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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SNS에서는]“판사님, 저는 웃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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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SNS에서는]“판사님, 저는 웃지 않았습니다”

권기범 디지털퍼스트팀 기자 kaki@donga.com입력 2015-10-16 03:00수정 2015-10-1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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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님, 저는 그냥 칼럼을 쓸 뿐입니다.

뜬금없이 무슨 소리냐고요? 요즘 유행하는 인터넷 댓글을 따라해 본 겁니다. 댓글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유심히 지켜보는 편이라면 이미 눈치채셨겠지만, 최근 들어 ‘판사님’을 찾는 표현이 부쩍 늘어났습니다. 뭔가 위험해 보이는 글에 ‘판사님, 저는 웃지 않았습니다’ ‘판사님, 저는 실수로 좋아요를 눌렀습니다’ 같은 댓글을 다는 겁니다.

이 댓글의 시작에는 몇 가지 ‘설’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설’입니다. 2015년 3월 한 여자 연예인의 사진이 외국의 성매매 홍보에 도용됐다는 소식을 전하는 게시물이 올라왔습니다. 여기에 누군가 ‘판사님 저는 웃기만 했습니다’라는 댓글을 달았습니다. 이후 법적 문제에 휘말릴 수 있는 글을 올리거나 여기에 댓글을 달 때, 몇몇 이용자가 이런 표현을 썼습니다. ‘나는 죄가 없다’는 것을 비꼬아 말하던 것이 유행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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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방송자막설’입니다. 한 방송사에서 2013년 초 방영했던 ‘학교의 눈물’이라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의 캡처 화면에서 시작됐다는 겁니다. 학교폭력 가해자들이 법정에서 판사를 향해 ‘판사님 한 번 봐 주세요’ ‘판사님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장면을 패러디했다는 설명입니다.

이외에도 ‘디시인사이드(인터넷 커뮤니티) 기원설’ 등 많은 추측이 있습니다. 하지만 정확한 ‘기원(?)’은 여전히 불명확합니다(유행의 신호탄이 된 가장 유력한 후보를 아시는 분은 제게 알려주세요. 저도 궁금합니다).

‘판사님’ 시리즈의 인기는 7월부터 급상승했습니다. 검색 빈도를 보여주는 ‘구글 트렌드’에 따르면 ‘판사님’이라는 단어의 관심도(검색 활성화 정도를 보여주는 상대적 지표)는 7월(52점)부터 높아지기 시작해 8월 최대치(100점)를 기록했습니다.

당시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7월에는 인기그룹 소녀시대의 멤버 태연 씨가 악플러들에게 강경 대응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트위터를 통해 공개적으로 알렸습니다. 8월에는 웹툰 작가 강풀 씨가 가족을 비방하는 등 악플을 단 사람들에게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해 이슈가 됐습니다.

그동안 악성 댓글에 대해 ‘무대응’ 또는 ‘소극적 반박’을 하는 데 그쳤던 연예인들이 강경한 대응에 나서자 누리꾼들이 ‘판사님’ 댓글을 유행처럼 사용하기 시작한 겁니다. 이들은 명예훼손, 모욕, 허위사실 유포 등의 소지가 있을 것 같은 글에는 ‘판사님’을 운운하며 자신에게 죄가 없음을 미리 주장했습니다.

인기는 정부에 대한 비판이나 풍자로 범위가 확대되면서 증폭됐습니다. 이전에는 주로 ‘두렵다’ ‘위험한 글이다’라는 의미로 쓰이던 이 댓글이, 정부와 관련한 글에서는 풍자의 의미로 변형돼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8월 페이스북 페이지 ‘박근혜 번역기’에는 ‘판사님 저는 웃지 않았습니다’라는 제목의 게시물이 올라왔습니다. 페이지 운영자는 한 모의고사 문제지에 박근혜 대통령의 ‘간절히 바라면 온 우주가 도와줄 것’이라는 말이 등장했다는 사진을 올리면서 이 같은 내용을 덧붙였습니다.

이 글은 좋아요 3000여 개, 공유 140건을 기록하며 인기를 끌었습니다. 누리꾼들은 ‘판사님 저는 시력이 없습니다(게시물을 봤지만 못 본 체하겠다는 뜻)’ ‘판사님 그냥 웃자고 올린 겁니다ㅋㅋㅋ’ 같은 댓글을 달았습니다. 이 밖에도 대통령이나 정치인을 조롱하는 글에서 ‘판사님’의 등장 빈도는 계속해서 높아지고 있습니다. 높은 인기 때문에 최근에는 이에 대한 피로감을 호소하는 의견이 나오기도 합니다.

이런 모습이 단순 유행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누리꾼들의 법적 책임감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는 증거인 동시에 인터넷에서 쓴 글이 법적 문제로 비화하는 데 대해 비난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뜻 아닐까요.

어쨌든 누리꾼들이 인터넷 게시물에도 책임이 따른다는 점을 깨달은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판사님’ 댓글의 유행이 단순히 풍자의 차원에서 그치지 않고 댓글 문화의 성숙으로 이어지면 좋겠습니다.

권기범 디지털퍼스트팀 기자 kak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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