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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희 칼럼]친권이라는 이름의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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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희 칼럼]친권이라는 이름의 폭력

동아일보입력 2013-11-21 03:00수정 2013-11-2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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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희 논설위원
“돈 2000원을 가져가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한다는 이유로 가을 소풍날 계모에게 맞아 죽은 여덟 살 초등학생 여자아이는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아이는 갈비뼈 24개 중 16개가 부러지고 생니가 빠졌다. 직접 사망원인도 부러진 갈비뼈가 폐를 찌른 것이다. 그렇게 주먹질과 발길질을 당하면서도 “소풍만은 보내 달라”고 졸랐다는 대목에서는 가슴이 먹먹해진다. 두려워하고 미워하면서도 매달릴 수밖에 없는 게 아이의 숙명이다.

이 사건에서 중요한 것은 계모가 아니라 학대다. 그런데 이 계모, 평범한 사람은 아닌 듯하다. 계모 박모 씨는 평소 ‘아이를 반듯하게 잘 키우는 엄마’로 소문나 있었다. 아이가 예의 바르고 공부도 잘하는 데다 학급 회장도 맡고 있었으니 그럴 만하다. 박 씨도 아이 학급의 학부모 회장을 맡는 등 학교활동에도 열심이었다고 한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새엄마가 아이를 심하게 훈육하다 낸 사고로 치부될 수 있을 듯하다.

그런데 점차 드러나는 실체는 소름 끼치는 스릴러 같다. 딸을 지키지 못했다는 통한(痛恨)에 몸부림치는 친모는 계모 박 씨가 자신의 친구임을 장례식장에서 처음 알았다고 한다. 친모는 아이 아빠가 소개해준 박 씨와 친하게 지냈고 고민까지 털어놓는 사이였다. 2009년 남편이 이혼을 종용했을 때도 자신이 못난 탓인 줄로만 알았지, 배후에 박 씨가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한다.

아무리 막장 드라마라도 권선징악이라는 메시지는 있는데 이 사건에는 인간의 잔혹성과 사회의 무관심만 확인하게 된다. 친모의 증언으로 드러난 아동권리의 실상은 한심하다 못해 충격적이다. 이혼 후 몰래 딸을 보고 싶었던 친모는 딸의 주소지를 알기 위해 주민등록초본을 떼려 했으나 친권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거부당했다. 그 사이 친부는 아이의 이름까지 바꿔 버리고 이사도 자주 다녀 친모는 추적조차 불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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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포항에서 유치원에 다니던 2011년 유치원 교사에게 “엄마가 때린다”는 말을 했다. 박 씨는 “우리 아이가 거짓말을 잘한다”고 둘러댔다. 그러나 등과 얼굴, 팔다리에 피멍이 가실 날이 없고 머리에 피떡이 진 것을 본 유치원 교사는 포항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에 신고했다. 박 씨는 반성한다는 뜻을 밝혔지만 인천으로 이사 가며 상담은 중단됐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은 박 씨가 계모인지도 몰랐다. 친권자가 아동학대에 대한 면담을 기피할 경우 이혼한 부모에게 연락을 할 수 있도록 하거나 지역 간 연계시스템만 갖춰졌어도 이런 비극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나라 친권에는 자식을 독립된 인격체로 보기보다는 부모 소유로 보는 가부장적 가치관이 강하게 반영돼 있다. 아이를 잘 보호하고 양육하라는 친권이 오히려 아이의 인권과 생명을 위협하는 일도 왕왕 벌어진다. 부모에게 학대받는 아동을 부모에게 돌려보내도록 만드는 게 친권이다. 딸을 상습적으로 폭행하고 굶겨 죽인 미국 조지아 주 귀넷카운티 에머니 모스(10)의 친부와 계모에게 미국 검찰은 “인간이기를 포기한 것”이라며 사형을 구형할 방침이라고 한다. 그런데 자기 딸이 학대받는 사실에 대해 몰랐거나 모른 척했던 친부에 대해선 처벌 규정도 없다. 학대신고를 안 했다는 이유로 아이의 담임교사, 학원강사, 의사까지 징계를 받는데도 말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계모가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아동학대를 막는 시스템이 너무 허술하다는 점이다. 그 중심에 친권이 있다. 친권은 면책특권이 아니다. 이제 무소불위의 친권을 제한할 때가 되었다. 국가보다도 못한 부모가 얼마나 많은 세상인가.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친권#학대#아동권리#부모#이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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