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혜경의 ‘100세 시대’]<3>돈 없다고 부모 학대하는 자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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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1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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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혜경 호남대 교수·사회복지학
한혜경 호남대 교수·사회복지학
68세 K 씨 부부는 아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30평대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수입이 하나도 없는 K 씨는 생활비를 위해 주택연금에 가입해 매달 나오는 180만 원가량을 생활비로 충당하고 있다. 그런데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들이 왜 자신과 상의도 하지 않고 마음대로 집을 처분했느냐면서 항의를 하기 시작하는 것 아닌가. 그러더니 매달 연금액 중 절반을 내놓으라며 ‘협박’을 했다. K 씨는 어이가 없어서 “우린 뭘 먹고 살란 말이냐?”라며 소리쳤지만 아들은 “노인네 둘이 무슨 돈이 그렇게 필요해요?”라며 오히려 더 큰 소리로 대들었다. 충격을 받은 K 씨는 요즘 심한 우울증세를 보이고 있다.

모든 계층에서 ‘경제적 학대’ 성행

72세 S 씨는 작년에 남편과 사별했다. 치밀하고 꼼꼼한 성격이던 남편은 암 투병 중에도 재산 상속 방법에 대해 고심을 거듭하면서 4남매에게 섭섭지 않게 유산을 물려주었다. 아내인 S 씨에게는 상당한 현금이 들어 있는 별도의 통장을 남겨 주면서 자식들한테 주지 말고 잘 쓰라고 당부까지 하고 떠났다.

남편의 사망 직후 S 씨는 자식들이 전에 없이 용돈도 주면서 따뜻하게 대해 주는 것에 많은 위안을 느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자식들의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지금 살고 있는 집 명의를 자기들 앞으로 바꿔 달라고 하질 않나, 돈 꿔 달라고 조르질 않나, 마치 경쟁이나 하듯 돈 얘기를 하는 것이다.

돈을 빌려 갈 때는 이자를 주겠다는 등 거창하게 말했지만 이자는커녕 원금도 돌려주지 않았다. S 씨가 돈을 돌려달라고 하면, “어차피 나중에 물려줄 돈 미리 준 셈 치세요”라며 뻔뻔스럽게 대꾸했다. S 씨는 요즘 모든 것이 혼란스럽다. 솔직히 남편보다 자식들을 더 사랑했고 자식들한테 모든 것을 바쳤는데, 어디서부터 뭔가 크게 잘못된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돈도 돈이지만, ‘남편 없다고 나를 무시하나?’ 자격지심까지 들어 더 서글퍼진다.

S 씨는 얼마 전 여고 동창생에게서 “(자식에게) 헌신하면 헌신짝 된다”라는 말을 들었는데 자신이 꼭 그 신세가 된 것 같았다. 자식들과 연을 끊고 숨어 살고 싶은 생각마저 들 정도이지만, 그건 생각만으로도 슬프고 두렵다. 마치 자신의 인생이 송두리째 실패했다는 걸 뜻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나중에 아파 쓰러지기라도 하면 누가 돌봐 줄 것인가, 그래도 자식이 낫겠지 하는 마음도 든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자신의 처지가 너무 안타깝지만 어떤 해결책도 낼 수가 없다. 요즘은 자식들이 전화만 해도 ‘또 돈 얘기인가?’ 하는 생각에 가슴이 벌렁거릴 정도다.

흔히 ‘노인 학대’ ‘부모 학대’라고 하면 많은 사람은 때리거나 밥을 안 주거나 가둬 놓고 문을 잠가 버리는 등의 신체적 학대를 떠올리지만, 물질주의가 만연한 요즘엔 돈과 관련한 괴롭힘이 횡행한다. ‘위협’이나 ‘협박’ 수준을 넘어서니 가히 ‘경제적 학대’ 수준이다.

자녀에 의한 경제적 학대는 일반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심각하다. 중앙노인보호전문기관(노인 학대를 상담하는 시도 단위 노인 보호 전문기관으로 전국에 28개가 있음)의 ‘노인 학대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2007년 422건이던 경제적 학대 건수는 2011년에는 607건으로 늘었다. 하지만 이건 빙산의 일각이라고 생각된다. 오죽하면 항간에 ‘(자식한테) 안 주면 맞아서 죽고, 반만 주면 졸려서 죽고, 다 주면 굶어죽는다’라는 끔찍한 말들이 떠돌겠는가.

“생활비-용돈 달라” 부모 괴롭혀

예전의 경제적 학대는 경제력이 없는 부모에게 생활비나 용돈을 주지 않는 것, 즉 부모를 경제적으로 부양하지 않고 방임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최근의 양상은 훨씬 다양하다. 부모의 재산이나 돈을 불법으로 사용하거나 훔치거나 무단으로 사용하는 것, 부모의 재산을 허가 없이, 혹은 속여서 자기 명의로 바꾸는 것, 신용카드나 소유물을 무단으로 사용하는 것, 부모가 받는 연금 등의 현금을 가로채는 것, 부모 소유 부동산을 무단으로 처리하는 것 등이다.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면서 심리적으로 괴롭힘을 주는 것도 경제적 학대에 포함된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예전의 학대가 주로 빈곤층이나 저소득층에서 일어났다면, 최근의 경제적 학대는 모든 계층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모든 노인 학대의 경우가 그렇지만, 경제적 학대도 남자 노인보다 여자 노인이 피해자가 될 개연성이 높다. 평균수명이 남자보다 길기도 하지만 자식들의 압력이나 횡포에 더 취약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통계청 ‘인구 주택 총조사’나 국민연금관리공단 ‘국민 노후 보장 패널 조사’를 보면 배우자 사별 후 혼자 살아가는 여자 노인이 빈곤층으로 전락할 소지가 매우 높다. 특히 패널 조사에 따르면 여성 노인은 남편과의 사별 후 사적 이전 소득(아마도 자녀들 용돈)이 일시적으로 늘다가 곧 없어지면서 빈곤선 이하로 떨어진다.

은퇴를 앞둔 베이비붐 세대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들 또한 현재 노인 세대 못지않게, 자식 앞에 약한 세대이기 때문이다. 부모의 노후자금이 부족한 걸 뻔히 알면서도 “결혼식은 화려하게 하고 싶다”라거나 “집 없으면 결혼할 수 없다”고 압박하는 젊은 세대를 보면 앞으로 경제상황이 나빠짐에 따라, 그리고 세대 간 간극이 커짐에 따라 경제적 학대가 점점 더 광범위해질 것 같아서 두려워진다.

원하지 않을땐 단호히 거절해야

그러니 자식들은 무심코 꺼내는 돈 얘기가 부모에게 심리적 압박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부모는 아무리 자식이라도 나누고 싶지 않은 것을 요구할 때 거절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나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경계 지키기’는 부모에게도 필요하다. 특히 여자들일수록 자녀의 부당한 요구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뒷심’을 길러야 한다. 그래야 자식들로부터 배반당하지 않는다.

한혜경 호남대 교수·사회복지학
#부모 학대#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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