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세영의 따뜻한 동행]길에서 길 찾기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25일 03시 00분


코멘트
졸업을 1년 남긴 아들이 전공을 바꾸고 싶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지난 3년간 적성에 맞지 않아서 무척 괴로웠다는 것이다. 부모의 의견은 엇갈렸다. 엄마는 그동안 공부한 것이 아까우니 1년만 더 참고 졸업해 자격증을 딴 뒤에 다시 생각해 보자고 했고, 아버지는 그동안 적성에 맞지 않는 공부를 하느라고 괴로웠으니 하루라도 빨리 새로운 길을 찾는 게 낫다고 했다.

“지금은 아들이 새로 시작한 공부를 마치고 즐겁게 일하고 있어요. 조금 돌아오긴 했지만 길게 보면 그런 경험이 헛되지 않은 것 같아요.”

건축가인 지인은 자신도 처음부터 건축가를 지망한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대학 입시에서 낙방해 재수한 뒤에 새로 선택한 것이 건축학과였다. 그런데 건축가들 중에 종종 다른 분야에서 일하다가 건축을 시작한 사람이 오히려 더 빨리 성장하는 모습을 본다고 했다. 지름길로만 달려온 것보다 다양한 경험이 더 많은 가르침을 주는 것 같다는 말이다.

그의 말에 동의한다. 그런데 과거에는 나도 아이들에게 네 꿈이 뭐냐고, 넌 왜 확실한 목표가 없냐고 다그치며 답답해했다. 돌이켜보면 왜 그렇게 반드시 꿈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에 집착했는지 모르겠다. 아마 빨리 목표가 정해지면 낭비 없이 지름길로 내처 달려갈 수 있다는 효율성을 계산했던 것이리라.

그러나 인생은 정상에 이르는 루트를 미리 그리고 숙지한 뒤 올라가는 등반이 아니라 미지의 길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길을 가다 보면 여러 갈래의 길을 만나고 그때마다 길을 선택하는 것이 삶인데 미리 완벽하게 루트를 그려놓고 출발하려고 한다. 사실 에베레스트 등반에서 보듯이 길을 다 알고 올라가더라도 예기치 못한 눈사태를 만난다거나 주변 환경의 변화로 정상에 오르지 못하는 경우가 더 빈번한데 말이다.

하나의 골목을 돌아서면 새로운 길이 나오고 다시 모퉁이를 돌아서면 새로운 길이 열린다. 그러다가 혹시 막다른 길로 들어섰다면 조금 되돌아 나오면 그뿐이다. 처음부터 목표점이 훤하게 내다보이진 않는다. 행동하고 움직이다 보면 그 과정에서 나의 길을 발견할 수 있다.

3월은 많은 사람들이 새 출발을 하는 달이다. 이제는 지도만 들여다보지 말고 미숙하더라도 용감하게 떠나야 한다. 행여 남보다 출발이 좀 늦었거나 준비가 덜 되었더라도 일단 떠난다면 언젠가 길 위에서 나의 길을 만나게 될 것이다.

윤세영 수필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