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태규의 ‘직필직론’]현직 대통령과 다음 大選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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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태규 단국대 교수·언론학
손태규 단국대 교수·언론학
19대 대통령 선거는 2017년 12월 20일 치러진다. 지금부터 따져 3년 1개월 이상, 1135일여나 남았다. 그런데도 대선으로 온 나라가 들썩거린지가 한참이다. 많은 정치인이 일찌감치 직간접으로 출마 의사를 밝히고 준비에 들어간 지 오래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압도적 지지를 받는 대선 후보로 떠오르면서 열기는 더 거세지는 느낌이 든다. 이런 대선 분위기에 가려 박근혜 대통령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여론도 적지 않다.

○ 美, 현직 대통령 배려해 출마시기 늦춰

사실 대통령 선거운동은 현직 대통령이 당선된 그날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꼭 대통령이 아니더라도 선거로 뽑는 어떤 자리든 마찬가지일 것이다. 누구든 당선되자마자 재선을 최우선 목표로 삼지 않을 수 없다. 다음을 노리는 잠재적 후보들과 피 말리는 경쟁을 시작해야 한다. 그래서 누구라도 임기 동안 집중해서, 자신을 선택한 유권자들에게 진정으로 봉사하는 임무를 다하기 참으로 어렵다.

다행히 우리나라 대통령은 5년 단임이다. 대통령이 재선을 위해 임기를 낭비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제대로 된 개혁이나 큼직한 정책을 추진하기엔 5년이 너무 짧다고 한다. 중임제 대통령 개헌 주장이 계속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지금처럼 5년 임기의 절반이 지나기 전부터 차기 대선 열풍이 분다면 대통령직을 잘 수행하기가 어렵지 않은가. 존재감이 희미해져 가는 만큼 대통령의 통치력도 빠져나갈 것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4년 중임제를 도입해야 하는가. 5년 단임제를 채택한 1987년 개헌은 오랜 야당투사였던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적 욕심과 계산의 결과였다. 두 사람은 중임제로 할 경우 자신의 기회가 줄어들 것으로 판단해 단임제를 밀어붙였다. 그들은 순서대로 욕망을 이뤘지만 한국 정치는 여전히 중임제 개헌이란 숙제를 끌어안게 되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4년 중임 대통령제 역사가 225년이나 된 미국에서는 오히려 6년 단임으로 가자는 목소리가 높다. 6년 단임제는 건국 직후부터 꾸준히 논의되어 왔다. 재선에 대한 욕망이 대통령을 쉽게 약속하도록 만들며, 어려운 결정은 피하도록 몰아간다. 되레 재선에 대한 걱정이 없을 때 대통령은 나랏일에 전력을 다할 수 있다. 초선 때는 재선 운동으로, 재선 때는 다음 대선을 위한 후보들의 노골적 움직임 때문에 대통령이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으므로 6년 단임 대통령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차기 대선으로 인한 현직 대통령의 지도력 공백 상태(레임덕)를 우려해 대통령제를 고치자는 미국이지만 우리나라처럼 그렇게 이르게 선거열풍이 불지는 않는다. 중간선거에서 승리한 직후 공화당 전국위원회 위원장은 내년 1월부터 2016년 대선을 위한 경주가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여당이 ‘대통령 레임덕’ 앞장

공화당의 유망 후보들이 여러 지역을 돌며 선거 예비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나 누구도 후보 지명전에 출마할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을 정도로 비교적 잠잠하다. 민주당 쪽은 공화당보다 훨씬 조용하다.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나 조 바이든 부통령 등 유력 후보들은 공화당 대항마들에 비하면 지나치게 얌전하다는 것이 언론 등의 관측이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존재이다. 현직 대통령을 흔들지 않기 위한 여당의 배려가 작용한다는 것이다. 재선된 대통령이 다시 출마할 수 없었던 2008년 등 세 번 선거의 경험으로 볼 때 여야 후보들은 평균 선거일 전 526일, 즉 1년 5개월 10일 전부터 후보 지명을 위한 경쟁을 시작했다. 따라서 2016년 11월 대선은 2015년 6월부터 양당 후보들이 출마 경쟁을 본격 시작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미국에 견준다면 우리나라의 본격적 대선 경쟁은 2016년 7월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사정이 다르겠지만 우리는 여야 모두 너무 일찍 다음 대통령 선거운동에 노골적으로 나섰음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 같다. 야당이야 대통령을 흔들수록 선거에 유리하다고 생각하므로 임기가 얼마 남았는지 상관하지 않을 터이다. 그러니 ‘반 총장 카드’ 장사를 통해 국민의 관심을 자기들 쪽으로 돌린 것은 성공한 정치전술이라고 좋아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여당은 다르지 않은가. 그들은 임기가 끝날 때까지 대통령을 지지하고 지원해야 하는 대통령의 핵심집단이다.

김무성 대표가 반 총장 활용을 고려한다는 소문은 대통령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비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런 김 대표를 견제한다며, 친박 세력들이 반 총장 후보론을 벌써 공론화하는 것은 대통령을 만드는 데 일등공신이라 자처하는 그들이 대통령을 흔드는 데 앞장서는 꼴이다.

아무리 대통령보다 당내 정치가 자신들의 정치 미래에 더 중요하다 하더라도 대통령이 제대로 할 일을 하도록 돕는 것이 핵심집단의 할 일이다. 정치적 힘을 잃어버리는 날짜가 정해져 있는 대통령제에 레임덕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그것은 가능한 한 짧아야 한다. 임기 절반이 레임덕이라면 대통령의 불행에 앞서 나라의 불행이다. 무책임한 야권도 문제지만 먼저 여권의 자중이 필요하다.

손태규 단국대 교수·언론학
#대통령 선거#대선#레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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