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SNS에서는]저항하는 웃음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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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성 누리꾼이 20일 인스타그램에 ‘direnkahkaha (디렌카흐카하)’ 해시태그를 달고 올린 사진. 21일 오후 3시 현재 인스타그램에만 같은 태그를 단 사진 5868장이 게시돼 있다. 인스타그램 캡처
한 여성 누리꾼이 20일 인스타그램에 ‘direnkahkaha (디렌카흐카하)’ 해시태그를 달고 올린 사진. 21일 오후 3시 현재 인스타그램에만 같은 태그를 단 사진 5868장이 게시돼 있다. 인스타그램 캡처
‘얼음물 샤워 릴레이’가 막바지에 접어든 여름을 시원하게 달래고 있습니다. 지난달 미국 루게릭병(ALS)협회가 병을 대중에게 알리고 환자 치료에 필요한 기부금을 모으기 위해 시작한 ‘아이스 버킷 챌린지’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중심으로 급속도로 퍼져나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얼음물 샤워를 한 뒤 다음 도전자 3명을 지목하는 식의 사회적 놀이에 국내외 유명인사들도 동참했습니다. 브라질 국가대표 축구선수 네이마르는 2014 브라질 월드컵 당시 자신에게 척추 부상을 입힌 콜롬비아의 후안 카밀로 수니가를 지목해 화제가 됐습니다. 국내에서는 12년째 루게릭병과 싸우고 있는 박승일 전 프로농구 울산 모비스 코치가 참여해 깊은 감동을 주기도 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하면 총 22일 만에 전 세계 인구 모두가 이 행렬에 동참할 수 있다고 하니 저도 당장 지금부터 다음 주자로 누구를 지목할지 고민해볼 생각입니다. 아, 방금 페이스북을 보니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도 기꺼이 얼음물 샤워를 한 모양이네요.

국내에는 덜 알려졌지만 SNS 공간을 통한 세계인들의 의기투합은 최근에 또 있었습니다. 인스타그램을 중심으로 퍼진 ‘디렌카흐카하(direnkahkaha)’ 운동이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direnkahkaha는 ‘저항하다’라는 뜻의 터키어 ‘direnmek’에 웃음소리를 뜻하는 ‘kahkaha’를 합쳐 만든 ‘저항하는 웃음’이라는 단어인데요. 이 운동에 참여하는 방법은 얼음물 샤워를 견뎌내는 것보다는 쉽습니다. 여성이 환하게 웃는 사진을 찍어 올린 뒤 ‘direnkahkaha’라는 해시태그(단어 앞에 ‘#’를 붙여 특정 주제를 다루고 있음을 표현하는 것)를 달기만 하면 됩니다.

보기만 해도 설레는 여성들의 웃는 사진이 SNS를 수놓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놀랍게도 이 운동은 터키의 뷜렌트 아른츠 부총리의 발언에서 시작됐습니다. 지난달 아른츠 부총리가 한 행사에 참석해 “여자는 공공장소에서 웃으면 안 된다. 자신의 매력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는 등의 감 떨어지는 이야기를 하자 이에 대한 저항의 의미로 전 세계 여성들이 나선 것입니다.

아른츠 부총리의 말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여성들은 보란 듯이 웃는 사진을 찍어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것도 치아가 환히 드러날 정도로 활짝 웃은 채 말이죠. 특히 유엔여성기구(UN Women) 친선대사로 활동하는 유명 여배우 에마 왓슨이 허리가 꺾일 정도로 폭소하는 사진을 트위터에 올리자 저항하는 웃음은 더욱 관심을 모았습니다.

국내 누리꾼들의 참여도 늘어났습니다. 한 여성 누리꾼은 “터키 여성 인권을 위해 웃어요!”라는 글과 함께 활짝 웃는 사진을 올렸습니다. 다른 여성 누리꾼은 “터키 부총리는 아직 혼자 19세기에 살고 있는가 봐”라고 일갈하기도 했습니다.

취지에 공감한 남성들의 참여도 늘어났습니다. 다양한 아이디어도 쏟아졌습니다. 개가 웃는 듯한 모습을 담은 사진이 올라왔고 초승달이 걸린 터키 국기를 옆으로 뒤집어 웃는 입 모양을 형상화한 게시물도 보였습니다. 저항의 의미로 시작된 해시태그 행렬은 하나의 축제처럼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함박웃음으로 도배된 SNS를 보며 저는 얼마 전 대학 동창이 건넨 말이 떠올랐습니다. 그는 지난주 방한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을 언급하며 “신문 1면에서 그렇게 활짝 웃는 얼굴을 본 것이 오랜만이지 않냐”고 말했습니다.

웃을 힘조차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는 당신, 오늘 하루는 억지로라도 웃어보는 건 어떨까요. 지금이라도 direnkahkaha를 검색해본다면 어느새 웃고 있는 당신을 발견하게 될 겁니다. 그렇게 해도 웃을 자신이 없다고요? 연락 주세요. 기꺼이 얼음물이라도 끼얹어 드리겠습니다.

강홍구 사회부 기자 wind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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