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 전문기자의 기업가 열전]창업 위해 중소기업에 입사한 서울대 박사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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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김병규 아모텍 회장

김병규 아모텍 회장은 “스마트폰 기술을 활용해 자동차 전장사업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박경모 기자 momo@donga.com
김병규 아모텍 회장은 “스마트폰 기술을 활용해 자동차 전장사업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박경모 기자 momo@donga.com
김상철 전문기자
김상철 전문기자
 서울에서 8남매(5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부친은 광복 후 말 세 필로 곡물을 배달하는 운송업을 했다. 신여성인 모친은 자녀 교육에 힘썼다. 그 영향으로 가정 형편이 넉넉지 않았지만 8남매 모두 대학을 나왔다. 어린 시절 부모가 강조했던 정직을 지금도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

 어느 날 모친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일찍 여읜 어머니의 영전에 드릴 수 있는 효도는 공부라고 생각해 중학생 때부터 오전 2시에 자고 6시에 일어났다. 서울고를 거쳐 1976년 서울대 금속공학과에 진학했다. 우리나라 경제가 성장 궤도에 올라 기업들이 속속 생겨나던 때였다. 둘째, 셋째 형도 제조업체, 유통업체를 각각 설립했다. 대학을 마치면 기업을 세워 그룹으로 키우겠다고 결심했다.

 서울대 대학원에서 세라믹으로 석사, 비결정질 고체인 어모퍼스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1985년 형이 경영하던 가족기업 ㈜유유에 입사했다. 각종 전자제품을 자동 제어하는 부품인 릴레이를 만드는 중소기업이었다. 훗날 창업하려면 대기업에서 특정 업무만 하는 것보다 중소기업에서 여러 일을 경험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연구소장을 맡아 금형, 도금, 열처리 등 부족한 기술을 개발했다.

 당시 서울대 박사가 중소기업에 취업한 사례는 찾기 어려웠다. 특이한 이력 덕분에 정부의 정책과제 심의위원과 산하기관 평가위원으로 위촉됐다. 정부 과제에 참여하면서 어떤 산업이 유망한지 알게 됐다. 

 1991년 중소기업 대표로 모스크바에서 열린 한-러 과학기술부 장관 회담에 따라갔다. 러시아 측에 따로 요청해 어모퍼스 연구소를 찾았다. 꿈의 신소재로 불리는 어모퍼스가 군수산업에 실제로 쓰이는 것을 봤다. 바로 이게 사업 아이템이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귀국 후에도 러시아 사람들과 수시로 연락하며 친분을 쌓았다. 그 중 한 명이 어모퍼스 제조업체를 소개했다. 러시아로 가서 공장을 살펴보고 제품 생산 아이디어를 얻었다. 38세이던 1994년 직장을 그만두고 아모스를 창업했다. 김병규 아모텍 대표이사 회장(61) 이야기다.

 정부 연구비를 받아 어모퍼스 자성(磁性) 재료를 개발했다. PC의 소형화, 고성능화에 따라 생기는 고주파 열로부터 반도체를 보호하는 신소재였다. 해외 전시회에 나가 대만 무역상을 거래처로 확보했다. B급 PC를 만드는 대만 업체에 50만 달러어치를 공급했다. 품질은 지멘스, 도시바 제품보다 떨어졌으나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좋다는 평가에 따라 판매량이 늘어났다.

 자신감을 얻어 1995년 소형 모터를 만드는 아모트론, 1998년 정전기 방지 세라믹을 만드는 아멕스를 설립했다. 호사다마일까. 외환위기 영향으로 자금난이 생겼다. 1999년 3개 회사를 아모텍으로 통합하고 영업을 강화해 부도 위기를 넘겼다. 아모텍은 신기술 기반의 신소재 부품업체(Advanced Material On Technology)를 만들겠다는 뜻이다.

 가전제품이 작고 가볍고 얇아지는 흐름을 읽고 정전기 피해를 방지하는 부품인 칩 배리스터 개발에 착수했다. 미세 정밀기술이 100개가량 필요해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외국 기술자의 도움까지 받아 2000년 제품을 출시했다. 대만 가전업체 에이서가 이 제품을 납품받아 스마트폰 배터리 방전 문제를 해결했다. 그러자 삼성전자도 100만 개를 주문했다. 삼성전자가 스마트폰 사업을 키우고 애플, LG전자와도 거래를 트자 생산량이 2002년 2000만 개, 2003년 1억 개로 급증했다. 2004년 일본 TDK를 누르고 칩 배리스터 부문 세계 1위 업체로 올라섰다.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납품단가가 크게 떨어졌다. 모토로라 화웨이 소니에릭손 등을 새 거래처로 확보하고 전자파를 차단하는 필터, 메탈 케이스 스마트폰의 감전을 방지하는 소자 등으로 사업 범위를 넓혔다.

 지속 성장을 위한 먹거리 확보에 나서 차량용 소형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안테나, 근거리 무선통신(NFC) 안테나, 무선 충전 안테나, 안전 결제를 위한 마그네틱 보안 전송(MST) 안테나 등을 개발했다. 벤츠 BMW GM 등에 GPS 안테나를 납품하고 있다. 소형 모터에 브러시 대신 전자회로를 넣어 소음이 적고 수명이 길고 효율이 높은 차세대 스마트 모터도 내놓았다. 컴퓨터가 뜨거워지면 자동으로 냉각팬을 돌려 온도를 낮춰준다.

 김 회장은 맨손으로 시작해 아모텍을 세계 40여 개국에 수출하는 연매출 3000억 원대 중견기업으로 키웠다.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언제든 개발해 공급하는 세계 최고 소재·부품 기업으로 만드는 게 그의 꿈이다.
 
김상철 전문기자 sckim007@donga.com
#아모텍 회장#김병규#중소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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