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SNS에서는]잘 죽는 법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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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씨.

잘 죽는다는 건 무엇일까요? 숨 쉬는 일마저 힘겨워하시는 어머니를 아프게 바라보던 S 씨의 새빨간 눈을 바라본 뒤부터 이 질문이 제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31년을 살면서도 집안 사정 탓에 어머니하고 자주 떨어져 지냈다는 S 씨는 “엄마와 함께한 추억이 너무 없다”고, “휴대전화에 엄마와 함께 찍은 사진 한 장 없다”며 가슴을 치셨죠.

처음 찾아간 의사는 어찌 폐암 환자를 앞에 두고 그저 결핵이라고 진단을 내렸을까요? 억센 상인이 적잖은 서울고속버스터미널 지하상가에서도 강단 하나는 알아주던 어머니는 왜 그리 갑작스레 쇠약해지신 걸까요? 너무도 갑자기 엄마의 마지막 모습을 바라보아야 하는 S 씨 모습이 훗날 제 모습 같기도 했고, 힘겹게 S 씨 손을 잡고 쉬 놓지 못하는 어머니 모습이 훗날 마주할 우리 엄마 모습 같기도 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준비한다는 건 과연 가능하기나 한 일일까요? 몇 밤이 더 지나면 엄마와 더이상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게, 마주 보고 웃지도 못하고 투정 부릴 수도 없으며 잔소리도 들을 수 없다는 게 얼마나 까마득한 일인지요.

S 씨를 보면서 문득 자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에 열심히 ‘항암일기’를 올리고 있는 이외수 씨를 떠올렸습니다. 인기를 끌고 있다는 그 항암일기가 제 피부에는 와 닿지 않더군요. 저라면 죽음을 앞에 두고 “길에서 강도를 만났습니다. 지혜롭게 대처하는 방법은? 이외수의 신간 ‘뚝,’을 보시면 이 질문 하나로도 웃음과 지혜와 사랑을 다 얻으실 수 있습니다” 하고 트위터에 글을 남기고 있을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심지어 죽음을 이용해 자기 SNS 영향력을 과시하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이 씨 상태가 얼마나 위중한지 잘 모르겠으나 투병을 한다면서 광고성 글까지 빼먹지 않고 띄우는 게 ‘잘 죽는 길’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특히 “정력, 정력, 정력에도 도움을 준다고 합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상품이지”라는 표현 앞에서는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저는 답을 찾을 수 없더군요.

물론 이 씨의 삶을 제가 재단하려는 건 아닙니다. 다만 이 씨 글을 보면서 어릴 적 TV에서 본 외화 시리즈 ‘외계인 알프’ 생각이 났습니다. 이 외계인들은 자신이 언제 죽을지를 미리 알고 있었습니다. 그게 언제 세상을 떠날지 모르는 우리보다 더 잘 죽을 수 있는 길일까요? 그러면 이 씨가 어떤 의미로 저런 글을 쓰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을까요?

S 씨는 “엄마하고 성격이 너무 비슷해 오히려 잘 부딪쳤다”고 하셨습니다. “무뚝뚝한 성격 탓에 살가운 언니처럼 아픈 엄마를 안아주고 뽀뽀하고 사랑한다고 말하지도 못하는 내 자신이 너무 밉다”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병실에 앉아 어머니와 S 씨가 서로를 바라볼 때, 꼭 닮은 모녀의 손이 서로를 놓지 못할 때 저는 말보다 더 귀한 마음이 오가는 모습을 봤습니다. 그게 지난 모든 아쉬움을 녹여내는 아주 오래되고 깊은 사랑이라면 오버였을까요?

오버였다고 해도 좋습니다. 덕분에 저는 사랑은 영원히 끝나는 게 아니라는 걸 진심으로 깨닫게 됐습니다. S 씨도 느끼지 않으셨나요? 어머니의 사랑이 S 씨를 지켜주고 있다는 걸. S 씨, 감히 말씀드리자면 “사는 동안 아낌없이 사랑하라”던 어머님 말씀을 잊지 않고 사는 게 그 사랑에 보답하는 길은 아닐까요?

S 씨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조금은 이 씨 마음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씨가 올리는 ‘항암일기’ 중에 제 눈에 불편한 것만 골라 불평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가 쓴 것처럼 “내 마음만 열면 다른 것도 곁에 있으면 (정겨운 것)”이 맞을 겁니다. 어쩌면 이 항암일기는 이 씨가 세상을 아낌없이 사랑하는 마음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S 씨, 의사가 오늘 저녁 즈음 어머니께서 세상을 떠나실 거라 했다고 들었습니다. 아직 부고가 들리지 않아 다행입니다. 얼마나 힘든 시간을 겪고 있을지 상상밖에 할 수 없기에 “힘내시라”고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그저 당신을 많이 걱정하고 있다고 말씀드립니다. 그동안 고생 참 많았습니다. 저도 아낌없이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결국 그게 잘 죽는 길일 테니까요.

황규인 스포츠부 기자 kini@donga.com
#잘 죽는 법#폐암#결핵#어머니#항암일기#외계인 알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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