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태규의 ‘직필직론’]모든 재난 수습의 출발점, 대국민 메시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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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태규 단국대 교수·언론학
손태규 단국대 교수·언론학
어떤 정부도 천재(天災)든 인재(人災)든 모든 대형 참사를 피하거나 막을 도리가 없다. 문제는 사고가 터진 직후부터의 위기관리이다. 세월호 참사가 정부에 대한 실망과 분노로 이어진 것은 위기관리의 실패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 가운데서도 ‘위기 소통’의 실패는 치명적이다. 그 실패의 출발은 안전행정부 장관과 차관이었다. 사고에 관한 기초 사실도 제대로 모른 채 “파악해서 보고드리겠습니다”만을 되풀이하는 그들을 보면서 국민들은 절망하기 시작했다. 당황해 어쩔 줄 몰라 하거나 거만하기까지 한 태도를 보면서 국민들의 반감은 깊어지기 시작했다. 그들의 무능과 무책임은 곧 바로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이 되었다. 이후 정부의 어떤 설명이나 발표도 국민의 믿음을 얻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의 거듭된 사과조차 힘을 받지 못했다.

위기 소통은 위기관리의 실마리이다. 위기관리를 관통하는 핏줄이다. 정부가 사고 상황을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얼마나 성실하고 진정한 자세와 태도로 국민들에게 알려주느냐에 위기관리의 성패가 달려 있다. 무릇 모든 참사는 감상적이며 감정적 성격을 가진다. 그래서 국민들의 정부에 대한 기대는 최고조에 이른다. 정부는 사상자 수 등 사고에 대한 정보 외에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고 국민의 감상과 감정을 다독이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보내야 한다. 위기 상황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국민의 단결을 호소해야 한다. 사고에 관한 첫 기자회견에서부터 대통령의 담화까지, 모든 위기 소통은 미리 계획된 일정과 내용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 그것이 바로 전략적 위기 소통이다. 신속한 발표, 정확한 내용, 계속된 정보 제공만이 아니라 진정한 연민과 위로가 담긴 메시지가 필요하다. 그것이 위기 소통의 핵심이다.

소통이야말로 위기관리의 실마리

뛰어난 위기관리는 뛰어난 위기 소통 없이 존재할 수 없다. 세월호 참사는 한국 정부에서 ‘위기 소통’이 위기관리 체계에서 아예 빠져 있거나 중요성이 매우 낮은 것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작은 일이지만 정부가 세상의 흐름에 맞추어 세월호 사고 웹사이트를 만들고, 소셜 미디어 대응팀을 꾸렸다면 국민의 혼란은 덜 했을지 모른다. 아마 안행부 장차관도 위기 소통이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교육훈련을 받은 경험이 없을지 모른다. 그래서 그들에게만 책임이 있다고 하기 어렵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어떤 정부가 전쟁이나 재해 등 국가적 위기에 대처하는 위기 소통을 고민하고 그것을 위한 전략적 계획을 세운 적이 있는가.

올 3월 239명의 승객을 태운 채 사라진 말레이시아 항공기 사건은 정부의 위기 소통 실패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부실한 기체 수색 노력에 못지않게 사실을 확인하지 않은 엉터리 발표나 정부의 너도나도 나서는 마구잡이 발표로 세계 언론을 혼란케 했다. 오죽했으면 외국 언론사들이 기자회견장이 마치 서커스 공연장 같다고 비꼬았을까. 교통부 장관을 대행하고 있는 국방부 장관은 기본 사실조차 빠진 성명을 발표하면서 본인도 뭔지 모르는 표정으로 일관해 욕을 먹었다. 총리 역시 어제 오늘이 다른 내용의 성명으로 실종 미스터리에 혼란을 더했다.

이러한 말레이시아와는 다른 위기 소통을 보여준 나라가 바로 이웃의 싱가포르였다. 2003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싱가포르를 덮쳤을 때 정부는 즉각 장관 4명, 차관 5명으로 구성된 ‘고위 대책본부’를 구성했다. 이어 총리는 “어떤 일이 일어나도 우리는 대비가 되어 있다… 우리는 혼란에 빠지지 않는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사스와의 전쟁을 치르면서 정부는 정밀한 위기 소통 전략을 실행했다. 그 핵심은 정부에 대한 국민 감정과 정부의 능력에 대한 국민의 인식을 추스르는 일이었다. 총리는 의도적으로 “나는 늘 불평만 늘어놓은 국민들을 불평했다. 그러나 바닥에 떨어졌을 때는 나는 싱가포르 사람들을 엄청나게 신뢰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세계보건기구는 겨우 3개월 만에 싱가포르가 사스 위기를 극복한 것은 국민의 신뢰를 얻은 정부의 능력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그것은 위기 속에서 국민과 효율적으로 소통하는 능력이었다. 정치보도에 대한 강한 통제 등으로 싱가포르 언론자유의 순위는 세계 150권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국가적 재앙을 성공적으로 다루는 위기 소통의 체계는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학계의 연구 대상이었다.

위기 소통 전략은 국가의 생존을 위협하는 문제들을 다룬다. 그 전략이 없는 정부는 사건 사고에 쉽게 압도당할 수 있다. 전쟁에서부터 경제 위기까지 모든 위기는 온갖 미디어를 통해 빠른 속도로 전 세계에 전파되기 때문이다. 정부가 효율적으로 위기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고 관리하지 못할 때 정부에 대한 신뢰의 붕괴는 피할 수 없다. 재해마저 정치적 사건으로 변질시키려는 집단이 있는 한 더욱 그러하다.

위기 상황에 걸맞은 지도자의 말

위기 상황에 걸맞은 정부와 지도자의 말과 태도는 국민의 인식의 흐름을 역전시킬 수 있다. 위기가 클수록 소통의 역할이 커진다. 전략 소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위기가 시작되면서 그에 대한 계획을 짜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사태가 진행되면서 그때그때 전략을 마련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이다. 위기 상황이 언제든 일어날 것에 대비해 준비를 해야 한다. 제대로 된 위기 소통은 계획과 오랜 교육훈련의 결과이다. 우리 정부도 하루빨리 그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손태규 단국대 교수·언론학
#세월호 참사#위기관리#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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