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SNS에서는]여자 경찰은 나긋나긋한 업무만 하라고?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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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청이 2일 ‘112의 날’을 맞아 공개한 포스터. 경찰청 제공
경찰청이 2일 ‘112의 날’을 맞아 공개한 포스터. 경찰청 제공
박창규 사회부 기자
박창규 사회부 기자
‘짧은 치마가 잘 어울리고 키 165cm 이상 18∼29세 여성. 55사이즈. 웃는 예쁜 얼굴에 비율이 좋으신 분 Good!’

지난달 한 아르바이트 전문 취업 포털에 올라온 구인 광고 문구입니다. ROTC 관련 행사에 필요한 의전 도우미를 구하는 광고인데요. 이 광고는 바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퍼지면서 논란을 불러왔습니다.

문구를 본 대다수 여성은 분개했습니다. 특히 지원자에게 프로필 또는 전신사진을 요구하며 ‘칙칙한 남자 모임에 꽃이 되어 달라’는 문구는 기름에 불을 지핀 격이었습니다. “엄연히 하나의 직업인 의전 도우미더러 ‘꽃’이라니, 남자들의 저런 인식이 짜증난다”거나 “차라리 유흥업소 직원을 뽑아라” 같은 비판이 이어졌습니다.

반면 남초 사이트에서는 이런 반응을 비꼬았습니다. 의전 도우미의 역할 자체가 매끄러운 행사 진행과 보조인데 기왕이면 참석자들도 만족하게끔 예쁜 여성을 뽑는 게 무슨 문제냐는 겁니다. 어떤 이들은 “외모에 자신 없는 ‘루저’들의 푸념일 뿐”이라는 다소 과격한 반응도 보였습니다.

사실 외모를 기준으로 내세우거나 성차별적인 채용 문구가 논란이 된 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닙니다. ‘예쁜 알바’ ‘여성 비서’ 같은 채용 문구만 나오면 외모나 성별에 따른 차별이라는 비판이 이어졌으니까요. 오죽하면 고용노동부도 최근 대기업 등에 채용 때 성차별적인 문구를 쓰지 말라고 권고문을 보내기로 결정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고정적인 성 역할 강조가 단순히 채용 과정에서만 나타나는 일일까요. ‘112의 날(11월 2일)’을 맞아 경찰청이 올바른 범죄 신고문화 정착을 위해 공개한 포스터를 두고도 뒷말이 나왔습니다.

포스터를 보면 112(긴급범죄신고) 앞에는 우람한 근육을 자랑하는 남성 경찰을 배치한 반면 182(기타 신고) 앞에는 경례하는 여성 경찰을 내세웠습니다. 촌각을 다투는 사건 사고 관련 신고는 112를, 기타 신고는 182를 이용하라는 메시지를 담은 것이지요.

고정된 성 역할에 비판적인 이들은 이 포스터를 문제 삼았습니다. 플러스 사이즈 모델로 활동하고 있는 김지양 씨는 페이스북에 “여자의 할 일과 남자의 할 일의 경계가 사라진 시대라고 말은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성별 프레임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는 반증인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이 든다”고 적었습니다.

그는 ‘165cm 이상 55사이즈’ 모델이 즐비한 업계에서 최초의 88사이즈 모델입니다. 평소 외모로만 여성을 판단하려는 사람들의 시선을 거부하고 “자신의 사이즈를 긍정하라”는 메시지를 전파하고 있는 인물이지요. 이런 그에게 경찰청 포스터는 고정된 성 역할을 강요하는 것으로 보이기에 충분하겠지요.

누군가는 긴급한 상황은 우람한 남성 경찰이, 섬세한 상담이 필요한 일에는 다정한 여성 경찰이 맡는 게 무슨 문제냐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신체적 차이에 따른 역할 분담일 뿐인데 말이지요. 일부는 “포스터를 보고 그 정도까지 문제 제기가 가능한지 의문이 든다”는 댓글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김 씨를 비롯한 이들은 일반 조직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고 봅니다. 경찰 조직 어딘가에는 몸을 잘 단련해 긴박한 사건 현장을 누비려고 경찰이 된 여성이 있을 테고 상냥하게 소외된 이들을 보듬고 싶은 남성 경찰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 포스터는 은연중에 ‘우리는 강인한 남성, 상냥한 여성 경찰을 원한다’는 메시지로 들릴 수 있지 않느냐는 얘기지요.

과거에는 업종이나 직업에 따라 성별 제한이 꽤 있었습니다. 근로기준법 제72조에는 ‘사용자는 여성과 18세 미만인 자를 갱내(坑內)에서 근로시키지 못한다’는 조항이 아직 존재합니다. 하지만 극단적인 일부 업종을 제외하곤 이런 구분은 점차 사라지는 추세입니다.

이에 발맞춰 우리도 고정된 성 역할을 강요하는 모습은 지양해야 하지 않을까요. 국민 전체를 보듬어야 하는 정부와 그 조직에서 먼저 나서면 어떨까요. 아직 우리는 시기상조라고요?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신임 총리는 최근 내각을 남녀 동수로 구성해 신선한 충격을 안겨줬습니다. 그 이유를 묻자 트뤼도 총리는 이렇게 말했답니다. “2015년이잖아요.”

박창규 사회부 기자 kyu@donga.com
#경찰#경찰청#업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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