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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호 어문기자의 말글 나들이]면벌부 vs 면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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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호 어문기자의 말글 나들이]면벌부 vs 면죄부

손진호 어문기자 입력 2014-08-07 03:00수정 2014-08-0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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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호 어문기자
‘면벌부(免罰符).’ 요즘 학교에서는 이렇게 배운다. 그동안 써오던 면죄부가 아니다.

‘…교황 레오 10세가 성 베드로 성당을 수리하기 위해 독일에서 면벌부 판매를 독려하자 신학자 루터는 95개조 반박문을 통해 이를 비판하였다.’

한 중학교 역사책의 ‘루터, 종교개혁을 시작하다’ 단원에 나오는 대목이다. 면벌부? 왠지 생경하다. 그래도 이 단어는 국립국어원 웹사이트에 면죄부와 함께 표제어로 올라 있다. 하지만 아는 사람은 드물다.

면죄부는 라틴어 ‘Indulgentia(인둘겐티아)’를 번역한 것이다. ‘관용, 은혜’를 뜻한다. 면죄부란 말이 귀에 익긴 하지만 따져보니 이상하긴 이상하다. 면죄(免罪)란 죄를 면해 준다는 뜻인데, 죄는 이미 지은 것이므로 면해 준다면 벌을 면해 주는 게 맞다. 그래서 교육인적자원부가 이를 바로잡겠다고 나섰다. 2003년 8월 7차 교육과정 개편 때 내놓은 편수자료를 통해서다. 편수자료는 초중등학교의 교과서를 만들 때 꼭 참고로 해야 하는 일종의 지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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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10여 년이 흐른 지금 면죄부와 면벌부 중 누가 언중의 입말로 자리 잡았을까.

면죄부의 압승이다. 말도 그렇고, 글도 그렇다. 신문이나 방송도 마찬가지다. ‘면죄부를 줬다’ ‘면죄부를 받았다’는 표현은 많아도 면벌부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면벌부는 일부 사전과 교과서에서만 볼 수 있는 박제된 말이 되고 말았다.

2009년에 나온 고려대 한국어대사전 등 대부분의 사전들도 면죄부만을 표제어로 삼고 있다. 요즘 가톨릭에서는 면죄부와 면벌부도 옆으로 치워놓고 ‘대사(大赦)’라는 말을 많이 쓴다고 한다.

애당초 언중이 아무런 의심 없이 면죄부를 받아들인 건 잘못이다. 그렇지만 세력을 넓혀 입말로 자리 잡았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언중의 말 씀씀이를 헤아리지 않고 정부가 인위적으로 어떤 말을 없애거나 만든다고 해서 될 일도 아니다. 좀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지금처럼 언중이 면죄부만을 쓴다면 대세로 받아들이는 게 옳다. 면벌부를 접한 학생들은 혼란스러울지 모르나 사회에 나오면 자연히 정리될 것이다. 필자의 이런 주장에 국립국어원은 ‘면죄부’를 주길 바란다.

‘가난한 이의 아버지’ 프란치스코 교황이 일주일 뒤 우리나라를 찾는다. 세월호 희생자들의 아픔을 치유하고 이 땅에 하느님의 은총을 듬뿍 내려주시길 간구한다.

손진호 어문기자 songbak@donga.com
#면벌부#면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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