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 전문기자의 기업가 열전]<14> 임수복 강림CSP 회장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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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집 골방서 시작… 年매출 3000억 철강유통회사로

임수복 강림CSP 회장이 부산 화전산업단지 3만 3000㎡의 터에 세운 물류창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임수복 강림CSP 회장이 부산 화전산업단지 3만 3000㎡의 터에 세운 물류창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상철 전문기자
김상철 전문기자
“급한 일이 있어요.”

큰 거래처인 대선조선 상무가 불렀다. 천일철강 영업부장인 그는 부리나케 달려갔다.

“거래를 끊기로 했습니다.”

대선조선 상무는 사장이 결정한 것이라고 했다. 최후통첩이라는 뜻이었다. 그러면서 독립해 납품하거나 다른 업체를 소개하라고 제안했다. 창업한다면 밀어주겠다고 했다. 대선조선이 자금난으로 6개월짜리 어음을 끊어준 것을 천일철강 대표가 공개 석상에서 비난한 게 거래 중단을 몰고 왔다.
○ 가족 반대 뿌리치고 29세에 창업

“시간을 좀 주십시오.”

뜻밖의 제의를 받은 그는 10년 넘게 일한 회사에 대한 의리를 생각하며 고민을 거듭했다. 대선조선 측은 빨리 결정하라고 재촉했다. 기회라는 생각에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29세 때인 1976년 강림파이프상사를 세웠다. 자금이 부족해 신혼집 한 칸에 사무실을 내고 철강제품 유통사업에 나섰다. 주인공은 임수복 강림CSP 회장(68)이다.

밀양실업고 재학 시절 주산을 잘했다. 학교 대표로 여러 경진대회에 나가 상도 받았다. 고향을 떠나 1964년 부산우체국 저금관리국에서 학생들이 맡긴 예금 이자를 계산하는 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안정된 직장이었으나 월급이 적어 이듬해 천일철강 경리로 옮겼다.

3년 뒤 사장은 ‘일솜씨를 보니 다른 일도 잘하겠다’며 영업직으로 발령을 냈다. 타향인 부산에 인맥 학맥 같은 게 있을 리 없었다. 다른 직원이 맡지 않은 거래처를 개발하려고 건설 현장을 찾아다녔다. 현장 관계자를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눈길이라도 주면 깍듯이 인사하고 철근 파이프 등을 소개했다.

받은 주문은 제때 정확하게 공급했다. 공사가 끝날 때까지 수시로 음료수를 사 들고 현장을 다니며 관계를 다졌다. 젊은이가 성실하고 싹싹하다며 오더를 주는 거래처가 늘어났다. 능력을 인정받아 조선업체 같은 큰 거래처를 담당하다 일본에서 철강제품을 수입하는 일까지 맡게 됐다.
○ 日서 배운 JIT 시스템 도입해 대박

창업을 결심하는 데 그런 경험이 한몫했다. 창업한 그는 일본에 출장을 다니다 알게 된 JIT(just in time) 시스템을 떠올렸다. JIT 시스템은 필요할 때 필요한 양만큼만 부품을 조달해 재고를 없애는 도요타의 경영 방식이다. 당시 국내 조선업체는 선박 건조에 필요한 강관을 일본에서 수입해 썼다. 품귀 현상이나 가격 변동에 대비해 20%가량 많은 여유분까지 야적장에 쌓아 놓다 보니 밑에 깔린 강관은 녹슬어 폐기 처분하는 일이 잦았다.

“JIT 시스템을 도입하자.”

그는 무계목(無繼目) 강관을 일본 스미토모, 관서강관 등에서 수입해 대선조선에 납품했다. 무계목 강관은 용접으로 이어 붙이지 않고 봉강을 뚫어 만든 파이프로 높은 압력과 열에도 잘 견뎌 조선, 석유화학, 발전, 해양플랜트 등에 쓰인다.

회사를 키우려고 이전에 알던 대한조선공사(현 한진중공업) 담당자를 찾아갔다. 일본에서 직접 구입하지 않아도 되고 대량 구매로 가격까지 낮출 수 있다고 설득해 무계목 강관 공급계약을 맺었다. 대한조선공사가 JIT 시스템으로 구매 비용을 30%가량 줄인 게 알려지자 다른 조선업체와 화학회사들도 잇달아 주문했다. 선금을 받고 공급할 만큼 사업이 번창했다.
○ 폐암 고쳐준 유기농 전도사로 제2 인생

호사다마일까. 2004년 일본 종합상사 이토추가 거래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건강검진권을 줘 일본 병원에서 검진을 받았다. 폐에서 종양이 발견돼 조직검사를 했더니 폐암이라고 했다. 청천벽력 같은 말에 눈물이 쏟아졌다. 베트남전 참전에서 얻은 고엽제 후유증이었다. 항암 치료를 받으라고 의사가 권했으나 종양 제거 수술만 받고 귀국했다.

“유기농이 살렸다.”

고향인 경남 밀양에서 유기농 농장을 운영해 신지식인 농업인으로 선정된 그는 농약과 비료를 전혀 쓰지 않은 유기농 식단으로 건강을 회복했다. 이를 계기로 유기농에 푹 빠졌다. 부산대와 함께 유기농 들깨에서 식물성 오메가3를 추출하는 방법을 국내 처음으로 개발해 고향에 공장까지 세웠다.

그는 생사의 기로에서 돈보다 중요한 삶의 가치를 깨달았다. 사재(私財) 70억 원을 출연해 장학재단과 문화재단을 세웠다. 모교에 인조잔디를 깔아주고 100인조 오케스트라의 악기 구입비도 지원했다.

임 회장은 맨손으로 출발해 강림CSP를 동양 최대 강관 물류창고를 가진 매출 3000억 원대 중견기업으로 키웠다. 그는 유기농이 환경과 국민 건강을 지키고 농민의 소득 증대에도 기여하는 효과를 알리는 ‘유기농 전도사’로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김상철 전문기자 sckim007@donga.com
#임수복#강림csp#철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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