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SNS에서는]카톡방 언어성폭력을 보며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6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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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경 사회부 기자
김호경 사회부 기자
14일 오후 11시경 페이스북 타임라인을 보다가 대학 후배가 올린 사진에서 손이 멈췄습니다. 고려대 남학생 8명이 1년 넘게 카카오톡 단체방에서 여자 동기와 선후배들의 실명을 언급하며 성희롱 대화를 나눈 이른바 ‘고대생 카톡방 언어 성폭력 사건’을 고발하는 대자보 사진이었습니다.

부끄러운 학창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중학교 3학년 도덕 수업 시간이었습니다. 성(性)을 주제로 한 조별 과제가 주어졌습니다. 제가 속한 조는 남학생들로만 구성돼 있었습니다. ‘나에게 이성이란’ 질문에 한 친구가 ‘욕망의 대상’이라고 썼고 저를 포함한 나머지는 이걸 보고 키득거렸습니다. 마침 그때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렸습니다.

그런데 점심시간이 끝난 뒤에도 다들 조별 과제물에 적은 문제의 표현을 지워야 한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그 과제물이 교탁 위에 올려져 있다는 것도 알지 못했습니다. 수업을 하러 들어온 국어 선생님은 그 과제물을 하나씩 읽기 시작했습니다. 저희 조의 과제물을 본 순간 선생님의 표정은 일그러졌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나와.”

그날 우리는 호되게 맞았습니다. 그리고 한 주 동안 수업을 듣지 못했습니다. 학생부 앞에서 무릎을 꿇고 매일 반성문을 써야 했거든요. 교실에 돌아간 첫날 담임선생님은 “잘못 가르쳤다”며 매를 들었습니다.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여성 인권과 성 평등을 주제로 시민단체가 주최하는 행사에 참석하고 감상문을 써 내야 했습니다.

고대생 카톡방 성폭력 사건이 언론에 보도된 다음 날인 15일 가해 학생들은 캠퍼스 곳곳에 대자보 형식의 사과문을 붙였습니다. 이들은 ‘언어 성폭력에 관련된 혐의를 모두 인정합니다. 형사처벌을 포함한 징계 역시 달게 받겠습니다’라고 사과했습니다.

이들이 나눈 대화에는 차마 입에 담을 수 없을 만큼 저속한 표현이 많았습니다. 단체방에 있던 한 학생이 문제 제기를 했는데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이들 중 한 명은 학교 양성평등센터 자원봉사자였고 다른 한 명은 페미니즘학회 회원이었습니다.

누리꾼들은 이들을 향해 ‘역겹다’, ‘추악하다’며 분노를 터뜨렸습니다. 사과문에 대해서도 진실성이 없다는 반응이 많았습니다. 카톡 단체방에서 나눈 대화도 모욕죄로 처벌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만약 이들이 법정에 가더라도 초범이기 때문에 그 처벌은 벌금을 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과거 사례에 비춰 봤을 때 징계도 그리 무겁지 않을 테고요. 성인이 되어서도 고쳐지지 않은 비뚤어진 사고방식이 이 정도로 고쳐질 수 있을까요. 이들은 사과문에서 ‘평생 반성하며 살겠다’고 했지만 그 말에 별로 믿음이 가지 않는 건 저 뿐일까요.

김호경 사회부 기자 whalefisher@donga.com
#고대생 카톡방 언어 성폭력#고대생 사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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