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SNS에서는]‘SNS 괴담’의 사회학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2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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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 90년대 ‘홍콩 할매 귀신’ 이야기가 유행했다. 비행기를 타고 홍콩으로 가다 사고로 죽은 할머니가 귀신이 돼 초등학생만 골라 해친다는 내용이다. 이 괴담은 당시 빈번했던 비행기 사고와 유괴사건 등의 시대상이 반영됐다고 한다. 이 밖에 성형수술에 실패한 여자가 아이들을 해치고 다닌다는 ‘빨간 마스크’ 괴담도 아이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

그렇다면 이런 이야기는 어떨까. ‘한 여자가 6개월의 연애 끝에 결혼했다. 남자는 첫날밤까지 순결을 지켜 주고 싶다며 여자와 손 한번 안 잡았다. 두 사람은 신혼집 전입신고를 위해 혼인신고부터 했다. 그러나 첫날밤 여자는 샤워를 하고 나온 남자를 보고 울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이유는? 남자가 성범죄자용 전자발찌를 착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결혼 전 전과 사실을 고지할 의무가 없기 때문에 이 사례가 이혼 사유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현재 이혼을 원하는 여자는 이혼하지 않겠다는 남자를 상대로 힘겨운 싸움 중이다.’

이 이야기는 최근 SNS와 인터넷을 달궜던 ‘신혼여행 전자발찌 괴담’이다. 글쓴이는 ‘동생 회사 여직원의 친구’ 이야기라며 실화라고 밝혔다. 하지만 어디까지가 사실인지는 알 수 없다. 법률 전문가들에게 문의한 결과 글 내용과는 달리 위와 같은 사례는 충분히 이혼 사유가 된다고 한다.

SNS나 인터넷에는 또 다른 ‘첫날밤 괴담’도 많다. 대부분은 신혼여행 첫날밤에 숙맥인 줄로만 알았던 남편이 폭력적인 변태 성욕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여자가 두려움에 떨다가 친정으로 도망간 후 갈라선다는 이야기다.

최근에는 한 명문대생이 명품 백을 사달라고 조르는 여자 친구를 위해 자신의 신장을 팔았다는 내용의 ‘명품 백 장기 매매 괴담’이 유행했다. 길을 묻는 할머니를 도와줬더니 중국인 남자가 있는 중형 승합차로 유인해 납치했다거나, 택시 문고리에 마취제를 묻혀 승객이 실신하면 장기를 꺼내 파는 가짜 택시가 기승을 부린다는 괴담도 있다.

이런 괴담은 이른바 ‘도시전설(Urban Legend)’에 속한다. 이 말을 대중적으로 알린 미국의 민속학자 젠 해럴드 브런밴드 유타대 교수는 ‘도시전설’에 대해 ‘증명되지는 않지만 사실처럼 떠도는 현대의 민담 같은 이야기’라고 설명한다. 미국이나 일본 등에서 유행하는 도시전설도 ‘친구의 친구 이야기’라는 전제에서 출발하는 그럴 듯한 이야기들이다. 과거에는 구전으로 퍼지던 도시전설이 이제 인터넷과 SNS의 영향으로 그 종류는 다양해졌고 확산 속도는 더 빨라졌다.

특정 시공간에서 유행하는 도시전설에는 그 시대와 지역 사람들의 욕망 혹은 불안이 투영돼 있다. 지금 SNS를 떠도는 괴담에는 허술한 성범죄자 관리와 치안 불안, 명품에 대한 왜곡된 욕망 등이 반영돼 있다. 이 이야기들은 과거 유행했던 ‘홍콩 할매 귀신’, ‘빨간 마스크’보다 더 정교하고, 허구와 진실의 경계가 모호하다.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SNS 도시전설을 무서워하는 이유다.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괴담#도시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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