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SNS에서는]태진아와 스티비 원더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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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 지상파의 한 음악방송에서 합동공연을 선보인 가수 태진아(오른쪽)와 비. 유튜브 화면 캡처
지난달 25일 지상파의 한 음악방송에서 합동공연을 선보인 가수 태진아(오른쪽)와 비. 유튜브 화면 캡처
“이런 역사적인 순간을 생방송으로 보다니.”

지난달 한 친구가 이런 문구와 함께 방송 영상을 담은 글을 페이스북 뉴스피드(담벼락)에 올렸습니다. 역사적인 순간 운운하는 친구의 호들갑에 관심이 생겨 해당 영상을 틀어봤습니다. 한 지상파 음악방송에서 인기가수 비(32)와 선배가수 태진아(61)가 비의 노래 ‘라송(LA SONG)’을 함께 부르는 영상이었습니다. 최근 온라인에서 화제가 됐던 이른바 ‘비진아’(비+태진아)의 무대였습니다.

서른 살 가까이 나이차가 나는 두 가수가, 그것도 후배의 노래로 한무대에 서게 된 과정이 궁금해졌습니다. 재미있게도 이 합동 무대는 지난달 유튜브에 올라온 1분여 길이의 합성 영상에서 시작됐습니다. 한 누리꾼이 ‘라라라’가 반복되는 라송의 후렴구가 트로트를 연상케 한다며 비의 라송과 태진아의 ‘동반자’를 섞은 영상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절묘하게 두 노래가 교차하는 영상에 누리꾼들은 환호했고 이 영상은 6일 현재 30만 건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비진아가 한때 실시간 검색어 순위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인기가 높아지자 이슈의 주인공들도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비(트위터 아이디 @29rain)가 지난달 본인의 트위터에 “원하신다면 콜라보(협업)를”이란 글로 운을 떼자 태진아가 “언제든 좋다”며 화답해 결국 합동무대를 만든 겁니다.

둘이 합쳐 반세기가 넘는 경력을 가진 두 가수는 프로정신을 발휘하기 시작했습니다. 평소 무대의상으로 정장을 주로 입던 태진아는 비의 공연 콘셉트에 맞춰 모피코트에 머리에는 두건을 두르고 오른쪽 볼에 빨간 키스마크를 새긴 채 카메라 앞에 섰습니다. 반대로 정장 차림을 한 비는 무대에서 선배의 표정을 흉내 내며 합동공연의 재미를 살렸습니다.

기대 이상의 무대를 선보인 태진아와 비에게 누리꾼들은 환호했습니다. 특히 두 가수가 ‘쿨’하게 합동공연을 단 세 차례만 선보일 거라는 계획이 전해지면서 ‘본방사수’(본 방송은 반드시 본다는 뜻)하지 못한 이들은 SNS에 올라온 영상을 통해 아쉬움을 달래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두 가수의 공연 영상은 합동무대의 계기가 된 합성 영상에 비해 2배가 넘는 75만여 건의 조회수를 기록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습니다. 비진아 영상을 패러디한 ‘비운도’(비+가수 설운도)의 ‘라차차’(라송과 설운도의 노래 ‘다함께 차차차’를 섞은 것)가 누리꾼들의 시선을 끌기도 했습니다.

사실 선후배와의 합동공연은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기 쉽습니다. 저는 이번 무대가 그 힘을 빼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그동안 국내 가수들이 보여준 합동공연은 마치 헌정방송처럼 딱딱한 느낌을 줬습니다. 그 노래가 유행할 때 미처 태어나지도 않았던 어린 여자 아이돌 가수가 “저는 어릴 때부터 이 노래를 즐겨 부르며 자라왔다”고 말한들 과연 누가 그 진정성을 믿어줄 수 있을까요. 음악, 더 나아가 예술의 본질에 자유가 있다면 좀 더 즐겁게, 좀 더 다양한 시도를 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두 가수의 공연을 보면서 문득 지난달 26일 열린 ‘제56회 그래미 시상식’에 나온 ‘팝의 거장’ 스티비 원더의 무대가 떠올랐습니다. 일찍이 존 레전드 등 많은 후배 가수와의 합동무대로 숱한 화제를 낳았던 그는 이번 시상식에서도 후배들과 함께 무대에 올랐습니다. 다프트 펑크, 패럴 윌리엄스와 함께 다프트 펑크의 노래 ‘겟 러키(Get Lucky)’를 부른 겁니다. 양손을 하늘로 치켜들며 아이처럼 노래를 부르는 그의 모습에 세계적인 팝스타 비욘세 놀스는 물론이고 비틀스의 멤버였던 폴 매카트니도 함께 몸을 흔들었습니다. “음악의 정신으로 우리가 함께 모였다”던 원더의 말은 과연 우리에게 머나먼 이야기이기만 할까요. 제2, 제3의 비진아가 하루빨리 이어져 나오길 기대해 봅니다.

강홍구 산업부 기자 wind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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