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SNS에서는]SNS시대 軍생활관의 유쾌한 상상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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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화면 캡처.
페이스북 화면 캡처.
권기범 디지털통합뉴스센터 기자
권기범 디지털통합뉴스센터 기자
‘부대입니다. 전화 주세요.’

어느 날 처음 보는 전화번호로 이런 메시지가 날아듭니다. 병사로 의무 복무 중인 친구나 가족, 연인을 둔 분들은 이 메시지를 본 순간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요.

일단 ‘무슨 일이 생긴 건가’라고 걱정하시는 분이 많을 것 같습니다. 어떤 분들은 ‘요즘 유행하는 신종 보이스피싱인가’라고 생각하실 것 같고요. 어쨌든 썩 반가운 느낌은 아닐 겁니다.

그런데 ‘요즘 군대’를 잘 아시는 분들에게는 이 메시지가 굉장히 반갑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위의 메시지는 장병들이 생활관에서 직접 보내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최근 군 생활관(옛 내무실)에 수신전용 공용 스마트폰이 마련된 이후 볼 수 있는 풍경입니다.

이 스마트폰을 이용하면 언제든 생활관에서 직접 전화를 하거나 문자를 보낼 수 있다고 합니다. 통화 한 번 하기 위해 주임 원사나 소대장 등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요청하거나, 전화가 먼저 걸려오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던 예전에 비하면 엄청나게 편리해진 겁니다.

재미있는 점은 스마트폰 공급 비용이 단 1원이라는 것. 지난해 국방부가 사업자를 공모할 때 국내 이동통신 업체인 LG유플러스가 스마트폰 4만4686대와 통화료를 합쳐 입찰가로 ‘1원’을 제시해 선정됐기 때문입니다. 목함지뢰 사건 때 전역을 연기한 병사들을 보고 감명을 받아 이런 결정을 내렸다고 하네요.

요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마케팅을 못하는 게 마케팅’이라는 기이한 호평을 듣는 LG그룹의 계열사들답지 않게, LG유플러스는 최근 이 정책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한 SNS 이벤트를 열었습니다. 군 수신용 스마트폰에 얽힌 사연을 받는 행사인데, 생각보다 많은 ‘곰신’(고무신의 준말·군대 간 남자친구를 기다리는 여성)과 가족들이 몰렸습니다. 지금까지 이 이벤트에는 댓글 820여 개, ‘좋아요’ 5400여 개가 달렸고, 공유 300여 건이 이뤄졌습니다.

댓글에는 20대들의 풋풋한 사연이 가득했습니다. 한 누리꾼은 ‘군화’(군대에 간 남자친구)가 전화하기로 한 시간이 됐는데 전화가 없어 안절부절못하다가 수신용 스마트폰으로 생활관에 전화를 걸었다고 합니다. 생활관 동기를 통해 남자친구가 몸이 안 좋아 입실(입원)했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고, 이후에도 자주 통화를 해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 사연은 지금까지 가장 인기가 많은 댓글로 꼽혔습니다. 이 밖에도 가족들의 근황을 사진으로 알리거나 군인들이 좋아하는 아이돌 사진을 보내주는 등 소소한 즐거움이 생겨서 좋다는 댓글도 있었습니다.

사실 통신 기술이 발달할수록 ‘연락 두절’에 대한 두려움은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지고 있습니다. 편지, 유선 전화로만 이성친구와 연락해야 했던 시절에는 자기 전에 한 번만 통화를 해도 행복감에 젖곤 했습니다. 휴대전화가 대중화된 뒤에는 이 간격이 조금 좁아졌습니다. ‘(고민 상담) 남자친구가 하루에 문자를 3번도 안 보냅니다’ 같은 글이 등장하기 시작했죠. 그리고 스마트폰과 SNS가 본격화된 요즘은 한 시간, 아니 30분만 연락이 안 돼도 버럭 화를 낼 때가 많습니다. 모바일 메신저에 ‘1’(안 읽음)이 없어지지 않아 30초에 한 번씩 고통스러워했던 기억이 한두 번쯤은 있을 겁니다.

이른바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에게 군용 스마트폰은 가뭄의 단비 같은 존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군의 변화 덕분에 유쾌한 상상을 하게 됩니다. 영상 통화 기능을 이용해 생활관에서 부모님께 세배를 하거나, 관물함에 여자친구 사진을 잘 붙여 놨는지 검사를 받거나, 자신이 이불을 얼마나 칼같이 잘 개 놓았는지 자랑하는 광경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쓸데없는 걱정을 해봅니다. 댓글에 등장하는 군인들 계급이 대부분 일병 또는 상병이더라고요. 선임병 여러분, 설마 이병들이 수신용 스마트폰을 쓰지 못하게 눈치를 주고 있는 건 아니겠죠?

권기범 디지털통합뉴스센터 기자 kaki@donga.com
#군대#스마트폰#생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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