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자의 생각돋보기]역사를 보는 눈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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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예산군의 임존성. 이곳에서 흑치상지가 백제의 부흥을 꾀했지만 실패로 끝났다. 사진 출처 문화재청 홈페이지
충남 예산군의 임존성. 이곳에서 흑치상지가 백제의 부흥을 꾀했지만 실패로 끝났다. 사진 출처 문화재청 홈페이지
KBS의 ‘역사저널, 그날’을 재미있게 보고 있다. 전공자와 비전공자로 구성된 패널들이 우리 역사의 한 주제를 놓고 함께 이야기하는 형식인데, 이미 서로 친숙해진 패널들 간의 대화가 마치 화목한 이웃집 대화를 엿보는 듯 편안하다. 거기에 비주얼과 엔터테인먼트 요소가 가미되어 재미있게 역사 상식을 얻을 수 있는 훌륭한 프로그램이다. 그러나 가끔은 이 자리를 이념 전파의 장으로 삼아야겠다고 작심한 듯한 패널의 발언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다.

지난주 방영된 흑치상지(黑齒常之) 편이 그랬다. 흑치상지는 백제 멸망기 당나라 군대에 맞서 3만의 군사로 성(城)을 200여 개나 회복했던 백제부흥운동의 장군이다. 왜(倭)에 가 있던 왕자 풍을 옹립하여, 왜군 2만과 함께 백강에서 나당(羅唐) 연합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으나, 끝내 패하여 당나라에 항복했다. 단순히 항복만 한 것이 아니라 당나라 군과 함께 자기의 근거지였던 임존성을 공격하여 부흥군을 완전히 멸망시켰다. 그 공로로 당나라 장군이 되었고, 이어서 북쪽 오랑캐를 토벌하는 공을 세움으로써 당시 당나라의 서열 12위인 우무위위대장군까지 승급했다. 말년에는 반역죄로 몰려 60세의 나이에 처형되었다고 한다.

패널들은 그를 ‘민족의 배신자’라고 불렀다. ‘민족의 배신자’라는 단어에서 나는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아직 민족 개념이 형성되기 이전(‘민족’이란 개념은 서양에서 18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시대인데 ‘민족’이라는 말을 붙이는 것도 거북한 일이지만, ‘민족의 배신자’라면 그건 최근의 인기 영화 ‘암살’의 키워드가 아닌가. 같이 독립운동을 했지만, 월북해서 6·25 남침에 앞장선 김원봉은 순수 애국자이고, 남쪽에서 김일성 세력을 공격한 염석진은 민족의 배신자라고 낙인찍은 영화 말이다. 영화 리뷰에 ‘친일파 싹 다 죽었으면…’ ‘친일 인사가 주요 요직에서 떵떵거리며 살고 있는 현 시대…’ 등의 댓글이 줄을 이었던 영화다.

TV에서 이어지는 패널들의 발언도 그 연장선상에 있었다. 한 시대의 리더가 자신이 누린 권리에 상응하는 책임과 의무를 저버리고 변절했다느니, 이런 역사적 선례가 있어서 후대에 기회주의자들이 발호하게 되었다느니. 그리고 급기야 일제강점기 최남선, 이광수가 바로 흑치상지와 같은 경우라는, 어이없는 발언까지 나왔다.

모든 역사는 현재의 역사고, 우리는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역사학자들은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300∼400년 전 역사에만 유효한 이론이다. 역사적 교훈이라는 것은 개인적 도덕의 차원이 아니라 공동체, 즉 국가 차원의 것이기 때문이다. 가령 임진왜란에서 우리는 왜 그토록 처절하게 일본에 당했는지, 그 30년 후에 아무런 대비 없이 왜 또 청나라에 당했는지에 대해서는 뼈아픈 반성과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1300년 전 인물이라면 그것은 호사(好事) 취미의 재야 역사가들의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는 될 수 있을지언정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는 사실상 무의미하고 부질없는 이야기이다.

그것을 굳이 최남선, 이광수에게까지 연결시키는 것은 ‘대한민국=친일세력’이라는 이념을 기회만 있으면 확대시키겠다는 좌파적 진지전(陣地戰)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과거의 역사에 발목을 잡혀 한 걸음도 미래로 나아가지 못하는 작금의 우리 현실이 가슴 아픈데, 재미있는 TV 프로에서마저 그 지겨운 주장들을 다시 듣고 싶지는 않다.

박정자 상명대 명예교수
#흑치상지#역사저널 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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