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쟁론]질병관리본부 독립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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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발생한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를 계기로 한국 보건시스템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보건복지부 산하 중앙메르스대책본부, 청와대 내 메르스 긴급대책반, 국민안전처 산하 범정부 메르스대책지원본부 등으로 컨트롤타워가 분산됐고 감염병 통제를 주도해야 할 질병관리본부가 제 역할을 못해 비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에 복지부 산하에 있는 질병관리본부를 분리해 질병관리청으로 승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질병관리본부 역량을 강화해야 행정 관료가 아닌 방역 전문가들이 주축이 돼 위기 상황에 빠르게 대처할 수 있다는 의견입니다. 하지만 질병관리청이 신설되면 보고체계가 더 복잡해지기 때문에 감염병 대응을 위한 핵심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반론도 작지 않습니다. 질병관리본부 독립을 둘러싼 찬반 의견을 들어봤습니다. 》

질병관리 총괄 지휘할 독자조직 필요


이종구 서울대 의대 이종욱글로벌의학센터 교수 전 질병관리본부장
이종구 서울대 의대 이종욱글로벌의학센터 교수 전 질병관리본부장
[贊]메르스 사태는 한국에서 아무도 경험하지 못한 질병이 유입되고, 병원에서 그 질병에 감염됐으며, 환자와 보호자를 통해 해당 병원과 다른 병원으로 지역 전파되면서 확산됐다. 어느 나라도 이 질환을 잠복기 단계에서 검역 조치로 막지는 못했다. 몇몇 나라만 치료 경험이 있을 뿐이다. 잘 모르는 질병이라 에볼라처럼 개인 보호장구를 쓰고 환자를 봐야 했다. 치료법, 예방 백신이 없어서 격리 조치로 전파를 차단하고 자연 치유로 감염된 사람에게서 바이러스가 사라지기를 기대했다. 이러한 질병은 계속 생길 것이다. 이번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기에 제도화해서 대응해야 한다. 제도화는 법과 조직, 인사와 예산으로 뒷받침되고 지속적인 교육과 훈련을 통해 국민과 의료인 그리고 정부 조직이 대비하도록 하는 것이 주요 골자이다.

해외 유입 감염병은 법상으로 4군으로 장관 부령으로 정하도록 돼 있다. 평소 질병관리본부장에게 이러한 신종감염병의 지정 권한이 주어진다면 보다 신속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1급 기관은 개별적인 고시나 지정 권한이 없다.

신종감염병 위기 때도 반드시 법에 근거해 역학조사, 감염병 환자의 보호 및 치료, 격리를 진행해야 한다. 특히 새로운 질병은 치료, 진단 미흡으로 우선적인 격리 조치가 필요하다. 하지만 인권 문제가 발생하고, 과학적으로 증명 안 된 치료법의 사용 허가 문제, 환자의 사망으로 인한 책임 소관 문제가 발생한다. 반드시 이를 다룰 수 있는 법적 근거와 관련 권한이 주어져야 하는 것이다.

조직과 인사는 각종 질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 무엇인가를 염두에 두고 설계해야 한다. 질병관리본부는 수없이 발생하는 질병의 역학조사를 수행하고 법에 근거해서 입원, 예방접종, 격리와 검역 조치를 취한다. 그러나 이런 일을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현재 인사 시스템이 돼 있지 않다. 현재의 인사는 좋은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식이 아니다. 질병관리본부의 필요가 아니라 보건복지부의 애로를 해결하는 인사가 많다. 연구와 검사에 행정직이 배치된다. 승진과 해외파견으로 잠시 머무는 인사가 계속된다. 그러니 문제 해결 능력과 조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질병관리본부는 과학과 근거에 기반을 둔 조직 운영과 인사가 핵심이지만 1급 기관이라 이런 독자적 인사를 할 수 없고 따라서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병원감염은 해묵은 문제로, 매년 1만 명 이상의 추정 사망자를 내고 있지만 그동안 이를 해결하려는 조직과 제도 개선이 미흡했다. 이번 사태로 병원감염 문제가 통째로 드러난 것이다. 담당하는 부서도 애매하고 의료법 개선도 미흡하다.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로 대응한다지만 사망과 피해, 현황 조사에 관한 권한과 병원에 대한 지휘 권한이 충분하지 않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필요한 행정을 대폭 위임해 새로운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 질병별로 조사, 감시, 진단, 치료, 대응과 연구가 제각각인 조직을 통합하고 조정하며 국민과 소통하는 조직 설계가 필요하다. 1급 기관엔 이러한 일을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조직을 설계할 권한이 없다. 질병관리본부를 격상해야 할 가장 큰 이유다.

감염병 재난 대비는 중앙부처의 업무이다. 위기를 초래할 재난적 질병은 계속 발생하고 있고 경제적 피해도 크다. 예측도 잘 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각 나라는 감염병을 안보 차원에서 다루고 있다. 분단이란 특수한 상황에 놓인 우리는 특히 생물테러에도 대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신속한 과학 수사와 지방자치단체를 지휘할 수 있는 권한도 질병관리본부에 필요하다.

질병관리본부는 ‘부’나 ‘처’, ‘청’과 같은 중앙행정기관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부장의 직급을 차관급으로 격상한다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감염병 위기, 재난, 생물테러와 같은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행정적인 독자성이 확보돼야 한다. 이와 관련된 특별법도 필요하다.

독립보다 체계화된 역량 강화 먼저


이창원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
이창원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
[反]최근 발생한 메르스 사태는 감염병 위기 대응과 관련한 국가적 차원의 대응체계에 큰 과제를 남겨두었다. 감염병 위기 상황에 신속한 대응을 위한 해결 방안으로 논의되는 대안은 공중보건조직의 위상과 기능을 강화하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감염병 위기 대응을 위한 총괄·조정 기구로서 질병관리본부를 외청으로 격상해 조직의 독립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통해 보건부문의 전문성과 독립성을 확보해 1차적인 방역 기능과 역량을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책적 문제가 발생했을 때 가장 흔하게 논의되는 대안 중 하나는 바로 관련 정부조직과 공공기관의 기능을 확대하는 것이다. 보건 관련 조직의 기능 및 위상 그리고 권한을
강화한다는 것은 계층제에 속한 해당 부문에 대한 명령과 통제 체계를 확대하고 분야별 전문성을 향상시킨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번 메르스 사태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감염병이 지니고 있는 가장 큰 위협 요인은 불확실성과 빠른 확산 속도에 있다.
언제, 어디서, 어떠한 형태로 문제가 발생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명령·통제가 중심이 된 관료제적 조직 형태는 오히려 비효율적일 수 있다.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서는 보건부문 대응 주체 간의 정보 공유와 적극적인 협력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계층제적인 관료조직의
기능 강화는 전문성을 강화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부처 간 칸막이 문제와 소통 단절로 인해 정부 부처 간, 정부와 민간 간 협력 체계를 취약하게 만들 수 있다.

또 메르스 감염병과 같은 위기는 상시적인 상황이 아니다. 즉 일상적인 업무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감염병 대응을 목적으로 상시 조직의 인력과 기능을 강화하는 것은 정부조직 전체 차원에서 비효율성의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메르스 위기에서 드러난 감염병 위기관리의 핵심은 신속한 상황 판단, 집중적인 자원과 역량의 동원, 대응 주체 간 적극적인 정보 공유와 협력에 있었다. 다시 말해 메르스 확산의 원인은 질병관리본부를 비롯한 보건 관련 조직의 기능과 인력이 취약했다기보다 정부와 민간에서 감염병 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감염병 대응을 위해 단순히 조직과 기능을 확대하는 방안에 집중하기보다 좀 더 실질적이고 체계적인 대응 방안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첫째, 여러 부처에 분산돼 있는 지휘통제 체계를 일원화하고 대응 구조를 단순화해 감염병 위기 발생 때 신속한 상황 판단과 대응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특히 감염병 판단과 대응을 위해서는 중앙정부, 지방자치단체, 민간 의료기관 간의 체계적인 정보 공유가 요구된다.

둘째, 메르스 사태 같은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는 민간 의료기관이 보유한 자원을 신속하게 동원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민간 의료기관과 적극적인 정보 공유 및 협력 체계를 운영함과 동시에 동원된 자원을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위기대응을 책임질 수 있는 기관장의 권한과 역할을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

셋째, 감염병 위기를 빠르게 판단하고 대응하기 위해 일선 보건기관과 민간 의료기관의 일상적인 모니터링 기능을 강화해야 하며 이들 간의 협력 체계가 필수적이다. 감염병 확산과 차단 과정에서 실질적인 대응은 일선 보건기관과 민간 병원에서 이루어진다. 이를 위해 역학조사관 등 관련 인력의 교육 훈련 등을 통해 전문성을 확보해야 하며 필요하면 정부와 민간 의료기관 간의 적극적인 인적 교류도 고려할 수 있다.

정부 조직을 개편하거나 위상이나 권한을 강화하는 것은 가장 눈에 띄고 손쉬운 해결 방안이지만 그 효과를 보장할 수 없다. 감염병과 같은 국가적 위기는 정부 조직만으로 대응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인력과 기능 그리고 권한의 강화는 어디까지나 문제의 원인과 효과가 명확할 때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지금은 시야를 넓혀 정부와 민간 부문을 포괄하는 감염병 대응 체계의 큰 그림을 그려야 할 때이다.

오피니언팀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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