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 전문기자의 기업가 열전]<13> 강성희 오텍그룹 회장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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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응급실 같은 앰뷸런스-닥터 헬기 국산화

강성희 오텍그룹 회장이 첨단 의료장비를 갖춘 한국형 앰뷸런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강성희 오텍그룹 회장이 첨단 의료장비를 갖춘 한국형 앰뷸런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상철 전문기자
김상철 전문기자
“기술 개발이 어려우니 부품을 수입해 쓰겠습니다.”

앰뷸런스의 승차감을 개선하라고 하자 담당자가 말했다.

“우리만의 기술이 없으면 평생 휘둘리다 결국 망하게 된다.”

목소리를 높이며 반드시 자체 개발하라고 지시했다. 직원에게 화를 낸 것은 창업 후 처음이었다.

당시 앰뷸런스는 1t 트럭을 개조해 만들었기 때문에 노면이 좋지 않은 도로에서는 덜컹거렸다. 뇌나 척추를 다친 응급환자는 앰뷸런스 때문에 상태가 더 나빠질 수 있었다. 승차감을 개선하려면 스프링으로 된 쇼크업소버 대신 컴퓨터로 제어하는 충격 완화 장치인 에어 서스펜션이 필요했다. 국내에는 그런 제품을 만드는 회사가 없었다. 기술 제휴 중이던 네덜란드 기업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수소문 끝에 미국 카네기멜런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신동헌 서울시립대 교수가 정밀기계 전문가라는 사실을 알았다. 거절하는 신 교수를 삼고초려하며 설득했다. 신 교수팀과 공동 개발에 나서 3년 만에 에어 서스펜션을 국산화했다.

이렇게 한국형 앰뷸런스를 개발한 주인공은 강성희 오텍그룹 회장(60)이다.

한양대 사학과와 고려대 경영대학원을 마친 그는 1982년 서울차체에 입사하면서 특장차와 인연을 맺었다. 특장차는 완성차에 특수장비를 더해 목적에 맞게 개조한 차량이다. 서울차체는 적재함, 휠, 소음기 등 자동차 부품과 탑차, 청소차, 트레일러 같은 특장차를 만들어 기아자동차에 납품하는 1차 협력업체였다.

1997년 기아차 부도 여파로 서울차체도 부도를 냈다. 영업담당 이사이던 그는 특장차 사업부를 분할해주면 맡겠다고 제의했다. 서울차체는 특장차사업부 직원 50여 명을 전원 고용하고 퇴직금 지급을 책임지는 조건으로 승인했다.

2000년 45세의 나이로 오텍을 창업했다. 그는 일감을 확보하기 위해 휴일 없이 일했다. 17년 넘게 쌓은 영업 노하우와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해 현대자동차에 인수된 기아차와 제과회사 등에서 주문을 따냈다. 조달청이 발주한 앰뷸런스 공급 입찰에 참여해 납품권도 확보했다.

“나는 나쁜 놈이다.”

2001년 미국 응급의료서비스(EMS) 전시회에서 앰뷸런스와 응급 구조장비를 보고 동행한 임원에게 말했다. 첨단 의료장비를 갖춘 미국의 앰뷸런스는 종합병원 응급실과 같았다. 당시 오텍의 앰뷸런스에는 들것과 의료용품 20여 가지가 비치돼 있었으나 환자를 이송하는 차량에 불과했다.

앰뷸런스를 제대로 모르고 만들었다는 죄책감이 들었다. 앰뷸런스는 대부분 경쟁입찰이어서 수익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응급환자를 살릴 수 있는, 이동식 병원 같은 앰뷸런스를 개발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꼈다. 대당 2억 원이 넘는 앰뷸런스를 미국 독일 등에서 들여와 분해하며 연구했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진동을 최소화한 방진 베드, 번쩍거리는 스트로브 경광등, 환자의 흔들림을 막는 들것 등 주요 장비를 국산화했다. 탑재 공간도 넓혀 의료장비 120여 가지를 구비한 한국형 앰뷸런스를 개발했다. 국내 앰뷸런스의 약 70%는 오텍 제품이다. 해외로 눈을 돌려 베트남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 등 10여 개국에 의료장비가 내장된 앰뷸런스를 수출했다.

“진화는 생존의 필수 전략이다.”

닥터 헬기, 슬로프와 전동시트를 갖춘 장애인차, 경사 35도에서도 전복되지 않는 짐칸 높이 175cm의 탑차 등을 처음으로 개발했지만 특장차 수요는 한정돼 있어 기업을 키우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인수합병(M&A)에 나섰다. 2007년 한국터치스크린, 2011년 캐리어에어컨, 캐리어냉장을 차례로 사들였다. 캐리어에어컨 인수 후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려고 사재를 털어 신문에 광고를 냈다. 10년 만에 처음이었다. 직원의 사기를 높여주자 1년 만에 적자 상태에서 벗어났다.

그는 기술과 디자인이 경쟁사에 뒤지면 잠을 못 잔다. 아이디어가 있으면 일단 해 보자고 할 만큼 스피드와 실행력을 중시한다. 계열사 기술연구소를 통합해 시동을 꺼도 에어컨이 가동되는 탑차, 인버터 기술로 전기 사용량을 절반 수준으로 줄인 쇼케이스, 냉난방에 제습, 공기청정 기능까지 갖춘 에어컨 등을 개발했다.

강 회장은 샐러리맨으로 출발해 직원 1100명에 연매출 7000억 원의 중견그룹을 일궜다. 그는 매년 20% 이상 성장하고 30% 진화해 세계 시장에서 기술로 인정받는 전문기업을 만들기 위해 오늘도 뛰고 있다.

김상철 전문기자 sckim007@donga.com
#강성희#오텍그룹#앰뷸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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