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SNS에서는]도 넘은 인증샷… 자살한 할아버지까지 ‘찰칵’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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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가봤더니 할아버지 자살하셨다. 인증 ㅍㅌㅊ?(‘평타 쳐’의 초성. ‘중간정도 수준은 된다’는 뜻)”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이용자들에게 ‘인증샷’은 낯설지 않습니다. 인증(認證)에 샷(shot)을 합한 신조어인 인증샷은 SNS에서 증거 사진이라는 뜻으로 통합니다. 인증샷이 없는 게시물은 ‘앙꼬 없는 찐빵’ 취급을 받습니다.

지난달 27일 우파 사이트인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의 한 이용자가 화장실에서 스스로 목을 매달아 숨진 할아버지의 사진을 올렸습니다. 게시물을 올린 이용자는 할아버지의 주검과 함께 일베 ID를 적은 종잇조각을 찍었습니다. 그러고는 “할아버지가 자살하셔서 당황했는데 종이 찾아서 인증부터 할 생각. 일베 중독인가보다. 명복 빌어줘라”고 적었습니다. 누리꾼들의 질타가 빗발치자 이 이용자는 몇 시간 만에 게시물을 지웠습니다. 사진은 이미 인터넷을 통해 일파만파 퍼진 뒤였습니다.

지금 SNS는 그야말로 ‘인증의 시대’입니다. 인증샷은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확산에 힘입어 우리 생활 속 깊이 자리 잡았습니다. 외식을 하거나 여행을 할 때, 길에서 유명인을 봤을 때,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누군가가 일탈을 일으킬 때 스마트폰부터 꺼내드는 건 이제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 됐습니다. SNS가 하이퍼리얼리즘(극사실주의)으로 치닫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텍스트만으로 이루어진 파란 화면의 PC통신 시절에는 찾아볼 수 없던 현상입니다.

선거철이면 ‘투표 인증샷’이 유행입니다. 투표를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투표 인증샷을 찍지 않으면 국민의 권리를 외면한 것이라 여기는 사람도 있더군요. 수많은 인증샷 사이에서 관심을 끌기 위해 더욱 자극적인 인증샷을 찾는 이들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인증샷은 기억의 기록이라기보다 전리품에 가깝습니다. 일베에서는 최근 ‘학력·직업 인증 대란’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개인정보를 살짝 가린 명문대 학생증과 졸업증, 대기업 명함과 사원증 사진이 봇물처럼 쏟아졌습니다. 주요 언론사의 기자증과 검찰 공무원증, 판사 신분증까지 등장했습니다. 인증샷은 기업의 마케팅 수단으로도 각광 받습니다. 경품을 위해 너도나도 제품을 손에 들고 ‘셀카(셀프카메라)’를 찍어 올립니다.

주목받고 싶은 마음에 섣불리 가짜 인증샷을 올렸다간 된서리를 맞을 수도 있습니다. 디지털카메라나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은 뒤 따로 보정작업을 거치지 않으면 촬영 시간과 장소, 카메라 기종 등이 기록된 메타데이터(속성정보)가 남습니다. ‘네티즌 수사대’는 이를 결코 놓치지 않습니다. 인증샷이 개인정보 유출로 이어지는 일도 다반사입니다. 모자이크나 사진의 음영을 조정해 숨겨진 사물을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신상이 ‘털릴’ 위험을 무릅쓰고 인증샷을 찍어 올리는 의식의 흐름은 어디에 있을까요. 사이버 공간이 ‘사실의 인정은 반드시 증거에 의해야 한다’는 증거재판주의가 적용되는 법정은 아닌데 말이죠. 혹자는 인증샷을 주목받고 싶은 욕구의 분출로 해석합니다.

인간에게 행동의 동기를 부여하는 ‘매슬로의 동기이론’을 살펴볼까요. 1단계는 잠이나 식사 같은 생리적 욕구, 2단계는 신체와 정서의 안전에 대한 욕구입니다. 3단계부터 5단계까지는 소속감과 애정, 타인으로부터의 존경, 그리고 자아실현의 순서입니다. 매슬로의 이론에 따르면 인증샷은 매우 고차원적인 욕구를 실현하는 행위가 되는 셈이군요. 그래도 셔터를 누르기 전에 잠깐, 정말 그래도 괜찮은가요?

이진석 산업부 기자 ge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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