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SNS에서는]웹툰 ‘미생’의 맞벌이 부부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5월 10일 03시 00분


코멘트
직장인의 애환을 다룬 웹툰 ‘미생’의 인기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킨 에피소드가 있다. 미생에 등장하는 맞벌이 부부 박동영 부장과 선영 차장의 얘기다.

선영 차장은 종합상사 원인터내셔널에서 12년째 일해 왔다. 그는 직장의 여성 후배들에게 롤 모델로 꼽힌다. 그런데 ‘일도 가정도 똑 부러지게 챙기는’ 커리어우먼이라는 겉모습과 달리 속사정은 고단하다. 그는 최근 남편에게서 회사를 그만두라는 종용을 받고 있다.

애 때문이다. 선 차장이 회사에서 일하는 동안 아이는 어린이집에서 지낸다. 퇴근한 엄마를 붙잡고 놀아달라는 아이를 위해 선 차장은 피곤한 몸을 끌고 저녁 늦게 놀이터로 나간다. 엄마아빠가 저녁 약속이 있을 때 딸아이는 친정언니네 집에서 재워야 한다.

육아 문제로 분투하면서도 선 차장은 회사를 그만두고 싶지 않다. 은행 대출 받아서 산 집 때문만이 아니다. 세상 좋아졌다지만 그래도 여자가 대기업에서 차장을 다는 것은 여전히 녹록지 않은 일이다. 코피 흘려가면서 올라온 자리인데 거기서 멈추고 싶지 않다. 그런 선 차장의 마음도 몰라주고, 남편은 자신이 승진을 앞두고 있으니 대출 문제는 해결될 거라면서 자신 혼자 벌어도 꾸려갈 수 있는 것처럼 말한다. 아이를 같이 봐주기는커녕 집에 있을 땐 낮잠만 자면서 “소미(딸 이름) 이렇게 키우고 싶지 않아”라고 말하는 남편이 야속하다.

웹툰 ‘미생’은 종합상사의 남성 직원들이 주요 인물이어서 주로 남성 직장인의 공감을 얻어 왔다. 그렇지만 이번 에피소드에는 워킹맘들의 댓글이 줄을 잇고 있다. “애 둘 키우는 워킹맘으로서 울컥하네요.” “직장맘으로 아이를 재우고 집안일을 정리한 뒤 내쉬는 깊은 한숨의 의미에 공감합니다.”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슈퍼우먼이 되기를 요구받는 워킹맘들…작가님이라도 알아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워킹맘의 남편들도 공감했다. “아내에게만 너무 많은 짐을 지우지는 않았는지 반성하는 밤입니다.” “(만화 속) 선 차장의 대사가 우리 집사람의 마음일진대 한 번도 헤아리지 못한 것 같아 부끄럽고 미안하네요.”

최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20대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62.9%로, 처음으로 남성(62.6%)을 앞섰다. 그러나 30대로 들어서면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56%로 급락한다. 출산과 육아로 인해 일자리를 떠나는 데다 한 번 떠난 뒤에는 쉽게 돌아올 수 없기 때문이다. 사단법인 여성문화네트워크가 지난해 워킹맘 1000명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3.0%가 ‘육아와 직장을 병행하는 것이 힘들다’고 답했다. 선 차장이 처한 상황이다.

10년 넘게 다닌 회사를 그만둬야 하나 고민하던 선 차장이 도달한 결론은 “나는 내 일이 좋다”이다. 사랑하는 아이가 행복하기 위해선 사랑을 베풀어주는 당사자인 엄마가 행복해야 한다는 것, 그러기 위해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계속해야 한다는 것이다. 3회에 걸친 에피소드의 초반, 선 차장이 사직서를 내지 않으면 좋겠다고 SNS에서 응원의 멘션을 날렸던 누리꾼들은 그녀의 선택에 박수를 보냈다.

트위터 내 육아커뮤니티 ‘육아당’에도 ‘미생’을 계기로 삼은 글이 올라와 많은 트위터리안의 지지를 받기도 했다. 이런 글이다.

“우리나라에서 적당히 좋은 직업으로 맞벌이를 한다는 건 판타지에 가깝다. 문제는 집안일 ‘따위’가 아니다. 육아는 ‘헬(hell)’이다. 야근 명령도 못 지키는데 회식? 아이 찾으러 가야 한다. 남편 보고 가라고 할 수도 없다. 나야 이미 회사에서 찍힌 유부녀지만 남편까지 회사에서 눈 밖에 나면 이 집안은 누가 먹여 살리나. 죽을 듯 말 듯 일과 육아의 전쟁터 속에 서 있기조차 힘든데… 남는 게 없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맞벌이를 하고 있는지 아무도 대답을 못한다.”

‘미생’의 선 차장은 직장생활을 이어가기 위해 남편에게 이렇게 제안한다. “회식 덜하기, 남편 먼저 들어온 날 컴퓨터만 보지 말고 아이랑 놀아주기, 가사 분담하기….” 자신이 집안일을 꽤 많이 도와주지 않느냐는 남편에게 “도와주지 말고 마땅히 하란 말이야”라고 답한다. ‘맞벌이=맞살림’임을 일깨우는 얘기다.

때로 상사에게 “하여간 여자들이란…” 소리를 듣고 울컥할 때가 많지만, 이 악물고 오늘도 출근하는 선 차장. 그녀가 좌절하지 않고 끝내 버텨내기를,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행복한 선 차장을 다시 볼 수 있는 에피소드를 기대한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미생#맞벌이 부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