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태규의 ‘직필직론’]위원회로 개혁을? 개혁은 회의로 하는 게 아닙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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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태규 단국대 교수·언론학
손태규 단국대 교수·언론학
‘통일준비위원회’가 말 나온 지 5개월 만에 꾸려지는 것을 보면서 “‘국가대개조 범국민위원회’는 언제쯤 만들어질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이 정부의 늑장 인사는 유명하지 않은가.

○ 국가대개조 국민위, 일은 많고 시간 부족

의문은 그것뿐 아니다. 통일준비위원회는 연구하는 곳이다. 통일을 이룩하는 위원회가 아니다. 그러나 국가대개조 범국민위원회는 연구와 준비를 넘어 개혁을 실천해야 하는 곳이다. 눈에 보이는 개혁의 성과를 거두어야 하는 위원회이다. 개혁은 쉽지 않다. 개혁은 단숨에 이뤄지지 않는다. 오랜 시간에 걸쳐 조금씩 개혁을 이뤄야 그 개혁이 오래간다. 국가를 온통 뜯어 고치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어림짐작으로도 예상하기 어렵다. 박근혜 대통령의 남은 임기는 3년 반. 그동안에 언제 위원회를 구성하고, 언제 개혁 과제와 범위를 정하며, 그 과제들을 언제 실행할 것인가?

국가대개조 범국민위원회는 통일준비위원회보다 훨씬 광범위하고 복잡한 문제를 다룰 위원회이니 인적 구성도 무척 복잡할 것이다. 통일준비위원회처럼 조직 만드는 데만 반년을 보낸다고 쳐도 실제 이 위원회가 일할 기간은 2년 남짓하다고 봐야 한다. 임기 마지막 해는 이른바 권력누수 현상이 깊어진다. 그해는 대통령이 임기를 마무리하는 시간이지 야심 차게 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니다. 마치 바둑의 초읽기처럼 대통령 떠나는 시간을 재고 있을 공무원들에게 개혁을 하라고 해도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또 개혁을 받아들일 기득권 세력도 없을 것이다.

국가대개조 범국민위원회에 주어질 시간은 너무 짧다. 반면 위원회가 2년 안에 해야 할 일은 너무 많다. 한꺼번에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분야의 개혁을 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국가를 대개혁하는 방향과 과제를 정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 다음 실행의 순위를 정해야 한다. 위원회가 2년 안에 추진 방법과 절차까지 합의로 정하고, 개혁을 실질적으로 추진하며, 개혁이 제대로 이뤄지는지 점검하고 감시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사실상 무리다. 무엇보다 위원회에서는 본질적인 개혁을 주장하기 어렵다.

아무리 미래를 정확히 예견할 수 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사람들과 계속 대립하다 보면 현실적인 개혁과 타협하기 마련이다. 개혁의 목적이나 방향보다는 개혁을 어떻게 성취할 것이냐는 수단에 관한 토론을 하다 보면 개혁의 본질은 실종되기 마련이다.

○ 토론하다 기득권 층에 밀려 개혁 실종

천년에 걸친 고대 로마의 개혁 역사를 면밀하게 분석한 일본 작가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뿐 아니라 어떤 국가나 어떤 시대에도 개혁은 결코 회의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결론지었다. 나아가 “모두가 찬성하는 개혁은 개혁이 아니다”라고까지 말했다. 서로 이해가 다른 많은 전문가들이 자기의 주장을 펼치고 논쟁을 해서 합의를 이루는 개혁은 진정한 개혁이 아니라는 것이다. 시오노 나나미는 그 이유를 기득권층의 존재에서 찾았다. 어떤 개혁이든 그에 따라 반드시 손해를 보게 될 기득권층을 말로써 이성으로 설득하려 하는 것은 절망적이라는 것. 그는 “‘얘기해 보면 알 수 있다’는 것이 민주주의의 이상이지만 그것만으로 성공한 적은 거의 없다. 로마 정치가 줄리어스 시저의 말처럼 ‘사람은 자신이 보고 싶은 현실만 보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개혁에 의해 기득권이 없어지는 것에 정신을 쏟고 있는 사람에게 개혁의 의의를 아무리 말해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많은 사람의 지혜를 모은 개혁은 이상으로서는 아름다워도 현실적인 방책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런 면에서 시간이 많든 적든지에 상관없이 위원회로 국가 대개조를 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무리다. 정부가 아무리 고심에 고심을 거듭해 위원회를 만들더라도 그 속에는 기득권 세력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누구라도 참담한 사고를 당한 직후에는 여러 가지 원인을 찾아 반성할 것이다. 그러나 그럭저럭 사태가 해결되어 가고 격앙됐던 감정이 조금씩 수그러들면 “식도만 넘어가면 뜨거움을 잊는다”는 말처럼 고통도 잊고 반성하던 자세도 흐지부지해진다. 금방 모든 것을 뜯어고치고 바꿀 것 같았던 벼락같은 자기비판에 대한 열정도 자신의 이념, 이해와 이익 앞에서는 고개 숙이기 마련이다. 정부가 개혁보다 더 장대한 대개조를 급작스럽게 결정한 것도 문제지만 위원회를 실행 방법으로 선택한 것은 더 문제이다.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은 권좌에 오르자마자, 10여 년 동안 준비했던 개혁 과제를 치밀한 전략 아래 실천하기 시작했다. 그는 ‘중국의 꿈’이라는 거대한 주제를 내건 뒤 개혁을 실행할 기구를 정비하고 개혁 지지 세력을 구축해 나갔다.

○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시오노 나나미는 “지도자 스스로가 믿는 바에 따라 개혁을 단행하지 않는 한 체제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변하지 않고 지내는 동안 국력은 쇠미해져 갈 뿐”이라고 말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박근혜 대통령은 개혁에 대한 생각을 바꿀 필요가 있다. 개혁의 과제는 박 대통령 자신이 던지는 것이다. 총리가 책임지는 위원회의 회의 결과를 기다릴 일이 아니다. 대통령이 고독한 결단으로 과제를 만들고, 그것을 용기 있게 추진하는 것이 개혁이다.

손태규 단국대 교수·언론학
#국가대개조 범국민위원회#개혁#통일준비위원회#박근혜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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