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원의 정치해부학]現代史가 국사학자들의 전유물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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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원 논설위원
박성원 논설위원
2013년 금성출판사 두산동아 미래엔 지학사 천재교육 등 5개 출판사가 펴낸 고교 한국사 교과서는 6·25전쟁 직전 38선을 경계로 잦은 충돌이 일어났다는 점을 서술하고 있다. 전쟁의 발발 책임이 남북한 양쪽에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특히 미래엔은 “동기로 본다면 인민공화국이나 대한민국이나 조금도 다를 바 없을 것이다. 피차에 서로 남침과 북벌을 위하여 그 가냘픈 주먹을 들먹이고 있지 아니하였는가”라는 역사학자 김성칠의 일기를 머리글로 내세웠다.

일부 교과서는 “남한만이라도 임시정부 같은 것을 조직해야 한다”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정읍발언(1946년 6월)을 분단의 원인처럼 서술하고, 북한에선 실질적 정부 역할을 한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가 이미 1946년 2월 조직된 사실을 흐려놓았다.

6·25전쟁이 미국과 이승만 정권의 자극 때문에 일어났다는 주장은 브루스 커밍스 등 미국 수정주의 학자들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수정주의는 1980년대 말 공산권의 붕괴와 함께 스탈린의 극비 전문 등 실증적 자료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엉터리였음이 판명됐다. 1990년대 모스크바 유학을 통해 이 자료들을 연구한 정치학자들에 의해 동시책임론이니 남침유도설이니 하는 잠꼬대 같은 소리는 정치학계에선 일찌감치 폐기됐다. 그럼에도 국사학자들이 장악해온 국사 교과서의 근현대사 서술에선 아직도 북한의 남침을 명확한 사실로 기술하기를 꺼리는 듯한 대목이 적잖이 남아 있다.

최정호 울산대 석좌교수는 1980년대 초에 쓴 글에서 “학자들이 우리 현대사를 다루지 않는 것은 책임의 방기이며 그 공백을 정치적 목적이 있는 세력이 이용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실제 1970, 80년대 민주화 투쟁이 대학가를 풍미하면서 국사학계에서는 운동권의 집중적 공격의 대상이 된 현대사에 발을 담그지 않으려는 풍조가 강했다. 전두환 정권이 현대사 연구를 불온시하는 사이 이 분야는 재야 운동권 출신들의 전유물이 되다시피 했다.

이들 의식화된 386세대가 교수, 교사, 교과서 필자가 되면서 진보적 시각과 다른 방향에서 석·박사 논문을 쓰려 해도 적절한 지도교수를 구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세계사적으로 공산주의가 몰락한 1990년대 이후 소비에트연방에서 버려지고, 중국에서 문화혁명 이후 찬밥이 된 이념형 교재들과 북한을 ‘내재적 관점’에서 이해하자는 역사관이 현대사 서술의 주요 진지들을 지배하게 됐다.

세계사의 흐름에 담을 쌓은 채 일국사(一國史)에 갇혀 있는 그들의 손에만 국사 교과서를 맡겨 둘 수는 없다. 지난해 전국역사학대회에서 이성규 서울대 교수(동양사학)는 “역사학자가 운동권 학술전사로 자처하고, 역사 논쟁을 서명운동과 시위로 해결하려는 풍조는 학문으로서의 역사학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국정이냐, 검인정이냐 논쟁보다 중요한 것은 정치학 국제정치학 경제학 등 사회과학의 다양한 비교사적 연구 성과를 반영하고 학문 간, 사상·이론 간의 자유경쟁을 통해 보편적 설득력을 갖는 사실관계를 정리하는 일이라고 본다.

현대사는 지나간 역사가 아니라 꿈틀거리며 살아있는 현실의 정치, 경제, 사회다. 지혜와 학식이 풍부한 사학자와 사회과학자들이 한데 모여 대한민국의 오늘에 관한 공동의 정체성을 찾아나갈 때 친북이나 자학 사관도, 친일·독재 미화도 발붙이기 어려운 균형 잡힌 교과서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박성원 논설위원 sw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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