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현 셰프의 비밀노트]<14>양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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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년 1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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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시장엘 갔는데, 터번 쓴 남자가 갑자기 툭 건드리더라고.”

“왜?”

“필요한 게 뭐냐는 거야. 총이든, 맥주든 다 구해주겠다면서.”

대학생 시절, 새 학기가 시작되자 배낭여행 다녀온 친구 한 놈이 무용담을 늘어놓았다. 소싯적부터 진짜 ‘벤처’를 좋아해 사방팔방으로 떠돌던 그 녀석은 ‘간땡이’가 부어 탈레반이 지배하던 아프가니스탄을 다녀왔다.

“거기 널린 게 양이거든. 몇 만 원이면 양 한 마리를 살 수 있어. 초원에 가서 실한 놈을 지목하면 그 녀석이 저녁에 바비큐가 돼서 나오더라는 거야.”

이런 얘기를 듣고 가슴 설레지 않는 대학생이 있을까? 있다. 그게 나였다. 나는 설레기보단 침이 고였다.

양고기는 굳이 목숨 걸고 아프가니스탄에 가서 통으로 먹지 않아도 충분히 맛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 양고기를 꼭 입 짧은 미국인이 삭힌 홍어 대하듯 한다. 물론 양 꼬치 먹는 사람이 늘긴 했다. 연기 자욱한 실내에서 양 꼬치를 돌려가며 바싹 구운 다음 중국식 양념 ‘쯔란’에 찍어 중국말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들 때까지 칭다오 맥주를 마시는 모습이 흔해졌다.

그런데도 뭔가 찝찝하다. 양고기는 양고긴데 양념으로 특유의 냄새를 없애고 그걸 또 바싹 익혀서 쯔란까지 듬뿍 찍으니 꼭 초장에 푹 담근 회처럼 제맛을 알 수가 없다. ‘양고기 냄새가 나지 않는 양고기’라. 양고기 대신 양고기라는 이름을 먹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실은 미국에서도 양고기는 인기가 없다. 1인당 연간 소비량(0.5kg)이 쇠고기(28kg), 돼지고기(22kg)의 1%도 안 된다. 특유의 냄새 때문이다. 하기야 냄새에 대한 거부감이 심하다 보니 양고기뿐 아니라 치즈조차 특유의 냄새를 없애는 게 그 나라다. 그만큼 음식 문화가 얕기 때문이다. 질색하며 없애려는 그 냄새야말로 음식의 깊이를 보여주는 바로미터 아닌가. 홍어를 생각해 보라. 된장은? 청국장은? 치즈는? 카레는? 하나같이 개성 넘치는 냄새를 갖고 있지 않은가. 결론은 음식 역사가 깊은 민족답게 양고기 냄새에 너무 예민하게 굴지 말자는 얘기다.

양고기 먹은 역사가 깊은 만큼 요리 방법도 문화권에 따라 다양하다. 프랑스식으로 뼈가 붙은 어깨 부위를 로즈메리, 마늘과 함께 오븐에서 구워내면 단순하면서도 힘 있는 맛을 낸다. 굽는 동안 흘러나온 육즙으로 소스를 만들어 뿌리면 맛은 배가된다. 셀러리, 양파, 당근과 함께 끓인 스튜도 빠질 수 없고 양고기와 찰떡궁합인 민트 소스에 모로코식으로 요구르트에 재워 구운 것도 끝내준다. 인도식 램 카레도 빠질 수 없다. 인도 서쪽, 힌두교 3대 성지 중 하나인 고야 지방의 시고 매운 빈달루 카레는 양고기로 해야 제맛이 난다.

이 가운데 하나만 꼽는다면 역시 갈비가 으뜸이다. 우리나라 사람만 갈비 맛 아는 게 아니다. 프랑스에서도 양 갈비를 최고로 친다. 나이프로 잘라 보면 갓난아이의 볼을 닮은 핑크색에 어린 것들 특유의 연하고 섬세한 질감이 느껴진다. 좀 과장하면 양이 푸른 초지에서 뜯어먹은 풋풋한 풀내음까지 맡을 수 있으리라. 양은 공장식 목축으로 키우는 게 아니라 방목을 하니까 그렇다. 없어 보이긴 하지만 그래서 몸에도 좋다. 게다가 와인 좀 마신다면 양고기는 필수로 거쳐야 하는 코스다. 잘 숙성된 레드와인의 그 알싸한 계피향, 가죽 비스름한 버섯 향이 바로 양고기의 향과 통하기 때문이다.

결론이 뭔고 하니, 오늘 밤도 양 꼬치 집 가겠다는 것이다. 혹시 아는가? 양 꼬치 계속 먹다 보면 양고기 맛도 알게 될지. 그러면 양고기를 내는 레스토랑도 많아질지. 게다가 2015년은 양의 해가 아닌가? “양 꼬치 1인분에 양 갈비 1인분, 반반요.” 겉만 살짝 구워, 쯔란은 가볍게. 칭다오 맥주는 기본, 국화 향 나는 컵 술은 선택. 나는 그렇게 달리고 또 달리련다. 한국에서 양고기가 대중화되는 그날까지.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필자(32)는 영국 고든 램지 요리학교 ‘탕테 마리’에서 유학하고 호주 멜버른 크라운 호텔 등에서 요리사로 일했다.

정동현 셰프
#양고기#양꼬치#쯔란#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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