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현 셰프의 비밀노트]<15>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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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년 1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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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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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현 셰프
정동현 셰프
“더즌 오이스터(Dozen Oyster)!”

“싯(Shit)!”

“하프 더즌 오이스터!”

“싯!”

한창 바쁜 저녁시간, 손님들이 약속이나 한 듯 굴을 시키기 시작했다. 어제는 굴이 거의 안 나갔는데. 손님들 속내는 도저히 알 수가 없다. 오늘은 다들 굴 귀신이라도 씌었나?

굴, 굴, 굴, 몇 번 하다 보면 아, 굴의 날이구나 하는 느낌이 온다. 틀림없다. 이런 날은 오리 주둥이처럼 생긴 굴 칼을 은장도처럼 늘 챙겨 들고 다녀야 한다. 12개, 6개짜리 주문이 잇따라 들어오면 생각할 시간이 없다. 주방의 모든 셰프가 굴을 까기 위해 달려든다.

조마조마하게 왜 주문을 받고 굴을 까느냐고? 굴이 안 까져 있기 때문이다. 미리 까놓지 그랬냐고? 그건 아니다. 서양의 레스토랑에서는 주문을 받고 나서 굴을 깐다. 마트에서 ‘봉지굴’을 사먹는 한국 사람에게는 생소하고 답답해 보일 거다. 굴을 돌에서 핀 꽃이라 해 ‘석화’라는 근사한 이름을 붙여주긴 했지만 실제로 그런 대접을 받고 있을까? 손님 취향을 고려하기보다는 식당 편의를 더 챙긴다. 그렇게 하면 편하긴 하겠지만 생굴을 정말 맛있게 먹는 방법은 아니다.

굴 쪽에서 보면 서양에서 훨씬 후한 대접을 받는다. 일단 몸값이 높다. 굴 하나에 몇천 원이나 한다. kg 단위로 굴을 팔고 숟가락으로 굴을 퍼먹는 한국 사람에게는 어이없는 값이다(이것은 전적으로 현지에서 굴을 까는 아주머니들의 말도 안 되게 싼 노임 덕분이다). 그래서 레스토랑에서 굴로 배 채울 생각은 애초에 하지 않는 게 좋다.

굴 종류도 가지가지다. 한국처럼 다 똑같은 굴이 아니다. 작지만 고급스러운 맛을 내는 프랑스 종자 핀드클레르, 우리가 먹는 태평양굴, 호주 특산의 시드니 바위굴, 납작하고 큰 호주 토종 안가시굴. 여기에 지역별, 생산자별로 종류가 세분된다. 그만큼 굴을 특별하게 대하는 거다.

특히 프랑스에서 굴은 특별대접을 받는다. 양식기법이 최고 수준이어서 비싼 값을 받는다. 굴을 ‘바다의 정수’라고 부를 정도니 그런 대접은 마땅하다. 먹는 방법도 다르다. 서양에서는 보통 간단히 레몬즙을 뿌리거나 셰리 식초에 샬럿과 후추로 만든 미뇨네트 소스를 쳐서 먹는다. 셰리 식초는 와인에 알코올을 첨가해 도수를 높인 주정 강화주 셰리를 발효해 만든 것이다. 투명한 적색에 푹 익은 포도향이 은은하다.

자 이제 스르륵 입안으로 굴을 흘려보내자. 금세 신선하고 청량한 갯내음이 훅 끼쳐 올 것이다. 미네랄의 자잘한 식감도 느껴진다. 누구는 진하고 부드럽다고 하고 누구는 우유 맛이 난다는 토실토실한 몸통 어딘가에서는 여름날 갓 딴 오이의 푸릇한 향이 배어나온다. 프랑스의 어느 시인이 노래했듯 ‘바다에 키스한 것과 같은’ 그 맛이다. 거기에 굴의 상쾌함을 닮은 프랑스 와인 샤블리 한잔을 함께 들이켜면 바닷속 궁전에 온 기분이 된다.

하지만 주방은 사정이 다르다. 바다 궁전 어쩌고 했다가는 ‘굴 까는 소리하고 있네’ 하는 타박만 받을 뿐이다. 까도 까도 끝이 없었다. 헤드 셰프의 재촉에 귀는 따가웠고 부서진 굴 껍데기가 들어갈까 노심초사했다.

“이렇게 비싼데 왜 이리 좋아하지. 그래 봤자 조개잖아.”

이렇게 투덜대면서 나는 바가지로 굴을 퍼주는 모국을 그리워했다. 특히 요즘처럼 찬바람이 쌩쌩 불면 김칫소에 싸 먹는 굴 생각이 나 견디기 힘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굴 한 알에도 정성을 들이며 소중하게 대했던 그 문화를 그리워한다. 맛이 정말 다르기 때문이다. 별 차이 안 난다고 반론할지도 모르지만 그 작은 맛의 차이, 약간의 불편함이 큰 차이를 만드는 법이다.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필자(32)는 영국 고든 램지 요리학교 ‘탕테 마리’에서 유학하고 호주 멜버른 크라운 호텔 등에서 요리사로 일했다.

정동현 셰프
#굴#석화#핀드클레르#태평양굴#시드니 바위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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