지 않고 있다. 집을 떠난 자식에 대한 부모의 걱정이야 뭐 대단할 게 있겠는가. 건강하고 편안하게 잘 지내고 있는지를 걱정할 뿐이지. 시험을 앞두고 있던 차라 ‘시험장에 들어가는 날에는 일찍 잠자리에 들어 편안히 자고 나서 차분히 시험에 임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라고 말하고는, 중국의 학자 진덕수(陳德秀)가 시험을 앞둔 아들에게 했던 말을 차용하며 심기를 편안히 하여야 문장도 잘 쓸 수 있다는 짤막한 당부의 말을 덧붙였다.

이제 대한민국의 수많은 고3 아이들과 3년보다도 더 지난한 1년을 다시 준비했던 소위 N수생들이 수능이라는 시험을 코앞에 마주하고 있다. 학교인지 학원이지 구분이 안 되기도 하고, 어떨 땐 학원 숙제를 하기 위해, 또 어떨 땐 간밤에 못 잔 잠을 자기 위한 공간으로 활용되었던 학교는 원래의 존재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잊은 채 이 순간만을 위해 존재했고, 그 속에서 우리의 아이들은 짧게는 3년, 길게는 그보다 몇 배의 시간을 이 순간만을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하며 지내왔다. 하지만 모두가 승자가 될 수만은 없는 현실 속에서, 이 아이들에게 시험을 잘 보라는 말보다는 마음을 편히 가지라는 말이 좀 더 나은 당부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시험장을 나온 아이에게 건네는 첫마디로 시험 잘 보았는지는 묻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전(李㙉·1558∼1648)의 본관은 흥양(興陽), 호는 월간(月澗)이다. 류성룡(柳成龍)의 문하에서 수학했고, 이후 주자학을 깊이 공부했다. 임진왜란 때에는 의병을 일으켜 왜적에 맞서기도 했다.

이정원 한국고전번역원 책임연구원
#이전#월간집#수능#수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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