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희의 ‘광고 TALK’]<51>위문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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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8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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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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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초중고교생들이 국군 장병에게 위문편지를 쓰거나 위문품을 보내는 일이 연례행사였던 적이 있었다. “국군 장병 아저씨께!”로 시작되는 편지와 함께 배달되는 위문품은 나라 지키는 군인들에게 기쁨을 주었으리라. 위문품의 품목도 많이 변했다. 오랫동안 은단이나 사탕 같은 기호품 위주였던 위문품이 군인 전용 전화카드나 게임 아이템 같은 것으로 바뀌었다. 군대에 위문품을 보내는 관행은 6·25전쟁 때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고려은단의 은단 광고(동아일보 1952년 12월 24일)는 놀랍게도 “보내자 위문품!”이라는 헤드라인을 썼다. ‘위문품을 보내자’로 쓰지 않고 카피 수사학에서 강조하는 도치법을 써서 더 강력하게 행동을 촉구한 것이다. 곧이어 “북진(北進) 출발선상(出發線上)의 장병들에게”라는 서브 헤드라인을 쓰고, 위문용 은단의 서비스로 인기 여배우의 ‘프로마이트’(브로마이드)를 삽입해 준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그리고 여배우 세 명의 사진을 배치하고 “명우(名優·유명 배우) 20명의 새로운 모습”이라는 설명을 덧붙여 독자들의 기대감을 자극했다.

요약하면 북으로 진격할 태세를 갖춘 장병들에게 은단을 위문품으로 보내 격려하자는 내용이다. 위문품은 적과 아군이 서로 밀고 밀리는 전쟁터에서 전선을 종횡무진 누볐을 국군 장병에게 큰 위안이 되었으리라. 국군 장병들은 전선을 넘나들며 때로는 적진에 잠입하고 때로는 탈주하며 죽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몸을 떨었을 것이다. 변화무쌍한 세계 속에 내던져져 자신의 운명을 알지 못한 채 좌충우돌했던 파우스트처럼 말이다.

괴테의 ‘파우스트’ 제1부 제3장의 ‘천상서곡’에서, 하느님은 악마 메피스토와 대화를 나누다 인간을 옹호하며 이렇게 말씀하신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 존재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은 늘 방황할 수밖에 없다는 뜻. 다시 말해서 번민하지 않으면 인간일 수 없다는 것. 사선에서 피를 흘렸던 참전 용사들도 조국이라는 대의와 자신의 운명을 비교해 가며 불면의 밤을 지새웠으리라. 그때 위문품이나 여배우의 브로마이드는 방황을 잠시 멈추게 했을 터. 시대가 변했어도 위문품은 병사들에게 기쁨을 준다. 노력하는 만큼 늘 방황하는 그들에게 작은 정성을 챙겨 보내자.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고려은단#위문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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