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SNS에서는]이게 詩라고? 짧은 글 긴 웃음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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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연 국제부 기자
김수연 국제부 기자
‘한국인은 책도 읽지 않으면서 노벨상을 원한다.’

지난달 말 미국의 시사교양지 뉴요커가 한국의 문학 소비시장에 대해 따끔한 메시지를 던졌습니다. 일본 중국 등 이웃 국가에서는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왔는데 한국은 아직까지 무소식입니다. 노벨상 수상자가 선정되는 10월이 되면 마치 연례행사처럼 시인 ‘고은’의 이름이 빠지지 않고 뉴스에 오릅니다. ‘이번엔 가능할까’ 하는 마음으로 노벨문학상을 기대해볼 수 있는 유일무이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왜 한국은 노벨문학상을 받지 못하고 있을까요. 뉴요커는 한국의 문학 침체 현상에서 그 원인을 찾았습니다. 매번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는 고은의 작품조차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는 편이 아니며, 한국 사람들이 ‘문학 읽기’ 자체를 즐기지 않는데 어떻게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올 수 있느냐는 지적이죠. 그나마 자기계발서, 조금 유명해진 소설 등은 제법 팔리는 편이지만, 시(詩)를 찾는 사람은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SNS 시’가 사람들을 끌어모으고 있습니다. 이는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에 짧은 문구로 오른 시구를 말합니다. 주제도 일상에서 찾을 수 있는 단순한 소재인 경우가 많습니다. 주류 문학계에선 “이런 게 시라고 할 수 있느냐?”라는 반론도 나옵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SNS 시를 찾아 읽고, ‘좋아요’라고 말합니다. 장난인 듯, 장난 아닌 것처럼 보이는 SNS 시를 쓰는 이들은 ‘SNS 시인’으로 불립니다. 국립중앙도서관도 비록 주류 문학은 아니지만 이런 열풍에 의미를 부여하고 최근 ‘SNS 시인시대 전(展)’을 열었습니다.

‘내면을 바라봐/외모에 속지마’(‘덜 익은 삼겹살’) ‘착하게 살았는데 우리가 왜 이곳에’(‘지옥철’) ‘연락하지 않겠다고/다짐하고 다짐해도’(‘야식집’) ‘끝이 어딜까/너의 잠재력’(‘다 쓴 치약’)’―하상욱

SNS 시에는 반전의 묘미가 숨어있습니다. SNS 시의 선구자 역할을 한 하상욱 씨의 시가 대표적입니다. 하 씨의 SNS 시는 본문만 읽어선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없습니다. 특이하게도 맨 윗줄이 아닌 맨 아랫줄에 적힌 제목이 반전의 재미를 주는 포인트입니다. 다 쓴 치약을 낑낑대고 짜내면서 한 번쯤 해봤을 생각을 저렇게 재치 있게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에 깔깔대고 웃게 됩니다.

일상에서 자주 마주치는 사물에서 재미의 요소를 찾아내는 점도 SNS 시의 특징입니다. 이환천 씨의 SNS 시가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커피 믹스’를 보고 무슨 생각을 하시나요. 이 씨는 ‘커피 믹스’를 보고 이런 시를 지었습니다. ‘내 목 따고/속 꺼내서/끓는 물에/넣오라고/김부장이/시키드나.’ 또 다른 시 ‘월요일’에는 날짜를 의인화한 참신한 아이디어가 돋보입니다. ‘토일요일/자기들이/미친 듯이/놀아놓고/내가 뭐를/어쨌길래/뭐만하면/내탓이고….’ 직장인이 한 잔씩 기울이는 ‘맥주’도 이 씨는 특이한 시각으로 바라봅니다. ‘언제부터/내 위상이/소주깔 때/타서먹는/탄산수가/되었는가.’

물론 읽다 보면 ‘이게 문학인가’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시’라고 하면 사물의 본질에 대한 깊은 통찰, 인간 존재에 대한 고민, 가장 적합한 단어를 쓰기 위한 고뇌, 음성과 뜻이 조화를 이룬 리듬감, 고급스러운 문체 등을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리꾼들은 “고등학교 때 이해도 안 되는 어려운 시를 밑줄 쳐 가며 공부했는데, SNS 시를 읽고 나도 시를 써보고 싶어졌다” “출퇴근길 새로운 시가 올라오길 기다린다. 짧은 글이지만 배꼽 잡고 웃을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고 반응합니다.

SNS 시인들은 최근 오프라인 영역으로 진출했습니다. ‘읽어보시(詩)집’(최대호) ‘시(詩)밤―시 읽는 밤’(하상욱) ‘이환천의 문학살롱’(이환천) 등이 바로 SNS에서 인기를 끈 시를 묶어 출판한 시집들입니다. “책에는 악서(惡書)가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주류 문학이 아니라도 사람들이 문학에 관심을 가지고 이런 책을 가까이하게 되면 언젠가 ‘책 안 읽는 한국’이 ‘책 많이 읽는 한국’이 되지 않을까요.

김수연 국제부 기자 sy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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