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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SNS에서는]어느 블로거의 일등석 탑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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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SNS에서는]어느 블로거의 일등석 탑승기

박선희 소비자경제부 기자 입력 2015-12-04 03:00수정 2015-12-0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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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희 소비자경제부 기자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어느 의사의 아시아나 일등석 탑승기’란 글이 화제가 됐었습니다. 의사라는 선망의 직업과 아무나 탈 수 없는 일등석의 결합, 대충 어떤 글이 나올지 느낌이 오시나요? ‘라면상무’ ‘땅콩회항’ 사건의 어렴풋한 기억과 함께 일등석 그까짓 거 우등고속 티켓 끊는 것보다도 우습다는 듯한 거만한 후기가 나오리라 짐작하셨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탑승기는 예상을 깼기 때문에 화제가 됐습니다. 보유 마일리지를 다 털어 일등석을 끊은 이 글의 주인공은 ‘퍼스트’라고 쓰인 발권 데스크, 일등석 라운지, 탑승구 등 곳곳에서 기념사진을 찍습니다. 마치 에펠탑이나 웨스트민스터 사원 앞에 서서 인증사진 남기는 관광객처럼 어색하게 미소 지으면서 말입니다.

탑승해서는 다들 한번쯤 해보고 싶지만 차마 못하는 모든 것들을 합니다. 이를테면 승무원이 “이륙 전 샴페인은 두 종류입니다. 뭘 드릴까요?”라고 할 때 “둘 다요”라고 말하고 “와인은 어떤 걸로 드릴까요?”라고 물으면 “다 주세요”라고 요청하는 식이죠. 잠시 후 실제로 화이트와인 3종, 레드와인 4종에 샴페인 2종 총 9잔이 테이블 위에 놓입니다. 부끄러움은 짧고 추억은 영원하다면서요. 승무원이 정성껏 끓여주는 라면, 원할 때까지 리필 되는 음식, 폭신폭신한 침구에 향 좋은 커피까지 만족감에 젖어 있을 때 비행기가 목적지에 도착합니다. 승무원이 묻습니다. “즐거운 여행 되셨나요?” 그는 대답합니다. “안 내리고 다시 가면 안 될까요?”


이 후기가 링크된 한 페이스북에 사람들은 7000회가 넘게 ‘좋아요’를 눌렀습니다. 해당 의사가 운영하는 개인 블로그에는 하루에만 22만여 명이 방문했습니다. ‘너무 웃긴다’ ‘일등석을 직접 탄 것처럼 생생하다’는 답글이 400개가 넘게 달렸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폭발적인 관심을 보인 건 이 글이 ‘의사’ ‘일등석’ 따위만 들었을 때의 첫 짐작과 달리 무척 진솔하면서도 위트 넘치는 후기였기 때문일 겁니다. ‘대놓고 인증사진 찍으면 촌스러워 보일까’ ‘일등석 안 타본 거 티낸다고 무시하진 않을까’처럼 누군가를 의식해서 ‘아는 척’ ‘안 그런 척’ ‘괜찮은 척’ 하지 않은 것이죠. 그저 현재의 벅찬 감정과 당면 과제에 충실합니다. 그 소탈하고 솔직한 태도에서 유머가 파생되고, 자연스러운 공감대가 형성됩니다. 의사든 누구든, 다 똑같구나 하는 키득거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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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사실 SNS라는 공간에서 이런 종류의 후기를 찾아보기는 그리 쉽지 않습니다. 값비싼 레스토랑에서의 식사, 특급호텔에서의 모임, 해외여행에서의 한때 등 각종 후기는 차고 넘치지만 온통 그럴 듯한 모습을 보여주는 데만 신경을 쓰기 때문이죠. 사람들은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이나 완벽해 보이는 것에 열광합니다. SNS 스타들은 이 점을 십분 활용합니다. 기본 수만 명의 팔로어를 거느린 소위 ‘럭셔리 블로거’들을 예로 들어볼까요. 이들은 장을 보고난 후기를 쓸 때는 봉지 안에 담긴 수십만 원짜리 한우 가격표가 보이게, 네일아트로 기분전환한 후기를 쓸 땐 손가락 뒤로 1000만 원짜리 명품 가방이 보이게 사진을 찍어 올립니다. 고급식당에서 밥을 먹은 뒤엔 꼭 결제금액이 적힌 영수증을 인증하고, 셀카를 찍어도 꼭 핸들의 외제차 로고가 보이게 찍습니다. 아름답게 치장한 사진과 늘씬한 몸매를 올리면서도 엉망이라고 엄살을 피웁니다. 이들이 올린 일등석 후기라면 말할 것도 없겠죠?

사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누구나 보여주는 모습은 어느 정도 각색하고 싶어 합니다. 목적 자체가 다른 사람들 보라고 올리는 SNS 게시물이라면 말할 것도 없겠죠. 굳이 자랑하고 싶지 않은 일상을 타인과 공유까지 하려는 사람은 드물 테니까요. 하지만 SNS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반대로 거기서 파생된 감정적 피로감과 염증 역시 커지는 것만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얼마 전엔 빼어난 외모와 화려한 일상으로 수십만 팔로어를 거느렸던 호주의 한 10대 SNS 스타가 자신이 보여준 완벽한 삶은 가짜였고 ‘좋아요’에 중독된 삶은 불행했다고 고백해 화제가 되기도 했었습니다. 어찌 보면 이 ‘평범한(?)’ 일등석 탑승기에 대한 뜨거운 반향은 끊임없이 과시적으로 소비되는 SNS 문화에 대한 환멸감, 보다 인간적이고 소탈한 교류에 대한 갈증을 반영하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박선희 소비자경제부 기자 teller@donga.com


#블로거#일등석#마일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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