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시선/박찬성]성희롱 하면 법인을 잡아 가둬라?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2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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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성 변호사 포스텍 상담센터 자문위원
박찬성 변호사 포스텍 상담센터 자문위원
남녀고용평등법은 사업주가 직장 내 성희롱을 한 경우에 1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고, 성희롱 피해 근로자에게 사업주가 불리한 조치를 하면 그 사업주를 3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다고 정한다. 그런데 이 법은 ‘사업주’의 의미를 명시하고 있지는 않다.

자연인 아닌 법인이 성희롱을 할 수는 없다. 법인을 잡아 가둘 수도 없다. 여기서 말하는 사업주란 근로자를 고용한 자연인을 뜻하는 것만 같다. 그런데 교과서를 보니 사업주란 근로자를 사용하여 사업을 하는 경영주체로서 개인사업체에서는 자연인이지만 회사나 그 밖의 법인에서는 법인 자체란다. 이쯤 되면 혼란스럽다. 법에서 말하는 사업주는 누굴까?

법인의 대표자나 대리인 사용인 종업원 등이 성희롱 피해 근로자에게 불리한 조치를 하면 그 직접 행위자도 벌할 수 있다고 따로 정하고는 있다. 하지만 법인이 사업주라면 사업주에게 성희롱을 하지 말라는 정확한 의미가 무엇인지 의문은 남는다.

하나 더. 남녀고용평등법에 따르면 국가와 지자체는 사업주를 지원해야 하는 주체다. 국가·지자체는 사업주와는 전혀 다른 범주인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대법원은 국가기관장이 그 이름으로 근로계약을 체결했더라도 사업주 지위에 있는 것은 국가라고 판시했다. 국가기관·지자체의 장이 사업주는 아니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근로자를 두고 있어 사업장의 성격도 갖는 지자체에서 성희롱 피해 근로자에게 불리한 조치가 있었다면 남녀고용평등법에 따라서 그 대표자를 처벌할 수 있을까. 이론상 가능할 것 같지만 판례를 찾기가 쉽지 않다. 이 법에 근거한 처벌이 거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별문제 없었기 때문일까. 검찰 내 성폭력 사태를 보면 그건 아닐 것 같다.

더 큰 문제는 사업주이든 국가기관 등의 장이든 비슷한 잘못에는 비슷한 처벌이나 제재가 있어야 하는데 남녀고용평등법은 사업장의 성격을 갖지 않는 국가기관이나 지자체에는 처음부터 적용될 수 없다는 데 있는지 모른다. 국가기관·지자체에 적용되는 ‘양성평등기본법’에는 성희롱 2차 피해 유발자에 대한 처벌 조항이 없다.

성희롱 예방 및 대처를 위한 남녀고용평등법 개정은 지난해 이루어졌다. 고무적인 일이다. 하지만 변호사가 읽어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점이 있다면 뭔가 좀 이상한 것이 아닐까. 법 적용 대상과 적용 가능성 등 기본적인 사항에 관해서도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세심한 개선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한편으로, 비슷한 잘못에 대해서는 형사 처벌을 포함한 비슷한 수준의 제재가 내려질 수 있도록 체계적인 입법 개선도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박찬성 변호사 포스텍 상담센터 자문위원
#남녀고용평등법#성희롱#성희롱 예방 및 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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