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성 전문기자의 음식강산]코 쥐고 맴맴, 흑산홍어 그 징헌 덧정!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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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성 전문기자
김화성 전문기자
음력 동짓달 스무나흘. 뒷산 자락 마른 억새가 서걱서걱 뭉툭하게 운다. 눈 덮인 들판, 연둣빛 보리 싹이 파르르 떤다. 저 여리디여린 순이 어떻게 언 땅을 뚫고 나왔을까. 어찌 칼바람을 온몸으로 견딜까. 가시덤불의 오목눈이는 눈밭에서 낟알 한 톨이라도 찾아내 쪼았을까. 한뎃잠 멧돼지는 꽁꽁 얼어붙은 생흙에서 썩은 풀뿌리라도 한 줌 캐어 먹었을까.

함박눈이 목화솜처럼 펑펑 내리는 날. 창밖은 아슴아슴 까무룩하고, 머릿속은 우두망찰 아득하다. 어디 문밖을 나서도 적막강산 갈 곳이 없다. 그저 ‘코는 곤두서고 아랫도리가 아∼릿할’ 뿐. 그렇다. 문혜진 시인이 용감무쌍 마침맞게 노래한다.

‘씻어도/씻어내도/돌아서면 밥 냄새처럼 피어오르는 가랑이 냄새/먹어도 먹어도/허기지는 밤/붉어진 눈으로/홍어를 씹는다.’

겨울 바닷물에 차지고 꼬들꼬들해진 살덩이! ‘온 우주를 빨아들일 듯한 차안(此岸)의 냄새!’ 뜨끈뜨끈 두엄 속 같은 골방 아랫목에서 ‘햐아! 코를 쥐고 맴맴’ 먹는 홍어 살점의 징한 맛! 홍어는 누가 뭐래도 겨울 찰기가 으뜸이다. 홍어는 9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가 산란기. 흑산도 부근에서 겨울을 나며 알을 낳는다. 산란기엔 살이 꽉 찬다. 살점이 입에 쩍쩍 달라붙는다.

홍어는 단연 반질반질 끈적끈적 코가 압권이다. 오죽하면 홍어코를 먹어보지 못한 사람은 홍어 맛을 논하지 말라고 했을까. 홍어코를 소금장에 찍어 한입 넣으면 ‘쎄에∼’한 맛에 후욱 숨이 막힌다. 한순간 등골이 쭈뼛! 온몸이 오그라지고 자지러진다.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강렬한 맛이 혓바닥에서 코를 타고 올라와, 금세 눈물을 질금질금 자아내게 한다. 정수리가 시큰하고 코끝이 찡하다. 졸지에 막힌 콧속까지도 덩달아 뻥 뚫린다. 초짜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손사래를 치며 달아난다.

홍어 날개나 꼬리는 오돌오돌 씹는 맛이 그만이다. ‘오도독∼’ 입안에서 터지는 리드미컬한 소리가, 손가락으로 뽁뽁이 공기방울 터뜨리는 것만큼이나 야릇하다. 중국요리 샤크스핀은 비할 바가 못 된다.

겨울엔 홍어보리앳국이 제격이다. 된장 육수에 홍어애(내장)와 여린 보리 싹을 넣어 끓인다. 양념으로는 멸치, 다진 마늘, 파, 고춧가루, 다시마 등을 넣는다. 다 끓으면 마지막에 참기름 한 방울 또옥∼ 떨어뜨린다. 톡 쏘는 알싸한 맛과 구뜰하고 시원한 국물, 보리 싹의 은은한 풋것 냄새가 기가 막히다. 온몸이 후끈후끈 땀이 주르륵 흐른다.

요즘 홍어회 살점은 인절미를 씹는 듯 차지고 쫄깃쫄깃하다. 뼈째 썰어 먹는 그 맛은 씹을수록 깊고 은근하다. 새록새록 단맛에 상큼한 맛이 향기롭다. 묵은지, 그리고 설겅설겅 썬 돼지고기와 함께 먹는 삼합이야 더 말해 무엇하랴. 어휴! 그 찝찔하고 시크무레하고 배리착지근하면서도 대책 없이 잉잉 입안에 ‘달싹 앵기는’ 오묘한 맛과 냄새!

‘두엄 속에 삭힌 홍어와 해묵은 배추김치/그리고 돼지고기 편육//여기에 탁배기 한잔을 곁들면/홍탁//이른 봄 무논에 물 넘듯/어, 칼칼한 황새 목에 술 들어가네.//아그들아, 술 체엔 약도 없단다/거, 조심들 하거라 잉!’(송수권의 ‘홍탁-목포삼합’에서)

막걸리는 홍어 맛을 늘 새롭게 해준다. 입안을 말끔하게 헹궈 준다. 이 덕분에 아무리 홍어를 먹어도 ‘처음처럼’ 톡 쏘는 맛을 느낄 수 있다. 홍어는 껍질에 끈적끈적한 액체가 많이 묻어 있을수록 신선하다. 물로 씻어 내는 것은 절대 금물. 보통 수건이나 천으로 닦아 낸다. 그래야 비린내가 없고 살이 고들고들하다.

흑산도 홍어는 황해바다처럼 등과 배에 누런 황토색이 있다. 요즘은 아예 바코드를 심는다. 경매가 기준 8kg 암컷 한 마리에 40만 원이 훌쩍 넘는다. 칠레 아르헨티나 포클랜드 미국 뉴질랜드 등 외국산은 등이 검고 배가 희다. 홍어는 잘 삭을수록 깊은 맛이 난다. 보통 항아리에 넣어 보름쯤 삭힌다. 잘못 삭히면 ‘물홍어’가 된다. 살이 푸석하고 향이 거의 없다.

홍어는 ‘선 고운 연잎 닮은’ 암컷이 맛있다. 살이 쫀득쫀득하다. 수컷은 살이 푸석하고 뼈가 뻣세다. 당연히 암컷이 비싸다. 일부에선 아예 수컷 거시기를 없애 버린다. 수컷 생식기는 긴 대롱처럼 한 마리에 두 개씩이나 달려 있다. 썰어 놓으면 좋이 안주가 한 접시다.

가도 가도 서럽고 막막한 날. 적막한 겨울 숲에 눈이 오는가.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 장하구나! 뼈만 남은 겨울나무. 거짓 없어 참나무. 이리저리 주목나무. 다리허리 등나무. ‘앓는 짐승이/필사적으로/서있는 하루’(고은 시인) 저릿한 홍어 냄새가 켜켜이 심장에 꽃눈 틔우며 조곤조곤 저미어 온다.

김화성전문기자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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