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SNS에서는]김 여사는 억울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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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배드림에 올라온 일명 ‘대전역 김 여사’ 사진. 보배드림
보배드림에 올라온 일명 ‘대전역 김 여사’ 사진. 보배드림
보기만 해도 누구나 가슴이 답답해질 한 장의 사진. 이달 14일 자동차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인 보배드림에는 ‘12일 대전역 김 여사님 주차 신공’이라는 제목의 사진이 게시됐습니다. 역을 찾는 승객을 내려주기 위해 만든 한 개 차로의 도로에 승용차가 불법 주차돼 다른 차량들의 통행을 떡하니 막고 있는 사진이었습니다.

대전역 앞으로 추정되는 이 한 장의 사진에는 현장의 난감한 분위기가 그대로 담겼습니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차주에게 연락을 하려는 듯 전화를 거느라 바빴고 문제의 차량 뒤 시티투어 버스는 차를 피해 지나가 보려다 포기한 듯 반대 측 구석에 그대로 정차해 있었습니다. 눈앞의 상황이 기가 차다는 듯 팔짱을 끼거나 조수석 창문으로 차량 내부를 들여다보는 시민도 있었고 휴대전화로 차량을 촬영하는 이들의 모습도 담겼습니다. 시티투어 버스 뒤로는 또 얼마나 많은 운전자가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을까요.

글쓴이가 전한 사연은 더 충격적이었습니다. 차주는 경찰과의 통화에서 자신의 차를 주차한 뒤 부산에 내려가고 있다고 했습니다. 보험사에 차량 견인을 부탁하는 말도 남겼다고 했습니다.

문제의 ‘김 여사’를 향해 누리꾼들의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불법 주차된 차량 때문에 발생한 피해를 차주가 모두 보상해야 한다는 이야기부터 면허를 취소해야 한다는 강경파의 목소리도 나왔습니다. 평소 김 여사(운전에 서툰 일부 여성 운전자를 비하하는 표현)에게 쌓아뒀던 울분을 이 자리에서 다 풀려는 듯 인신공격성 댓글을 다는 누리꾼도 있었습니다. 한 누리꾼은 “저 아줌마랑 사는 남편이 제일 불쌍하다”며 열을 올렸고 “내가 남편이면 면허증 반납, 차 압수하겠다”는 댓글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틀 뒤 본인을 대전지방경찰청 소속 경찰이라고 밝힌 누리꾼이 댓글 하나를 올리면서 이야기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흐르게 됐습니다. 당시 현장에 출동했다는 이 경찰은 이때까지 드러나지 않았던 현장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건 운전자가 여성이 아닌 남성이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차주가) 알아서 견인하라고 말하지 않았고 보험사에 연락해 견인 조치한다고 했다”고도 덧붙였습니다. 김 여사 비난에 열을 올리던 누리꾼 모두는 순식간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됐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솔직히 저 또한 그랬다고 고백합니다.

김 여사를 비난하던 여론은 평소 여성 운전자를 무시하는 일상 속 시선으로 과녁을 옮겼습니다. 애초 글 제목에 ‘김 여사’를 달았던 글쓴이까지 여론의 뭇매를 맞았습니다. 언제부터 우리는 상식 이하의 운전을 하는 이들이 전부 여성일 거라고 지레짐작해온 걸까요.

시간과 공간의 벽을 허물고 소통을 강화한다는 소셜네트워킹의 사회는 아이러니하게도 당장 눈앞의 사진조차 믿지 못하게 하는 사회를 만들었습니다. 제목에 붙은 세 음절 ‘김 여사’만으로 많은 누리꾼이 잘못된 확신을 갖는데 또 다른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일인들 어디 어려울까요. “나에게 한 문장만 달라. 그러면 누구든지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던 나치의 선전부 장관 요제프 괴벨스의 이야기가 떠오를 정도입니다.

한 장의 사진이 주는 직관의 힘은 위대합니다. 굳이 먼 과거로 시선을 돌리지 않아도 그렇습니다. 이달 초 터키 해변 모래에 얼굴을 묻고 숨진 채 발견된 세 살배기 시리아 난민 알란 쿠르디의 사진으로 전 세계는 깊은 슬픔에 빠졌습니다. 이 한 장의 사진으로 전 세계는 난민문제의 심각성을 체감했고 결국 유럽연합(EU)이 난민 분산 수용안을 통과시키는 등 실천적 변화를 이끌어내기도 했습니다.

반대로 사진이 잘못된 직관을 갖게 할 때 그 파급효과 또한 막강합니다. 대전역 김 여사 사진이 그랬듯 사진을 통해 불붙은 잘못된 직관 또한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순식간에 번져나갑니다. 글과 동영상 또한 여기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하루에도 스마트폰으로 수십 개, 수백 개의 콘텐츠를 접하는 이라면 오늘 하루만큼은 눈앞의 콘텐츠를 다시 한 번 바라보는 일종의 ‘거리 두기’를 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언젠가 어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 애먼 뭇매를 맞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강홍구 사회부 기자 wind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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