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SNS에서는]인터넷 유행어 ‘잼있게’ 즐기는 법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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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진짜 ‘노잼’이다.”

무슨 뜻일까요.

답은 바로 “재미가 없다”입니다. 부정을 의미하는 영어 ‘노(No)’와 ‘재미’의 준말인 ‘잼’을 붙인 겁니다.

이 문제를 간단히 맞히셨다면, 적어도 요즘 인터넷 트렌드에 뒤처지는 사람은 아니라고 자부하셔도 좋습니다. 이 ‘잼’ 시리즈는 최근까지 포털사이트나 인터넷 커뮤니티의 댓글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서 젊은층들이 많이 사용한 단어 중 하나입니다.

이 단어의 활용도는 무척 높습니다. ‘잼(재미)’의 앞머리에 원하는 단어만 붙이면 ‘∼ 때문에 재미가 있다’ ‘∼처럼 재미가 있다’는 식으로 해석됩니다. ‘꿀잼’은 꿀맛 같은 재미가 있다, ‘월드컵잼’은 월드컵 경기를 보고 있으니 재미가 있다는 뜻이 되는 거죠.

이쯤 되면 이 괴상한 단어가 탄생한 과정이 궁금해집니다.

누리꾼들은 이 단어가 ‘재미’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한 제지업체의 TV 광고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2000년대 말 한 제지업체는 ‘프린터 용지 걸림(잼)’이 적다는 점을 앞세운 복사기의 TV 광고를 론칭하면서 ‘노 잼, 노 스트레스(No Jam, No Stress)’라는 문구를 앞세웠습니다.

바쁜 와중에 멀쩡한 프린터까지 나를 괴롭힐 때 느끼는 허탈함과 분노가 잘 표현된 광고인데요, 여기에 재미를 느낀 일부 누리꾼이 이 문구를 패러디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재미가 없는 게시물에 ‘너의 재미없는 게시물을 읽느라 시간을 낭비해서 스트레스만 받는다’는 의미로 ‘노 잼, 예스 스트레스’라는 댓글을 달았습니다. 이 문구에서 ‘예스 스트레스’가 탈락하고 ‘노 잼’이라는 말만 사용된 것이 지금까지 이어진 겁니다.

골치가 아파오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등장했다 사라지는 수많은 인터넷 유행어들을 일일이 분석해야 하는 거냐고, 그래야만 인터넷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거냐고 반문하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사실 이런 유행어들을 쉽게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방법이 있기는 합니다. 유행어에 담긴 스토리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앞에 이야기했던 ‘노잼’의 탄생 비화를 알고 나면, 적어도 ‘먹는 잼’과 ‘재미의 준말인 잼’을 구분할 수는 있을 테니까요.

이런 탄생 비화를 가진 인터넷 유행어는 많습니다. 지난달 새정치민주연합이 지방선거를 앞두고 선거대책위원회 명칭으로 사용해 화제가 되기도 했던 ‘지못미(지켜주지 못해 미안해)’는 2006년 나온 영화 ‘마음이’의 포스터에 나온 문구에서 유래됐다고 합니다. 최고 중의 최고를 뜻하는 ‘킹왕짱’이라는 은어는 유명 온라인 게임에서 한 유저가 사용했던 아이디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최근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정말 미안하다!”는 말이 유행이라고 합니다. 오로지 이 단어만을 이용해 노랫말을 쓴 누리꾼도 있을 정도로 인기입니다. 개그 프로그램, 웹툰에서도 심심찮게 패러디되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이번 서울시교육감 선거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으셨던 분들이라면 이 유행어에 담긴 의미를 금방 이해하셨을 겁니다.

이 말은 서울시교육감 선거의 후보 중 한 명이었던 고승덕 씨가 유세 현장에서 외친 것입니다. 고 씨는 자신의 딸이 올린 페이스북 글로 논란의 대상이 되자 유세 마지막 날인 3일 “못난 아버지를 둔 딸에게 정말 미안하다”라고 외쳤습니다.

하지만 고 씨의 외침은 이미 기울어버린 판세를 뒤집지 못했고, 그는 낙선했습니다. 오히려 그런 모습을 비꼬는 글이 인터넷에 속속 등장한 것을 보면, 그에게 공감하지 못한 사람이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이처럼 누리꾼들의 유행어에는 특정 상황에 대한 일체된 공감, 또는 비공감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노잼’에는 일상적 스트레스에 대한 거부감이, ‘미안하다’에는 정치적 수사에 대한 냉소가 깔려 있는 것 아닐까요.

어쩌면 기성세대들이 젊은 누리꾼들이 만들어낸 유행어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건 이들과 진정 공감하고 있지 못해서일지도 모릅니다. 한 번쯤은 마음을 열고 인터넷 시대의 새로운 풍자와 해학을 즐겨보시기 바랍니다.

권기범 소비자경제부 기자 kaki@donga.com
#노잼#유행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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